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잘 때 사용하는 소설
가끔 한국에 다녀올 때 가져올까 말까를 망설이게 되는 게 책이다. 한두권만 돼도 그 무게가 돌덩이처럼 무겁다. 어쩔 수 없는 책이 아니면 E-booK을 산다. 한국책이 귀한 곳이라 가끔 만나는 한국어로 된 책들은 무조건 확보해 두고 본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입수경로도 기억이 안나는 책이랑, 한국에서 가져온 적도 없는 책이 꽤 발견된다. 보지도 않으면서 일단 구하기 어려울 게 뻔하니까 하이틴로맨스 같은 웹소설종이책도 기회만 되면 얻어다가 옆에 쟁여두었다.
'200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으로 몽고반점이라고 쓰여있는 누렇게 변색해 가는 책도 그런 책이다. 내가 2005년 이후에 이 책을 한국에서 사 온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는 어떤 교민이 파는 걸 내가 샀거나, 누군가가 나에게 그냥 줬을 거다. 읽어봐야 내가 읽었던 책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는, 언제 입양됐는지 기억도 안나는 이 책에 노벨상을 탄 한강의 단편이 세 편이나 들어있다.
난 노벨상수상작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번역한 책의 번역투가 싫기도 했다. 꼭 성우로 더빙입힌 TV외화 보는 것 같아서...메니큐어로 잔뜩 코딩한 열손가락 손톱이 숨을 못쉬는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아서다. 한강 덕분에 번역없이 어떤 가공도 거치지 않은 원작을 읽는 맛을 보게 되어 편안함을 느낀다. 멋진 일이다. 국뽕 차오른다
쉰 중반이 넘은 나에게는 소설 속의 처제처럼 왼쪽 엉덩이에 푸르른 몽고반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소설 속의 형부가 몽고반점이 서른이 넘은 처제의 엉덩이에 아가들의 그것처럼 남아있다는 것에 꽂혀서 희한하게 흥분하는 것도 참... 이게 뭐라고? 이건 죽을 때까지 안 없어지는 사람이 더 많은데 말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려니...
요즘 밤에 잠이 잘 안 올 때 유튜브로 음악도 듣고, 유명한 사람들의 책 읽어주는 소리도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는데, 어제 한강의 몽고반점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오늘부터 잠이 안 올 때는 종이책 소설로 잠을 청해봐야겠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