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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쌤 May 09. 2024

혼내지 않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혼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제가 하나 있다.

바로 그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웹툰 '송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왜 내 말을 듣지 않을까. 내가 하는 옳은 말을 왜 안 들으려고 저렇게 기를 쓰는 걸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옳은 사람이긴 했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송곳을 보며 생각했었다. 아이들에게도 내가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면, 내가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고 해도 아이들은 내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는 게 당연하겠지.


혼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화내는 것을 이해할 만큼 속이 넓은 사람도 없다. 아이들의 경우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화내고 혼내는 것으로 일관한다면 절대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관리자한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혼날 때면  (정말 입에 거품을 물고 혼내던 관리자가 있었다. 모두가 정말 싫어하던...)

'저놈의 영감탱이가 또 저러네. 진짜 좋게 이야기할 순 없는 걸까.' 

이런 마음이 들었으니 말이다. 더 말을 듣기 싫은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그런 와중에 송곳을 읽었으니, 옳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정답임을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 것일까. 내가 함께하길 원하는 좋은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학교 관리자분들, 동료선생님들, 군대에서의 선후임들, 대학교선후배와 동기들, 오랜 친구들. 겪어왔던 인간관계를 떠올리며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고민했다.


-내 입장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

-해야 할 일을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같이 하자고 말해주는 사람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주는 사람

-자기감정대로 나를 대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해주는 사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게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위로나 유감의 표현을 하는 사람


설령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저 위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많이 힘들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될 것 같았다.


좋은 사람에 대해 고민한 것을 그대로 학교에서 하기로 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주기로 했다.


아이들 중 수업 중 엎드려있거나 조는 아이가 있으면 가까이 가서 어제 잠을 못 잤는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물어봐주었다. 그리고 힘들다고 말하면 학생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엎드려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후 반복적으로 조는 친구는 쉬는 시간에 따로 불러서 얘기를 나눴다. 전날 잠드는 시간에 대해 말하고 좀 더 일찍 잘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약속을 했다. 물론 그렇게 해도 문제(수업 중 조는 것)가 바로 해결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꾸준히 틈틈이 불러서 문제에 대해 이야길 나누고 약속을 하니 조금씩 학생이 나와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업 중 많이 자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던 나의 경험을 돌아봐도, 나한테 와서 왜 졸고 있나고 다정하게 한마디 물어봐준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옆구리를 꼬집거나 머리를 때리거나 깨워서 혼내거나 그랬다. 아니면 그냥 자도록 내버려 두거나. 나의 잠은 학창 시절 내내 해결되지 못했다. 당연한 거였다. 밤에 늦게 자는 게 해결되지 않았는데 나를 혼낸다고 내가 안 잘 수는 없었던 거다. 웃긴 건, 잠을 그렇게 자도 성적만 잘 나오면 결국 결과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것이다. 자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달까. 생각해 보면 씁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일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수년이 흘렀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확실히 처음 마음먹었을 때보다는 지금 더 좋은 선생님,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기는 하다. 아이들에게 화내고 혼내는 빈도도 많이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여전히 정말 화가 날 때는 참기 힘든 순간도 있긴 하다.) 대신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학생을 불러서 이야길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자 노력한다. 마음을 공감해 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공감에서 끝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이어나가고자 한다. 그렇게 인간으로서(가르치는 걸 제외하고) 좋은 사람으로, 좋은 선생님으로 남기 위해 노력하니 아이들도 내 말을 최대한 들어주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오늘도 교실에서는 사건 사고가 가득했다. 누가 누구를 놀린다는 이야기부터 해서 서로 이해하지 않겠다고, 친구가 아니라는 등 기분을 상하게 할 말들을 서로 주고받고, 몇몇 학생은 달려와서 나에게 바로 알려주곤 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쉬는 시간에 연구실로 데리고 가서는 내 이야길 조곤조곤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 터놓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서로의 문제에 대한 공감의 과정이 끝난 이후엔 서로 원하는 것들을 분명히 이해하고, 하지 않는 것을 약속했다. 약속으로도 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런 나의 말에 싫다고 말하는 아이는 다행히도 없었다. 


혼내지 않고도 학생들이 나의 말을 듣도록 하려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그리고 노력해야 할 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친절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아이들이 바른 방향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양립하기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물론 그 노력의 전제는 역시 '좋은 선생님, 좋은 사람'일 것이다.



202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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