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생각
날씨도 더워지고 그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기분 전환을 할 때 미용실을 가는 건 여성뿐만 아니다. 나도 간다.
어려서부터 남이 내 머리를 만져주는 것이 좋았다. 누구든 내 머리를 쓰다듬거나 만져주면 마음이 편해졌고 긴장도 풀렸다. 어린 시절 동생은 미용실에서 항상 울었다. 바리깡 소리가 무서웠다고 한다. 어린 나는 차분히 앉아 있었다. 주변에서는 의젓하다고 했지만 나는 머리 만져주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커서도 그 버릇과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내 단골 미용실은 이사 오기 전 동네에 있다. 미용실을 바꾸는 것은 영국인이 자기 축구팀을 바꾸는 것과 같을 것이다. 또 이사하더라도 이곳을 찾아올 것 같다.
머리 만져주는 편안함에 오랜만에 가는 전 동네에 대한 설렘, 좋은 날씨까지 더해 기분이 참으로 좋았다. 변한 건 없는지 둘러보며 걷던 중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차였다. 내장 터진 순대 같았다. 앞이 너무 심하게 찌그러져 SUV였구나 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주택가에 있는 반파된 자동차라니 너무 이질적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운전자는 괜찮을까?
차는 고칠 수 있을까?
내 차는 외할아버지 차였다. 몇십 년간 운전하셨던 외할아버지께서 연로하셔서 더는 운전하기 힘들어하시면서 받은 차다. 그 당시 차를 받으며 꿈꾸던 자유롭고 화려한 생활이 가능할 거란 생각에 무척 기뻤다. 지금에야 가만 돌이켜보면 그때 외할아버지께선 차 키를 건네시면서 당신의 나이 듦에 대해 속상해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외할아버지에서 나로 주인이 바뀐 차는 고생을 많이 했다. 심지어 자동차 등록 사무소에서 자동차 명의 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바로 사고가 났다. 차가 내 것이 된 첫날부터 사고가 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나는 가장 오른쪽 우회전 차선에서 직진, 상대차는 하나 왼쪽 차선에서 우회전하려다 사고가 났다. 억울한 면이 있었지만, 쌍방과실로 처리되었다. 사고로 차 왼쪽 앞, 뒷문이 파손되었고 수리에 일주일이 걸렸다. 수리가 되어 나온 차는 새 차 같았다.
최근 사고는 좌회전 차선에서 신호대기하고 있던 내 차를 뒤에서 받았다. 한 차선을 두 차가 들어오려다 엉키면서 속도를 못 줄이고 앞에 있던 내 차를 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그 사고로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어 약 한 달간 입원해야 했고 내 차는 트렁크부터 앞 범퍼 펜더, 뒤 범퍼 문짝까지 다 파손되었다. 첫 사고보다 긴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렸으나 이번에도 거의 완벽하게 수리되어 나왔다.
파손된 차가 마치 다림질한 것처럼 되어 나오는 것을 보니 신기하였다. 종이를 접었다가 펴도 자국이 남는데 차가 그렇지 않다니 말이다. 미용실 가는 길에 보았던 그 차는 수리에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아마 수리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차를 고치듯이 고쳐지고 펴졌으면 하는 게 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갈등이다. 계층 간, 성별 간, 세대 간, 이념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물론 갈등이 발전을 위한 큰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물건이 고쳐지는 데 한계가 있듯이 갈등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그 한계점에 가까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사회적으로 갈등을 적절히 관리해야 하고 우리는 갈등이 극도로 치닫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과 경계가 필요하다. 적절한 갈등 관리와 해결을 통하여 갈등으로 깨진 인간적인 관계와 사회적인 분위기가 수리된 차처럼 펴지고 깨끗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