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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내일도맑음 Jun 23. 2024

임밍아웃

20240305 육아일기

  아내는 정직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을 포함하여 남들이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았고, 반대로 하라는 것은 무조건 해야 했다. 규칙을 좋아했으며 일정한 법칙과 틀 속에 있는 것이 편했다고 한다. 지금도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에 안도를 느낀다. 교통법규나 법도 잘 지켜 30대 중반이 되어 연애할 때 나를 따라 무단횡단을 처음 해보았다고 할 정도다.      


  이런 아내다 보니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싫어한다. 갑자기 문 앞에서 로맨틱하게 놀라게 해 준다거나, 갑작스러운 사랑 표현 등을 부담스러워한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아니 시작하기도 전에 나에게 자신은 서프라이즈를 싫어한다고 공언했었다.      


  과연 임신은 특별한지 이런 아내가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양가 부모님께 임신을 특별하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엄청 놀라고 특별해 부모님들의 눈물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이런 결심 후 SNS나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사례를 찾고 분석하며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어떤 타이밍에 어디서 공개해야 할지, 선물이나 물건을 준비할지 아니면, 말로만 전할지 등등 고민이 깊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던지 새로운 모습에 꽤나 귀여웠다.     


  양가 부모님은 결혼 전이나 결혼하고 나서 우리에게 아기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으셨다. 빠르지 않은 결혼으로 주변에 다들 손자 손녀가 있어 부러운 마음이 반,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걱정 반이셨을 텐데 말이다. 그 마음을 밖으로 내뱉지 못하시고 속으로 삼키셨을 부모님들의 마음을 아내가 잘 알고, 감사해서 서프라이즈를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부모님께도 감사하고 아내에게도 감사해 함께 열심히 고민했다.     


  고민의 깊이와 더불어 시간이 점점 흘러갔고 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려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초기 임산부인 아내가 근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회사에 알려야 했다. 그래도 회사보단 부모님께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어찌하나 고민하던 차에 장모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실 일이 있으셨고 아내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점심 약속을 잡았다.      


  평일 근무 시간에 직장이 서로 멀어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아내는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을 최대한 숨기고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아내가 선택한 서프라이즈는 임산부 배지를 보여드리는 것이었다. 서프라이즈를 열심히 고민하던 것에 비해선 특이하진 않았지만, 두 모녀에게는 특별했다. 아내가 어머님께 보여드릴 게 있다며 임산부 배지를 건넸고, 받으신 어머님은 처음엔 어리둥절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곧이어 의미를 알아차리시고는 많이 놀라시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또 많이 축하해 주셨다. 특별한 것 없는 서프라이즈라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 특별했고 더욱이 모녀만의 특별한 감정교류가 있었다.     


  첫 서프라이즈를 잘 끝내고 아내와 나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형식이든 많이 기다리셨을 기쁜 소식을 빨리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멀리 계시는 장인어른, 우리 부모님께는 영상통화로 임신테스트기나 초음파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말씀드렸다. 부모님들의 눈물을 눈앞에서 못 봤지만, 소식을 전해 들으신 부모님들의 표정은 지금까지 뵈어왔던 어떤 표정보다 기뻐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너무나 평범했지만 세상 가장 특별한 서프라이즈였다. 인생 선배들이 임신하면 어떤 효도보다도 더 큰 효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던데 맞는 말이었다. 나는 특별히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좋아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다. 묘한 기분이었다. 더불어 작은 서프라이즈를 최고의 서프라이즈로 만들어 주고 큰 효도를 할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아기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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