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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내일도맑음 Jun 30. 2020

높아진 눈높이와 흔들린 가치관

산책 생각

나는 키가 고만고만하다.

그래서 눈높이가 낮다.


  남녀노소를 떠나 거의 모든 사람의 눈높이와 비슷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동등한 높이에서 바라본다.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건물, 주변을 볼 땐 자연스레 고개를 들게 되지만 말이다.     


  키가 작아 속상한 일도 많았고 신체를 물려주신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사람을 표현하고 그 사람의 깊이를 정하는 것이 외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낮은 곳에서 위를 올려다보기를 좋아하고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을 굽어살피는 것이 좋다. 올려다 보는 것은 나에게 겸손을 알게 하고, 같이 보는 것은 평등을 알게 한다. 그리고 내려다 보는 것은 사랑을 알게 한다. 내가 남들과 다른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들을 알지 못할 테니 이 고만고만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의 눈높이가 좋다.      


  얼마 전 다른 눈높이로 주변을 볼 기회가 있었다. 가끔 같이 산책을 하는 친구가 나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공간이 있다고 하였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답답한 마음이 들면 가는 곳이란다. 바로 그 친구의 오피스텔 옥상이었다. 주변에서 가장 높고 지은 지 얼마 안 된 오피스텔이라서 그런지 여느 옥상과 달랐다. 초록색 바닥에 물통만 덩그러니 있는 옥상이 아니라 식물이 곳곳에 심겨있고 벤치도 있는 공원 같은 옥상이었다. 탁 트인 장소였다. 근처 바다와 산을 보니 넓어진 시선만큼 마음도 넓어졌다. 왜 그 친구가 답답할 때 여기에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렸다. 옥상 주변을 보니 모두 내 발밑이었다. 사람과 건물의 얼굴과 표정은 안 보이고 머리만 보였다. 동등한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게 익숙한 나로서는 아주 색달랐다. 모든 것의 머리 위에 있다는 우월감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또한, 내려다보는 나의 존재를 모르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과 서 있는 건물을 보면서 관음증적 느낌도 생겼다. 감정이 굉장히 복합적이었으며 개운하지 않았다. 유현준 건축가는 건물의 구조와 높이에 사람의 권력과 욕망이 담겨있다고 했다. 아마 이런 의미일 것이다. 높은 눈높이에서 사람을 바라보니 다른 사람 위에 서고 싶은 욕망과 다른 사람을 감시하는 위치에 있다는 우월감이 스멀스멀 생겨났다.     


  높은 눈높이로 멀리 자연을 바라보는 것은 경이로웠다. 하지만 높은 눈높이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높은 눈높이는 나도 모르게 본능과 욕망을 끄집어냈다. 동등하게 바라보았던 대상을 더는 동등하게 바라볼 수 없었다. 낮은 눈높이를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가 높은 눈높이를 갖게 되니 마음이 달랐다. 옥상에 올랐을 때 마음이 두근대고 떨렸다. 그러한 몸의 반응은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바라볼 때 생길 수 있는 마음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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