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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내일도맑음 Aug 24. 2020

코인 세탁소에서 발견한 달마

짧은 생각

  문득 밤이 너무 더웠다. 며칠째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면서 깼다. 선풍기를 밤새 틀어도 소용없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침대 한쪽 뭉쳐있는 이불이 보였다. 

  두툼했다. ‘잡았다 요놈 철 모르는 네 녀석 때문이었구나’ 

  탓을 이불로 넘겨보지만 결국 무신경하고 귀찮아한 나 때문이다.

  익숙했던 그 이불이 눈에 밟힌 김에 내버려 둔 그 녀석을 빨아 정리하기로 했다. 


  참 편한 세상이다. 어렸을 적 이불 빨래하면 뭐니 해도 빨간 고무 다라이나 욕조였다. 요샌 동전만 있으면 한 공간에서 세탁에서 건조까지 가능하다. 아련하지만 예전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은 동전을 넣고 코인 세탁소를 둘러보았다. 밝은 조명과 깨끗한 테이블이 놓인 공간은 세탁소인지 카페인지 모를 정도였다.      


  한쪽 유리창은 포스트잇으로 가득하였다. 참 많이도 붙어있다. 세탁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그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라고 사장님이 준비한 공간일 것이다. 대부분 ‘짱’ ‘최고’ 같은 짧은 응원이나 간단한 그림이었다. 간간이 서로의 사랑을 다짐하는 ‘000♥000’이 있었다. 멋스럽게 인생을 논하고 자신의 철학을 마음껏 뽐낸 포스트잇도 있었다. 그리고 세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달마 그림도 있었다.     

  한국 사람은 흔적 남기기를 참 좋아한다. 아니,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곳곳에서 낙서로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국가와 인종을 떠나 사람이라면 흔적 남기기를 좋아한다. 더욱이 과거 사람이 더 전 시대의 유물에 한 낙서가 지금에 이르러 큰 문화적 자산이 된다고 하니 지리, 문화,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은 흔적 남기기와 낙서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낙서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부분의 낙서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어쩌면 시간을 때운다가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시간은 남고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때 사람들은 주변에서 끄적일 공간과 끄적일 것을 찾는다. 그리곤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자유롭게 그리거나 끄적인다.     


  사람의 생각과 기억력은 순간적이고 휘발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번뜻 떠오른 아이디어를 붙잡기 위해 낙서를 한다. 전화기나 모니터 옆에 항상 있던 그 메모지와 펜의 역할이다. 이 낙서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시간을 때우는 낙서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낙서 그 자체에서 재미와 목적을 발견한다. 낙서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낸다. 평소의 고민과 생각을 무겁지 않게 표현하거나 낙서를 하면서 복잡한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한다.      


  현대는 낙서가 예술로 승화되기도 한다. 낙서 종이를 거리의 벽으로 옮겨 거리의 예술이 된 그라피티, 단순하고 힘 있는 캐릭터들이 리듬을 느끼게 하는 키스 해링의 작품, 거친 선과 색으로 신념을 표현했던 바스키아의 작품들이 그렇다.      


  낙서가 예술로까지 발전하게 된 이유는 익명성과 자율성이다. 낙서에는 작가가 숨어있다.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드러낼 필요도 없다. 숨어있는 작가는 자유롭고 표현의 내용과 방법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또한, 책임도 없어 작가의 자율성은 매우 크다. 큰 자율성에 실험적인 시도가 결합하여 새롭고 창의적인 결과가 만들어진다. 창의적인 결과는 자율과 비례하는 것이다.     


  다시 세탁소의 낙서를 보았다. 너무나 이상했던 달마 낙서가 다르게 보인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소와 그림이 합쳐지면서 의미가 입혀진다. 낙서 작가는 세탁이 나를 닦고 수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표현하려 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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