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2 육아일기
생명의 잉태와 탄생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떠한 일보다 신비롭다. 이 신비로움은 일반적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오죽 일반적인 표현과 내용으로 표현할 수 없으면 사람 알을 깨고 태어나거나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표현했을까? 물론 왕의 탄생이라 더욱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것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신비로운 계시를 갖고 태어난다. 태몽이다.
우리 아이의 태몽은 아내가 꾸었다. 임신 사실을 알기 며칠 전 아침 아내가 ‘혹시...’ 하면서 말을 꺼냈다. 꿈 이야기였다. 너무 생생하기도 하고 내용이 흔히 얘기하는 태몽류의 꿈이 아니냐고 하면서 말이다.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크고 빨간 돼지 저금통 두 개를 주었다고 했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던 그 돼지 저금통이었고, 어찌나 빨갛고 선명하며 탐스러운지 생생하다고 하였다. 또 빈 저금통이 아닌 17만 원 정도의 돈까지 들어있는 저금통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 전이기에 조금은 긴가민가하고 조금은 기대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꿈이 그냥 지나가는 꿈이 아니라 태몽임을 확인했다.
태몽은 아내만 꾼 것이 아니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처음 맞는 주말 우리는 원래 있었던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누워서 쉬고 있었다. 둘이 아닌 셋이 맞는 첫 주말을 늘어지게 쉬고 있었는데 장모님(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일상적인 안부를 전하시더니 갑자기 꿈을 꾸셨다고 하면서 말을 꺼내셨다.
어머님이 길을 가시는데 어떤 사람이 진귀한 보물을 주었다고 하셨다. 그걸 받고 가던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사람이 나타나 고가구를 건넸다고 하셨다. 보물에 고가구까지 한 아름 지고 가시는데 세 번째 어떤 사람이 기억은 안 나는 뭔가 귀한 것을 주었고 세 가지 귀하고 좋은 것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이거 혹시 태몽 아니냐며 혹시 무슨 소식 있는데 아직 얘기하지 않는 거 아니니? 여쭤보셨다. 바로 며칠 전에 임신 사실을 알았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가족에게도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고 나서 서프라이즈로 알리려 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먼저 임신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머니의 그 꿈은 누가 봐도 태몽이었고, 아내의 배에 아주 작은 생명이 있었다. 우리 둘은 너무 놀라 당황하였지만 금방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고만 넘겼다. 그렇게 허무하게 임밍아웃을 할 수 없어서 어찌어찌 말을 돌려가면서 전화를 끊고 나와 아내는 어머니의 귀신같은 촉에 엄청 놀랐다. 아내는 어머니께서 예전부터 촉이 좋았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엄마와 딸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사실 난 태몽에 대해 큰 생각이 없다. 매번 어머니께 물어보곤 또 까먹고 기억하지 못한다. 비과학적인 영역이라서 그런지, 내 태몽이 별거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막상 내 자식의 일이 되고 보니 꿈 하나가 보통 의미가 아니다. 어떠한 사주나 예언보다 믿음직스럽고 운명적이다. 더욱이 그 꿈속에 빨간 돼지저금통, 보물과 고가구 등 진귀한 것들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 틀림없다.
그나저나 아내와 어머님의 꿈에 귀한 것이 두 개씩, 세 개씩 등장하는데 설마 쌍둥이는 아닌가 모르겠다. 이 역시 허투루 넘길 부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