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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Kyu Oct 11. 2021

‘말’ 좋은 사회를 위하여

도시좋은사람

“뭐 먹고 싶어?”, “무슨 업무를 맡고 싶어?”, “지금 어떻게 하고 싶어?”

요즘 저는 이런 질문 앞에서 얼음이 됩니다. 많이들 그러시나요? 특히 여럿이 함께하는 점심식사 메뉴에 영향력을 행사하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행여 나 때문에 팀 막내는 먹지도 못하는 순댓국 같은 걸 먹게 될까 봐요. 이런 밥 질문조차 더는 배려가 아니라 폭탄 돌리기가 된 셈이지요.


내가 먹을 밥 앞에서도 날마다 갈등하는데, 하물며 복잡한 역학관계들이 얽혀 있는 것들은 어떻겠어요? 원하는 방향은 있어도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는 건 참 위험한 일입니다. 생의 첫 달레마를 겪게 하는 질문, ‘엄마 좋아? 아빠 좋아?’ 앞에서 한쪽의 선택이 다른 한쪽을 부정한다는 오해를 줄까 봐 머뭇거리는걸요. 사회생활 시작한 이래 언제나 호불호가 강하고 주장이 세고 말 좋아하던 내가, 왜 점점 ‘말하기’가 겁날까요. 쫄보라도 된 걸까요?

 

나는 회사에서 ‘어떤 사람으로 규정’되는 것을 극도로 피합니다. 업무에서 보여주는 인상까지 컨트롤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내 입을 통한 나에 대한 ‘주장’은 아예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조직 내 업무 포지션 등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 “변화무쌍했고, 변화무쌍할 인재로 우리 회사 잣대로 가둬두면 큰일 나는 ooo”이라고 좀 퍼뜨려줄래요?


말을 아끼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아요. 보통 상대가 집요하게 나의 의견을 묻거나, 얼마나 협조적인지 떠보고 싶어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그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해줬습니다(거짓말도 보태서요). 때때로 상사에게 솔직히 털어놓은 적도 많았는데  모든 순간을 후회합니다. 순식간에 동료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 되어 있고, 때로는 내 애초의 이야기가 묘하게 각색되어 전혀 르게 변질이 되기도 하더군요. 특히나 유별나게 자리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조심해야 해요. 생각이 바쁘고 시간이 없기에 ‘노가리까지 않아요. 말을 권하는 데는 얻을 정보가 있다는 것이죠. 같이 일하는 사이에 어쩌다 순진하게 털린 말(?)이 뭐 천기누설도 아니고  좋습니다.


다만, 말을 그만하려고 해요. 말을 사랑했지만 다시 제대로 사랑하고 싶기에 당분간은 헤어지려고 합니다.


정교한 말일수록 그 안에 담아내는 의미가 살아난다고 믿습니다. 그리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설사 그리 말하여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의 수준이 평등해질 때까지 그들은 말을 서로 줄여야 합니다. 말 좋은 사회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편안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입을 다물기 시작하니까 글쓰기가 더 간절해집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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