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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정 Sep 09. 2019

오스틴 가는 길


오스틴 가는 길 


이번 여행은 처음 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공항에서 비자가 만료되었다는 것을 알고 집에 돌아가기는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 오른 1997년 7월 5일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를 불쌍한 듯이 쳐다보는 어메리칸 에어라인 공항 데스크 여직원은 ESTA 신청을 하면 1시간 만에 나올지도 모른다고 알려주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같은 항공편에 내 같은 사람이 3명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홈페이지를 가보았다. ESTA 홈페이지 맨 상단에, 실시간 승인은 2년 전에 끝났으니, 그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그래도 한시간 기다려 봤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오류가 생겨서 혹시라도 과거로 

돌아가서 실시간 승인이 나길 기다렸으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다음날 ESTA 승인이 떨어졌다. 항공편 하루 늦게 출발하도록 바꾸는 데 무려 80여만원이 더 들었다. 조금만 

더 썼으면 비행기를 살 뻔했다.


내가 오스틴을 갈 일이 생길 줄이야. 나는 오스틴이 어디 있는 줄도 몰랐다. 미국을 20년이상 들락 날락 거리면서도 오스틴이 남부 어딘가 있지 않을까 정도였다. 혹시라도 공항 책방에서 오스틴이 있나 들여다 봤다. 역시 그런 시도는 의미가 없었다. 인터넷을 훑기 시작했다. 오스틴에 여행에 관해서 그렇게 흥미로운 컨텐츠를 찾기는 힘들었다. 


달라스에서 오스틴으로 갈아 탔다. 텍사스 주에 온 것이다. 달라스나 휴스턴의 이름에는 익숙하지만 오스틴은 전혀 익숙치 않았다. 오스틴으로 가는 비행기.. 40불을 더 주고 이코노미 맨 앞줄에 않았다. 40불이 일주일간 머물 오스틴의 미래를 더 밝게 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느닷없이 비행기가 출입문을 닫기 전에 젊은 백인 여성이 헐레벌떡 들어와 내 좌석줄 중간에 앉았다. 그녀는 오스틴에 도착전까지, 기침과 가래질을 반복했다. 나는 미국인이 그렇게 가래질을 하는 것은 처음 봤다. 그녀의 플루는 그대로 나에게 왔다. 오스틴의 일주일의 반은 그녀가 준 플루로 살았다. 악몽이었다. 


오스틴으로 나를 이끈 것은 SXSW라는 세계적인 이벤트 때문이다. 페스티벌이라고 해야 할 지, 컨퍼런스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으나, 모두 포함한 형태의 특이한 이벤트다. 이 행사는 10일 정도 지속되는 데, 전세계에서 7만명 이상 찾는다. 이 7만명은 컨퍼런스 티켓을 구매한 기준이라, 음악과 영화 관람까지 포함한다면, 10만명이 넘을 것 같다. 


오스틴의 인구가 100만명이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연중 이 때가 얼마나 나같은 사람들로 북적일지 쉽게 알 수 있다. 


SXSW는 South By South West의 약자로 '남서부의 남부' 라고 해야 할지.. 오스틴의 위치를 표현한 것 같다. 이 행사가 유명해지면서 SXSW는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었다. 


SXSW는 다운 타운의 컨텐션 센타와 그 주위 호텔들 주변에서, 컨퍼런스, 뮤직 페스티벌, 영화 상영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호텔은 이 시즘에 두세배의 값을 부르기 때문에, 매우 일찍 예약하거나 하지 않으면, 맨허튼 고급 호텔에 묶는 돈은 줘야 할 것 같다. 나는 10키로 떨어진 한적한 호텔에 묶었다. 이 호텔은 오스틴의 하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머무르는 6박동안, 새벽마다 경찰차가 왔다. 아침에 토스트 한 조각 없는 이 호텔은 언제 부터인가 키친을 닫아버렸다.


10키로를 달려서 행사장에 가는 방법이 무엇일 있을까? 구글 지도를 검색했다. 세가지 방법이 눈에 들어 왔다. 택시, 버스, 그리고 걸어서 가면 된다. 버스는 45분, 걸어서 2시간 정도 였다. 택시.......... 


오스틴도 우버의 세계였다. 우버 외에도 리프트가 있다. 나는 줄곧 우버를 이용했다. 끊임없이 바뀌는 우버 드라이버는  거의 같은 질문을 하거나 귀찮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 지, 얼마나 머무는 지, 뭘 하는 지 물었다. 그중 노스 코리아가 아닌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 가장 즐거워 했다. 그들은 삼성 엘지가 어느 국가 제품인지는 몰라도 김정은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홈디포(Home Depot)에서 엘지 세탁기를 팔았다는 한 여성도 세탁기는 세탁기일 뿐, 엘지가 어느 국가 브랜드인지 관심이 없었다.


