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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 Mar 06. 2022

02.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스스로 하는게 최고인 줄 알았지.

그러니까  기억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나를 키우는 사람은  4명이었다. 엄마랑 아빠 그리고 할머니 그리고 가끔씩 나에 대한 질투심이 생겨도  참고 뒤돌아 눈물 흘린 *3 많은 남자아이.


그때의  세상 모든 아빠, 엄마는 아침이면 회사에 가고 그래서 저녁에 오는 존재인  알았다. 나중에 친구네 집에서 마주한 친구 엄마를 보면서는 부러워했지만. 할머니는  기억의 처음부터 지금껏 함께 하고 있고, 부모님의 빈자리를 대체한  유아기 인생의 동반자였다.


나의 할머니는 꽤나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조센징 소리 들으면서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1.4 후퇴때 이북에서 건너온 남자를 만나 함경도 사투리도 살짝 구사할 수 있다. 평소엔 경상도 억양이 나오고, 단어는 일본어인지 한국말인지 모르는 그런 단어를 사용한다. 난 어릴 때부터 다양한 언어 환경 속에서 자라왔기에 어르신 언어 해독으론 1등 또 1등이다.


할머니의 언어 습관은 “크면 알게 돼” 였다.

유아기의 난 호기심이 많았고 그건 왜 그런거냐 뭐냐 곧잘 물어보는 인간이었다. 커서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2-3번째 질문부터 “크면 알게 돼”라고 말한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난 어떤 게 궁금해도 ‘아 이것도 크면 알게 되겠지’ 생각하기도 했다. 스스로 하는 것의 시작은 바로 크면 알게 된다는 대답을 들었을 무렵 부터다.


우리 집의 암묵적 규칙은 ‘스스로 하기’ 였다.

할머니, 아빠, 엄마는 늘 나와 3살 많은 남자아이에게 “할머니(나)는 나이가 많고, 몸도 약하시니까 스스로 우리의 일을 하면서 도와야 한다.” 와 그리고 아빠와 엄마는 일을 해야 하니 집에서는 할머니 말씀을 꼭 잘 들어야 한다”고도 말하면서 우리 집의 권력은 할머니에게 있음을 선언했다.

저 얘기를 할 때마다 ‘우리를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강조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내가 나쁜 인간이 된 것 같아 불편했다. ‘내가 정말 저 사람을 저렇게 힘들게 하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착한 아이가 되는 방법은 간단했다. 규칙을 잘 지키면 된다. 스스로 무언갈 하고 나면 착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착하다는 말은 마력이 있었다. 할머니도 늘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알아서 잘해서 참 착해요”라고 말하곤 했었다. 옆집 아줌마도, 유치원 선생님도, 엄마도 다 그렇게 얘기해서 착한게 최고인 줄 알았다.


스스로 = 착함의 공식이 성립된 이후로는 많은 것을 숨겼다.  

“엄마, 안 와도 괜찮아!” (안 괜찮음)
“할머니, 이건 그냥 내가 해볼게” (도움이 필요하단 소리)
“엄마, 그냥 나 혼자 해도 돼” (혼자 하기 싫음)


그러다보니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하는 순간은 참으로 힘들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찾다가 제 풀에 지쳐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했다.결국 난 착한 어린이가 못 되겠군 생각하며 흘리는 절망의 눈물이었다.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었던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맞벌이였던 부모님과 할머니의 인정을 받고 싶던 아이는 팽이 같은 어른이 되고자 이를 악물고 또 물었다.

**팽이처럼 스스로 돌기 위해 노력한 건 내가 지금껏 거침없이 살 수 있었던 동력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따금씩 흰 수건을 던지며 인생 기권을 외치고 싶어지는 건 아닐까 싶다.


못된 송아지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아직도 할머니는 내가 참 착하다고, 그래서 예쁘다고 한다. 근데 난 또 그 말이 좋고 그래.


(*사랑을 오롯이 받던 아이에게 나타난 말 많은 동생의 등장은 꽤나 힘겨웠을 터이니 같이 키워낸 사람 1인에 필자의 오빠를 넣는다.)

(**김수영 - <달나라의 장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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