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3 육아일기
두 줄이었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나에게 보여준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이 그어 있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수없이 봐온 한 줄과 두 줄이었지만 그 의미는 천지 차이였다. 아내와 아내 손에 소중히 담긴 두 줄을 번갈아 보던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내 역시 나를 따라 대폭소를 하였다. 화장실 앞에서 각자의 배를 붙잡고 웃다가 서로의 배를 붙잡다가 하면서 웃다가 겨우 진정하였다.
아마 갑자기 터진 그 웃음은 퇴근 마중 길에, 회사에서의 짜증을 나에게 쏟아낸 데에 대한 아내의 민망함, 평소와는 다른 아내의 짜증에 대한 나의 억울함. 짜증 나는 회사와 뜨뜻미지근한 나의 반응에, 홧김에 테스트기를 집어 든 아내의 충동, 어색하고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온 큰 기쁨이 뒤섞인 복잡한 웃음이었으리다.
우리 부부는 2022년에 각각 36살, 35살에 결혼했다. 요즘에야 혼인 연령이 늦어져서 겨우 평균에 걸칠 수 있었지, 나의 할머니가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할머니 소싯적에는 반노인이다.’ 꽉 찬 결혼이었지만 우리 둘만의 알콩달콩한 시기를 놓칠 수 없어 특별히 큰 노력 없이 1년 여가량 둘이서만 행복하게 보냈다. 그러다 우리 행복을 함께 나눌 소중한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어떻게 시작할까, 하다. 주변의 조언에 따라 산부인과부터 가게 되었다. 아직 본격적인 시도도 안 했는데 바로 산부인과에 가야 하냐는 생각도 있었지만, 아내의 건강 체크를 위해서라도 조언을 따르기로 하였다. 몇 차례 검진과 진료를 통해 의사 선생님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무거운 말과 함께 숙제 같은 날짜와 기한을 우리에게 주었다. 학창 시절 나름의 모범적이었던 우리 부부는 의사 선생님에게 받은 숙제를 충실히 이행하였고 숙제 기한을 기다렸다.
그렇게 모범적으로 검사 기한을 잘 기다리다 갑작스레 몰래 답안지를 훔쳐보듯이 우리는 가채점을 하게 되었고, 결과를 받게 된 것이다. 수능처럼 큰 시험을 가채점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놀랍고, 기쁘면서 한편 뻐근한 느낌이었다.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가까울지 몰랐다. 주변에서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만 들어서 그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온 두 줄에 복잡했다. 삼신할매가 있다고 하면 그 의사 선생님이 틀림없다.
어안이 벙벙하면서 기쁘고 행복해서 그냥 웃었다. 아내도 비슷한지 한참 함께 웃고 처음 한 말이 ‘오빠 진짜로?’였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아내에게 평소와 다른 간지러움증이 생겼다. 두드러기처럼 목부터 시작하더니 온몸으로 퍼져 발가락 끝까지 간지러워했고, 긁느라 잠들기도 어려운 정도였다. 산부인과는 생각도 못 하고 피부과를 가보려는 찰나에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의사 선생님께 확실한 확인 도장을 받기 위해 아내와 최대한 빨리 산부인과를 같이 가기로 했다.
앞으로 많이 바빠질 것 같다. 막연한 상상이 이제는 현실이 될 것이다. 뭐부터 해야 할까? 당장 책부터 사야 하나? 출산 육아 바이블이 있다고 하던데 검색부터 해봐야겠다. 가족에게 언제, 어떻게 알려야 하지? 언제쯤 태어날까? 아들? 딸?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온다. 드디어 내가 아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