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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내일도맑음 Oct 07. 2021

혼여, 이상과 현실의 차이

짧은 생각

성인이 된다는 것은 곧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장 로스땅-



  명언 속의 성인이 나이 많은 성인인지, 경지에 도달한 성인인지 모르겠지만 식당에서 혼자 밥 먹을 때 눈치 보지 않아도 되겠다. 나이가 많은 성인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고, 경지에 도달한 성인이면 성스럽게 한 끼를 해결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기 어려운 요즘이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많은 것에 시달린다. 예전은 들어오는 자극을 막거나 만남을 적절히 선택하면서 외부 자극을 조절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속옷보다 가까운 스마트폰이 원인이다. 스마트폰 덕분에 혼자 있을 수 없다. 세상은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통해 나에게 접근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어려운 일이 된 만큼 중요하다. 혼자 있어야 온전히 자기 상태에 집중할 수 있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흐릿하던 길을 명확하게 바라보거나 갈팡질팡하던 결정도 내릴 수 있다. 돛단배가 키를 잃고 바람에 무작정 떠내려가다 키를 바로잡아 바람을 타는 것과 같다.


  혼자서 많은 것을 했다. 고향을 떠나 생활하기에 혼밥은 당연했고 술도 영화도 혼자 즐겼다. 많은 것을 두려움 없이 혼자 할 수 있지만, 혼자 하기 겁나는 것이 있다. 여행이다. 혼여는 난이도가 상당하다. 여행은 삶의 도막이 아닌 전체다. 장소를 옮겼지만 삶은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혼밥, 혼술처럼 잠깐 빗겨 나와 짬을 내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생겼다. 동생이 먼저 용기를 냈다. 혼자 떠난다고 했다. 혼자 여행 갈 용기가 없던 나는 동생을 이용했다. 동생과 여행을 하다 동생은 돌아오고, 나는 남아 나만의 여행을 가기로 했다. 동생으로서는 혼여의 기회를 방해받은 것이니 미안하기도 하다.


  동생과 함께하는 여행지는 이탈리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동생이 먼저 정했기 때문이다. 다 정해지고 따라나서기로 한 나로서는 굳이 다른 대안을 내기 귀찮았다. 반면 나 혼자 갈 여행지는 중요했다. 어디 갈지 몰라 유럽 지도를 모니터에 띄웠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2시간 안으로 갈 수 있을 만한 곳을 살폈다. 파리가 눈에 띄었다. 낭만, 사랑, 예술 등 파리를 수식하는 단어는 모두 달콤했기에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 편 비행기 정도만 미리 정하고 동생과의 여행을 시작했다. 동생과 함께한 여행은 무난하고 편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여행은 특히 더 결정의 연속인데, 그 결정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내가, 동생이 잘하는 것은 동생이 나눠했다. 부담은 나누되 경험은 합쳤다. 서로가 가진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며 합쳤다. 무엇보다 더 맛있어 보이는 동생 음식을 뺏어 먹을 수 있었다.


  동생의 귀국 날이 다가왔다. 로마 공항에서 나와 내 동생의 길이 나뉘었다. 동생은 헤어지는 연인처럼 이탈리아를 바라보며 떠났고, 나는 새로운 연인처럼 파리를 바라보며 떠났다. 로마를 떠나 파리로 오면서 비로소 나의 혼여가 시작되었다. 혼여는 말 그대로 오직 나만의 여행이다. 철저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건축, 예술 작품 등 ‘안 움직이는 것’을 최대한 많이 본다는 내 목표가 최우선이었다. 가고 싶을 때 가고, 멈추고 싶을 때 멈췄다. 먹고 싶을 때 먹었고, 자고 싶을 때 잤다. 동생과의 여행도 편하고 행복했지만, 혼여는 확실히 자유로웠고 이기적이기까지 했다. 파리의 화려하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더해 매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그러던 중 사건이 생겼다.


  파리의 거리와 건물은 하루 만에 눈에 익었다. 이사를 가면 계속 산책하며 동네에 적응하듯이 잘 돌아다닌 덕분이다. 둘째 날 출근하는 파리 시민에 섞여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혼여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고 다음 미술관으로 전진했다. 센강을 건너는 다리 주변 풍경에 취해 건너려는 데, 한 남자가 걸어오더니 등에 멘 가방을 향해 손짓했다. 대충 조심하라는 얘기인 것 같아서 고맙다고 끄덕였다. 가방 지퍼는 벌써 클립을 끼워 놓아 주인인 내가 열려고 해도 귀찮을 정도라 걱정은 없었다. 마음을 놓고 다리를 중간쯤 건넜을 때, 갑자기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 꼬맹이 두세 명이 다가왔다. 종이와 펜을 흔들며 ‘리서치, 리서치’하는 것이 설문이나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멀리서 온 동양인에게 뭐 알고 싶은 게 있는 거지?’ 생각하고 옆으로 비키려는데, 어디서 왔는지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 네다섯이 더 붙었다. ‘얘네들이 왜 이러지?’ 고민하는 순간 아이들 수는 더 불어 언뜻 열명이 나를 에워쌌다. 그리고 품 안으로 무엇이 느껴졌다. 손들이었다. 몇 명은 눈앞에서 펜과 종이를 흔들었고 나머지는 손을 뻗어 옷 안을 뒤졌다. 사람이 당황하면 언다더니 아무것도 못 했다. 헤집던 손들은 원하는 것을 못 얻었는지 점점 더 부지런히 움직였고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헤이!’ 소리가 들리더니 길가던 프랑스 중년 부부가 달려왔다. 그 무리에서 나를 떼어내고 아이들을 향해 불어로 뭐라 뭐라 하며 쫓아냈다. 아직 혼란스러워 ‘메르시 메르시’만 겨우 할 수 있었다. 외투를 뒤져보니 속주머니 지퍼와 프랑스 부부 덕분에 내 지갑과 여권은 무사했다. 친절한 부부는 내가 다리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까지 동행했고 덕분에 안전하게 다음 장소로 갈 수 있었다. 정신없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숙소에 돌아와 복도를 둘러보니 ‘파리 소매치기’ 게시물이 보였다. 항상 당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이 있다. 내가 당한 수법은 집시 아이들의 수법이다. 설문으로 정신없게 한 다음 모조리 털어간다. 털린 게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그 사건 후 여유 있고 깊이 있는 혼여는 없어졌다. 불안과 걱정이 앞섰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그만 자극에도 놀라고 신경 썼다. 새로운 연인 파리에게 뒤통수를 맞아 얼얼했다. 홀로 떠난 여행의 이상이 소매치기에 와장창 깨졌다. 혼자 결정하고 대처할 때의 어려움까진 미처 몰랐다. 이 배신감은 며칠 더 갔고 여행 막바지에 소매치기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이해하면서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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