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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쌤 May 10. 2024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길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선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맞는데, 사실 그게 쉽진 않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행동을 보며 화가 나기도 하고, 그것이 내 마음대로 조절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가지를 늘 명심하며 산다.

먼저, 내가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게 된다.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일단 내가 도와줄 만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상태여야만 가능하다. 내가 여유가 없고, 내가 힘든데 도움을 받지는 못할 망정 누군가를 도와줄 순 없는 거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 위해서 애를 쓴다. 내 몸 상태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을 것 같으면 무리해서라도 쉬려고 노력한다. 마음이 아플 때면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달래 본다. 그렇게 나를 늘 아프지 않도록 해야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서 도와줄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누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내 문제와 타인의 문제를 구분하고, 내 문제인 것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타인이 문제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까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리고 내 책임이 아닌 문제에 내 일인 것처럼 덤벼들 때, 그럴 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날 수 밖엔 없다. 하지만 내 문제가 아닌 게 확실하다면 나는 굳이 그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을 억지로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도 적게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학생에게는 '좋은 선생님'으로 남게 된다.


나는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너희가 수업을 열심히 듣고 안 듣고는 너희 문제야. 사실 선생님은 너희들이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아도 상관이 없어. 솔직하게 말해서 너희가 수업을 듣지 않는다고 해도 내 월급이 깎이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 선생님은 너희가 수업을 열심히 들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만 할 수 있어. 그리고 너희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기에 조금 더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안내하는 역할만 할 수 있단다. 그다음에 어떻게 할지 선택하는 건 결국 너희의 문제고 너희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야. 내가 너희들을 내 마음대로 로봇처럼 조종해서 수업을 듣게 할 순 없는 일이잖니? 그렇다고 억지로 때리거나 벌주면서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리고 수업을 안 들으면 결국 너희가 수업에서 무언가를 얻어가지 못하니까, 너희의 손해인 거야. 이건 분명한 사실이야. 시간이 아까운 거지. 그러니 수업을 열심히 들을지 안 들을지는 너희가 선택하렴. 그렇지만, 열심히 듣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선생님도 최선을 다해 너희들을 도와줄 거야. 너희가 수업에서 하나라도 더 얻어가서 더 좋은 삶을 살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거니까. 너희는 어떤 걸 선택할래?"

이렇게 말을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순간만큼은 나름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물론 애를 쓰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아이들(그러니까 집중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애들)은 다시 흐트러지긴 하지만, 적어도 의도적으로 안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업을 잘 듣지 않는 아이는 따로 부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물어본다.

"선생님은 네가 수업을 듣지 않아도 돼. 내 문제가 아니야. 네가 많이 못 얻어가고 네가 손해를 보는 거지. 선생님은 그게 안타까워서 도와주려고 부른 거야.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그냥 네가 어떻게 하든 아무 간섭하지 말까? 아니면 그래도 네가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할 수 있게 도와줄까? 네가 도와달라고 하면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도와줄 거야. 하지만 네가 간섭하지 말라고 하면 그 선택을 존중할게. 이건 네 문제니까."

무책임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교사가 학생에게 책임을 떠미루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저게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결국 미성년자인 학생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기에.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 선택으로 인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그것이 교사의 문제라 생각한다. 대신 살아주는 것, 올바른 삶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교사가 가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저렇게 간곡히 이야길 하면, 이때까지는 모든 아이들이 자신을 도와달라고 이야길 해주었다. 아마, 좋은 사람으로서 하는 간곡한 부탁이라서 들어주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만. 혹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상상해 보고 느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원격 수업에 늘 지각하던 아이도 등교해서 면담을 할 때 저렇게 이야길 해주었더니 10번 중에 9번을 지각하고 과제를 내지 않다가 10번 중에 2~3번 정도 지각하고 과제를 내지 않는 쪽으로 많이 좋아졌었다.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는 것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지만, 그래도 좋아진 것에 초점을 맞추면 분명히 좋아진 것은 맞아서 위안 아닌 위안이 된다. 그리고 학년이 바뀐 올해도 그 아이는 종종 우리 교실로 찾아와서 놀다가곤 했다.

중요한 건, 학생이 수업을 듣지 않는 것은 결국 학생이 갖고 있는 문제이고, 교사는 교사가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해 신경 쓰면 된다는 것이다. 수업을 잘 들을 수 있게 돕는 것이 교사의 문제인 것이지, 수업을 듣고 안 듣고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학생의 문제라는 말이다. 

내가 수업 듣는 것을 도와주는 것에 학생이 동의했다면 수업 중 멍 때리고 있으면 이름을 불러주고, 가까이 가서 슬쩍 건드려서 집중하게 해주기도 하고, 과제를 안 해온 날은 과제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남겨서 (벌로 남기는 것이 아니다. 결과는 같지만 과정이 다르다. 아이가 느끼는 것도 다르다.) 과제를 끝까지 하게 한다. 좀 싫어하는 기색이 보일 때면 네가 도와달라고 선택해서 나는 도와주는 것뿐이고 안 해도 된다고 말을 한다. 나는 억지로 남길 필요가 없기에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애가 설령 과제를 하지 않더라도 화는 덜 난다. 다만 그 학생의 미래가 걱정되기에 마음이 좀 안타까울 뿐이다. 



매일 방과 후에 남아서 교실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남학생 F가 있다. 어제도 5학년 남학생들과 함께 교실에 남아서 (그 5학년 남학생들은 작년 우리 반 애들이다.) 게임을 했다. 보고 있으면 그 시간에 책을 한 글자라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F를 강제로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책을 읽게 만들 순 없었다. 시도는 해보았으나 F는 책을 빌려오기만 할 뿐 읽지는 않았다. 다른 획기적인 방법이 없는 한 아마 F를 책 읽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F가 책을 읽지 않더라도 결국 내 문제는 아니다. 방과 후 시간에 무엇을 할 진 F의 문제니까. F의 인생은 F의 것이니까. 그래서 F가 교실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더라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내 일을 방해하진 않으니까. 다만 안타깝긴 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만큼 F에게 권유는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수업 중에 스마트폰을 쓰는 것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단호하게 대처한다. 문제가 아닌 일에 간섭하는 것은 아이들이 싫어하지만, 아이들도 문제인 것에 교사가 단호한 태도로 간섭하는 것에 대해선 큰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물론 존중하는 태도가 바탕이 전제가 된 간섭 이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짜증과 화를 덜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늘 두 가지를 명심한다. 


나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누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


나의 상태와 나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자 노력한다면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다만, 늘 그렇듯이 말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을 뿐이다. 쉽지 않은 길이 정답인 경우가 더 많다. 쉽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은 다른 쉬운 방법이 없다. 초심을 잃지 않도록 늘 되새기면서 노력하는 수밖에.


2021.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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