우버를 타고 온 곳을 누볐다. 오스틴에는 왜 왔냐고 물어서 SXSW로 왔다고 하면, 어디서 왔냐는 말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우버는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존 (내 이름), SXSW와 우버의 재미 있는 얘기 해줄까?" 


60대로 보이는 뚱보 할아버지 몸체는 운전석의 공간을 넘어서 어떻게 핸들을 조정하는 지 궁금하지만, 그는 연신 말을 걸었다. 


"3년 전에 말이야, 오스틴 시와 택시 협회 간에 싸움이 일었어. 그해 공유차 서비스는 서비스가 안 되었지. 그래서 난리가 난거야. 이 행사에 온 사람들이 이동을 어떻게 하려고... 아마 내가 듣기로 참석자가 참석 취소한 사람이 수천명은 된다고 들었어. 여긴 지하철도 없거든"


"택시 있잖아요?"


"여긴 택시도 별로 없어"


우버는 그 다음 해 다시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내가 있는 호텔과 이벤트 장소까지 10키로는 거의 15-20불 사이에서 책정되었다. 가격 책정 알고리즘 구조가 매우 궁금해졌지만, 그녀가 준 지독한 플루로 몸이 늘어져 모든 복잡한 계산은 하질 않았다.


"오스틴의 매력이 뭔가요?" 대화 할 사람이곤 우버 드라이버 밖엔 없어서, 늘 물었다. 사실 난 오스틴의 매력이 

뭔질 몰라서 계속 찾고 있었다. 


"존, 여기 왔으면 꼭 먹어볼 게 있어... 스테이크야, 씨 푸드도 좋아. 플랭클린 레스토랑은 3-4시간은 

서서 기다려야 해.. 맛있어"


"존, 오스틴은 작은 샌프란 시스코야. 작은 실리콘 밸리지..그래서 실리콘 힐 (Sillcon Hill)이라 불려."


"왜 힐이죠?"


"응. 여긴 산이 없잖아. 그나마 언덕이 있지.. 그리고 테크 회사가 꽤 많아"


그리고 보니, 도심에 델 컴퓨터 광고가 꽤나 많이 보였다. 라운드 락 (Roung Rock) 근처를 지날 때는 더욱 그런

느낌이었는 데, 델 컴퓨터의 본사가 오스틴에 있었다. 한 운전사는 그래서 나에게 델 컴퓨터 해외 지사에서 왔냐고 물었다. 


"존, 오스틴은 음악의 도시예요. 아마 이벤트 장소에서 뮤직 퍼포먼스를 많이 보겠지만, 그건 잠깐 좀 더 북쩍이는 거고 연중 온 동네가 뮤지션들로 넘쳐 흐르고 밤낮으로 여기 저기 조그만 콘서트를 하죠."



그러고 보니, 좀 더 이 도시가 이해가 되었다. 며칠 동안 락, 째즈, 레게, 하드락, 컨트리 ....끊임없이 접한 것 같다. 


SXSW의 성공의 비밀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음악 축제를 여는 것이 시초였다. 많이 모였다. 매년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름 (Film)이라고 불리는 영화 상영제가 가미되었다. 음악과 영화는 잘 붙었다. 


새로운 곡의 소개, 새로운 영화의 프리미어가 SXSW에서 선 보이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상을 받은 허트 로크가 여기서 프리미어 되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버락 오바마가 키노트로 나선 것도 이해가 된다. SXSW는 정치인들에게도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세번째 가미가 된 것이 인터랙티브다. 인터랙티브는 IT 테크놀러지를 의미한다. 테크놀러지보다는 소비자와의 기술을 통한 교감을 의미하기에는 인터랙티브가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엘런 머스크가 키노트로 온 것도 이해가 된다.


SXSW는 흥미롭게도 점점 인터랙티브 컨퍼런스 참가자가 늘기 시작하더니, 뮤직을 앞지르기 시작한다. 


SXSW의 발표 주제를 보면 동시대의 기술적 흐름을 알 수 있다. AI, 블록체인, AR/VR이다. 여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래서인지, 테크 기업들이 SXSW에서 앞다투어 전시관을 연다. 유명 브랜드는 엑스포 전시장 내에서 여는 것이 아니라, 호프집이나, 레스토랑을 통채로 전세내어서, 소비자 경험관을 연다. 워낙 전세료가 비싸서 그런지 아니면 행사 시작 3-4일까지만 의미가 커서 인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전시 기관은 짧다. 


오스틴은 음악, 영화 그리고 기술의 융합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 AI 알로리즘 엔지니어와 히피 음악가나, 

단편영화 감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어울렸을까?


세련된 호텔 건물 한 블락 뒤에는 뉴오릴리언즈 재즈 거리를 연상하는 골목에서의 음악가들, 뒹구는 술병, 쓰러져 자는 거지들, 비틀거리는 히피들, 고래 고래 소리지르는 하드 라커들, 70년 팝송을 부르는 아줌마...


무엇이 오스틴의 모습을 비추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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