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좋은사람
오로라를 보자 울었다. 주위를 보니 어렵게 휴가를 내고 이곳까지 온 직장인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자유로운 직업이면서 동시에 어찌 먹고 살지 싶은 직업의 만화가, 프리랜서, 블로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예상했던 바와 달리 각자 먹고 사는 방법이 있었다. 회사로 복귀해 사표를 던졌다.
TV 프로그램 유퀴즈에 초대 된, 직업이 천체 사진가 라는 아저씨의 스토리다. 잠수함 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일을 하며 대기업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회사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을 묻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헬(hell)”이라고 했다. 천체사진가가 되기까지 10년을 준비했다고 했다. 위 장벽이 허물어질 지경으로 만성 스트레스에 절어 있던 그가 ‘헬’을 탈출하기까지 버텼던 힘. 그것은 우주에 대한 열의라고 했고, 아마 그것이 최소한의 희망 씨앗으로 있다가, 마침내 발아가 된 것으로 보였다. 무엇이 되고자 한다기 보다, 무엇이 하고 싶다라는, 아니 하고 싶은 게 있다라는 데서 오는 삶의 희망을 부여잡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까.
회사는 내게도 지옥이다. 일만 좋으면, 일만 잘하면 문제가 없었던 사회 초년생 시절도 있었다. 상사의 무능, 우유부단함, 인성 문제는 늘 증오와 혐오의 주제가 됐지만 괜찮았다. 그들을 버티는 방법으로 나는 열심히 주변에 알리는 데 핏대를 세웠고, 뒷담화를 가열차게 했고,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미성숙한 사람으로 찍히거나 하극상의 아이콘이 된 적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견디기 어려운 건 혐오스런 인간을 향해 예의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괴상함은 회사를 옮겨도 반복된다. 이 정도면 내가 쉽게 혐오 주의에 빠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한들 자기 자신에 후하면서, 자기는 문제가 없다고 여기면서, 집단의 안온함에 기대어 불투명한 권력 구조를 만드는 조직에 익숙해지는 것은 이젠 불가능에 가깝다.
원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 쉽지 않다. 몇 번의 시도가 좌절이 됐을 수도 있고, 결국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선택했다는 데서 오는 패배감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쓰린 위장에 술을 들이 붓고, 불온한 생각들로 하루를 오롯이 망쳐버린 나날들. 그런데 과연, 이런 반복을 언제까지 하고 있어야 할까.
언제까지. 솔직히 생각하면 이 생각에 미치면 더 답이 없다. 마음이 상한 체로 회사를 다니는 나는 과연 내 스스로에게 잘하는 일일까? 사람이 징징대다 보면, 원래 울 일이 아니었는데도 울기 일쑤다. 지금의 나는 징징거리는 걸 방치하다가 결국 울음보를 터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만 두어야 할 이유가 고작 지긋지긋해서 정도라면 내 자신이 더 초라해지는 것이고 말이다. 넘어지던 곳에서 똑같이 넘어지는 이유는 부주의해서이다. 내가 반복적으로 차오르는 혐오감을 방치한 것은 나를 돌보지 않는 부주의함도 있는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끊고 회사를 그만 둘만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라는 희망을 키워보는 게 어떨지. "끝"에도 준비는 필요한 것이다. 나의 선택으로 머물렀던 오랜 시간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내 스스로에게도 줘야 하는 것이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