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6 육아일기
괜히 기분이 좋다. 나도 모르게 실금실금 웃음이 새어 나온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싱숭생숭하다. 그러다 돌연 마음 한편이 무겁다. 내 몸이 내 삶이 무겁고 두렵다. 무거운 마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싱글벙글이다. 사춘기가 훌쩍 지난 지금 왜 이러냐면 내가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얼떨결에 아내와 확인한 두 줄을 의사 선생님께 확인받으러 가야 한다. 아내가 산부인과 검진을 위해 잡아놓은 날이 있었고, 나도 그날이 마침 쉬는 날이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사실 산부인과는 처음이다. 아내가 다녀와서 많은 이야기를 해줘서 심리적으로는 가까웠지만 한 번도 직접 와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가는 길은 떨리면서 기대되었지만, 와이프 혼자 오는 길은 아마 떨리면서 두려웠을 것이다. 이제야 같이 오는 무심한 남편이라 미안하면서 또 미안했다.
산부인과는 병원 중에 유일하게 웃음이 나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정말 가보니 일반 병원과는 다른 포근한 느낌과 안정감이 있다. 대기하고 있는 대기자들도 평온하고 차분한 얼굴이었다. 거기서 우리 부부만 유일하게 긴장한 듯했다. 산부인과에 함께 오는 것이 낯선지 좋은지 아내는 긴장된 내 얼굴을 킥킥댔다. 나 역시 긴장한 아내 얼굴을 보면서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곧 아내의 이름이 불렸고 아내만 어디로 들어갔다. 아내가 들어간 문에는 검사실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내가 산부인과를 다녀오면 검사를 할 때의 느낌을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이 어떤 느낌일까 잠시 상상하는데 진료실 문이 열리면서 ‘아빠 들어오시라고 해요.’라는 의사 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아빠?’ 나다.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호칭으로 벌써 반 공식화해 준 셈이다.
들어가니 아내가 먼저 앉아있었고 의사 선생님과 모니터를 같이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드라마에서 봤던 사진이 있었는데 조금은 달랐다. 커다란 검은 주머니 같은 것이 있었고 특별히 아기의 형태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 보이세요? 아기집이 있네요."
의사 선생님이 설명하면서 가리킨 곳에는 아주 작고 희미한 선으로 찍힌 점이 있었다. 그것이 아기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안에 아기가 자라고 있다고 했다. 너무 작아서 숨은 그림 찾기 같았던, 대충 보면 한 번에 못 찾을 것 같은 그 작은 동그라미가 아기라고 한다. 마음이 찌릿할 정도로 놀라웠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자라고 있을 생명과 아내 뱃속에 잘 자리 잡고 있는 생명력이 말로 감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웠다. 내가 아빠가 된다는 기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신비로운 존재를 마주한다는 기쁨과 환희가 더 컸다. 그리고 앞으로 이 경이로운 존재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찼다. 의사 선생님은 조금만 더 지나면 아기가 심장을 뛰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심장이 잘 뛰는 게 확인되면 아기는 한 번의 큰 산을 넘은 거라고 했다. 그전까지 산모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저렇게 작은 것에 심장까지 뛰다니 들으면 들을수록 놀랄 노자다.
의사 선생님은 사진과 설명과 당부로 우리의 임신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고 임신 확인서를 발급해 주었다. 이 서류를 가지고 보건소에 가면 임산부 등록도 가능하고 여러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병원과 국가에 임신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이제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저 작고 소중한 존재를 앞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