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하는게 최고인 줄 알았지.
그러니까 내 기억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나를 키우는 사람은 총 4명이었다. 엄마랑 아빠 그리고 할머니 그리고 가끔씩 나에 대한 질투심이 생겨도 꾹 참고 뒤돌아 눈물 흘린 *3살 많은 남자아이.
그때의 난 세상 모든 아빠, 엄마는 아침이면 회사에 가고 그래서 저녁에 오는 존재인 줄 알았다. 나중에 친구네 집에서 마주한 친구 엄마를 보면서는 부러워했지만. 할머니는 내 기억의 처음부터 지금껏 함께 하고 있고, 부모님의 빈자리를 대체한 내 유아기 인생의 동반자였다.
나의 할머니는 꽤나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조센징 소리 들으면서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1.4 후퇴때 이북에서 건너온 남자를 만나 함경도 사투리도 살짝 구사할 수 있다. 평소엔 경상도 억양이 나오고, 단어는 일본어인지 한국말인지 모르는 그런 단어를 사용한다. 난 어릴 때부터 다양한 언어 환경 속에서 자라왔기에 어르신 언어 해독으론 1등 또 1등이다.
할머니의 언어 습관은 “크면 알게 돼” 였다.
유아기의 난 호기심이 많았고 그건 왜 그런거냐 뭐냐 곧잘 물어보는 인간이었다. 커서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2-3번째 질문부터 “크면 알게 돼”라고 말한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난 어떤 게 궁금해도 ‘아 이것도 크면 알게 되겠지’ 생각하기도 했다. 스스로 하는 것의 시작은 바로 크면 알게 된다는 대답을 들었을 무렵 부터다.
우리 집의 암묵적 규칙은 ‘스스로 하기’ 였다.
할머니, 아빠, 엄마는 늘 나와 3살 많은 남자아이에게 “할머니(나)는 나이가 많고, 몸도 약하시니까 스스로 우리의 일을 하면서 도와야 한다.” 와 “그리고 아빠와 엄마는 일을 해야 하니 집에서는 할머니 말씀을 꼭 잘 들어야 한다”고도 말하면서 우리 집의 권력은 할머니에게 있음을 선언했다.
저 얘기를 할 때마다 ‘우리를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강조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내가 나쁜 인간이 된 것 같아 불편했다. ‘내가 정말 저 사람을 저렇게 힘들게 하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착한 아이가 되는 방법은 간단했다. 규칙을 잘 지키면 된다. 스스로 무언갈 하고 나면 착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착하다는 말은 마력이 있었다. 할머니도 늘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알아서 잘해서 참 착해요”라고 말하곤 했었다. 옆집 아줌마도, 유치원 선생님도, 엄마도 다 그렇게 얘기해서 착한게 최고인 줄 알았다.
스스로 = 착함의 공식이 성립된 이후로는 많은 것을 숨겼다.
“엄마, 안 와도 괜찮아!” (안 괜찮음)
“할머니, 이건 그냥 내가 해볼게” (도움이 필요하단 소리)
“엄마, 그냥 나 혼자 해도 돼” (혼자 하기 싫음)
그러다보니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하는 순간은 참으로 힘들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찾다가 제 풀에 지쳐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했다.결국 난 착한 어린이가 못 되겠군 생각하며 흘리는 절망의 눈물이었다.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었던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맞벌이였던 부모님과 할머니의 인정을 받고 싶던 아이는 팽이 같은 어른이 되고자 이를 악물고 또 물었다.
**팽이처럼 스스로 돌기 위해 노력한 건 내가 지금껏 거침없이 살 수 있었던 동력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따금씩 흰 수건을 던지며 인생 기권을 외치고 싶어지는 건 아닐까 싶다.
못된 송아지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아직도 할머니는 내가 참 착하다고, 그래서 예쁘다고 한다. 근데 난 또 그 말이 좋고 그래.
(*사랑을 오롯이 받던 아이에게 나타난 말 많은 동생의 등장은 꽤나 힘겨웠을 터이니 같이 키워낸 사람 1인에 필자의 오빠를 넣는다.)
(**김수영 - <달나라의 장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