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한창 인연을 찾아 헤매던 시기였다. 사실 전 연애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새로운 연애 의지가 크게 없었다. 하지만 청춘이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주변이 더 난리였다. 결국 주변의 큰 권유가 나의 작은 의지를 꺾었다. 주변에서 소개팅을 주선했고 나는 군말 없이 소개팅을 시작했다. 소개팅의 과정은 입사 시험과 비슷하다. 적당한 정보를 주선자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한다. 서류 전형과 같다.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2차, 3차 면접으로 넘어간다.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매 단계가 쉽지 않다는 것이 입사 시험과 같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선택과 결정이 한쪽에만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취직을 한번 하려면 이력서를 100장 넣어야 한다던가…. 소개팅도 마찬가지다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소개팅을 해야 한다. 스쳐 읽었던 기사에서 소개팅 성공 확률이 10%가 조금 안 된다고 했던 것 같다. 어떻게 조사했는지 모르겠지만 통계가 꽤나 정확했다. 나 역시 그 통계치를 임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소개팅 횟수가 거듭될수록 나보다 열성적이었던 주변 사람들은 한풀 꺾였고, 나는 비슷하게 반복되는 약속에 소개팅 기계가 된 느낌이었다.
요즘 소개팅은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장소, 메뉴까지 정형화되어 있다. 포털에 약속 장소+소개팅을 치면 얼추 비슷비슷한 장소 여러 개가 뜬다. 그러다 보면 저번에 갔던 소개팅 장소를 한 번 더 가기도 한다. 장소가 똑같으면 소개팅 기억이 뒤엉켜서 대화도 뒤엉키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대화가 뒤엉키는 또 다른 이유는 대화 주제가 비슷하기 때문인데 서로 처음 만나 할만한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되겠는가. 당연히 소개팅마다 같은 주제의 대화가 반복되며 이 말을 이 사람에게 했었는지 저번 사람에게 했었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만남이 설렘과 호기심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부담과 권태로 시작하니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다 권태롭지 않은 소개팅을 하였다. 그 소개팅이 권태롭지 않았던 것은 작은 선물 때문이다. 그 소개팅 1, 2단계는 전체적으로 평범했지만 조금 달랐던 것은 메뉴 선택이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탈리안 음식점에 가면 파스타를 먹는 것이 보통이다. 소개팅에서 예의를 차리면서 서로 부담 없는 메뉴가 파스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대는 샐러드를 먹겠다고 했다. 파스타가 아닌 샐러드를 먹는다는 것은 ‘자리가 불편하니 간단히 먹고 끝내고 싶다’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음식을 먹으면서 상대는 그런 뉘앙스를 풍기지는 않았다. 그렇게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다음 약속까지 잡게 되었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2차 면접을 보았다. 1차보다는 낯섦과 어색함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식사는 간단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이 특별해진 순간이 있었다. 데이트가 끝나고 그 사람을 집 근처에 내려다 주었다. 차에서 내리던 그 사람이 갑자기 허겁지겁 가방을 뒤지더니 뭔가를 창문 사이로 던지듯이 나에게 주었다. 뒤에 차가 기다리고 있어서 확인도 못 하고 출발하였다. 신호 대기 중 다시 보니 떡이었다. 전화해 웬 떡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마워서라고 했다. ‘사실 제가 다이어트를 해서 6개월간 풀만 먹었어요. 그래서 저번에도 샐러드만 먹었는데 왠지 미안도 하고 같이 샐러드 먹어줘서 고맙기도 해서 배고프실 테니 집에서 드세요.’라고 했다. 샐러드를 먹은 이유가 마음이 아니라 몸 때문이었다. 소개팅하면서 처음 선물을 받았다. 크고 대단한 건 아니지만 특별했다. 그 사람의 배려와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작은 선물로 소개팅이 더 권태롭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