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까 시리즈 ] 01 비건카페 달냥
비건은 그런 음식 먹으면 안 돼. 그건 비건 아니야. 채식을 시작하신 분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그런데 비건이냐 아니냐가 그렇게 쭉 선 긋는 것처럼 구분되지는 않아요. 일주일에 한 번 채식데이를 가지거나, 하루 한 끼만 채식할 수도 있는 거죠. 열 명의 비건이 있다면 열의 비거니즘이 있다고 생각해요. - 비건카페 달냥 캘리 님 인터뷰 중
비건카페 ‘달냥’은 서울혁신파크 상상청 1층에 있는 비건 음식점이자 카페다. 서울혁신파크 입주민들에겐 비건 까르보나라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쌀가스와 양배추 샐러드, 세 가지 맛 파스타, 두유아이스크림 등 일반 음식점과 별다르지 않은 메뉴가 눈에 띈다. 비건에게도 소중한 공간이지만, 비건 음식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일반인이 슬쩍 채식을 시도해보기에도 좋은 곳이다.
서울혁신파크는 파크에 입주한 다양한 혁신단체와 함께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독자에게 제안하는 <해볼까>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그 첫 시도로 비건카페 달냥을 만나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Q. 채식을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채식을 하면 생활이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곤 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사회생활이 많은 사람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어디에 가도 제가 비건이라는 이유로 존재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회식을 다같이 가게 되면 누군가 비건인 저를 챙겨주는 것부터 자연스럽지가 않죠. 가끔 저를 배려해서 뭔가를 사다 주시기도 하는데 먹지 못하는 음식인 경우도 있어요. 그렇다고 ‘이거 내가 먹지 못하는 거야’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또 상처를 받을 수도 있잖아요. 모든 일들이 어려워요.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숙제죠.
Q. 비건을 하는 사람들이 까다롭다거나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도 들어보셨어요?
그런 편견이 있어요? 비건으로 살면 사회생활이 늘어요! 정말요. 식당에서도 사장님들하고 친하게 지내야 음식에서 고기라도 빼달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상대를 불쾌하지 않게 하면서 채식을 유지하려면 일단 살갑게 대해야 하거든요. 제가 대학 다닐 때 김밥을 자주 먹었는데, 그 천 원짜리 김밥 주문하면서 햄을 빼달라고 하면 유난이잖아요. 그래서 김밥집 사장님과 친해지고 음료수도 가끔 가져다드리면서 얼굴을 텄어요. 비건이 까다로운 사람일 거라는 건 편견이에요.
채식주의 중에서도 동물을 먹지 않는 식습관에서 나아가 가죽제품이나 양모, 오리털, 동물 실험을 하는 제품 등을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상 비건(Vegan)이라고 한다. 동물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을 먹는 경우는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arian), 해산물을 먹는 경우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 상황에 따라 간헐적 육식을 하는 경우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이라고 부른다. 비건이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지키다 보니 이런 채식의 모습이 하나의 수직적 단계로 보이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비건으로 살기 위해서는 락토 베지테리언이나 페스코부터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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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캘리도 락토베지테리언에서 시작해 완전 비건의 삶을 실천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처음 비건을 시작하는 분들께도 이런 단계적 접근을 추천하시나요?
그런 편이에요. 플렉시테리안처럼 채식을 간헐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에 한 끼만 비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비건으로 살기는 하지만 사회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을 때는 자신의 식사를 용인하는 사람도 있고요. 얼마나 완벽하게 채식하는가의 경계를 구분 짓는 건 좀 어려운 일 같아요. 페미니즘도 종류가 다양하고, 사람마다 각자의 페미니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비건도 마찬가지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비건 제품을 쓰지만 환경을 파괴하는 아보카도나 팜유는 어쩔 수 없이 쓰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아보카도를 개인적으로 먹는 건 상관없지만 판매는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모든 상황들에 건건이 오랫동안 생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비건은 기본적으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하려 하며 광범위하게는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지속가능성을 지지한다. 그러나 동물을 먹지 않고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만이 답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때로는 비건 제품에 들어가는 성분들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기도 한다. 비건으로 살다 보면 이런 부조리에 회의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Q. 때로는 채식 라면에 팜유가 들어가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팜유 때문에 지구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죠. 환경을 생각하며 선택한 삶의 방식인데 오히려 환경을 해치게 될 때는 없나요?
맞아요. 어떨 때는 아는 걸 피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계속 가려는 관성을 유지하려고 해요. 그게 제가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사람들이 비건에 대해 가지는 편견 중 가장 큰 부분인데,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 다 지킬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래서 비건을 하겠단 생각을 선뜻 못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하는 게 낫다고 항상 말씀드려요.
Q. 비건으로 산다는 건 삶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일 같아요. 그럼에도 비건으로 사는 이유가 있다면요?
가끔은 ‘진짜 지금은 고기 먹을 때가 아닌데’라고 강경하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세계적으로 너무 많은 재난이 있으니까요. 방하는 녹고, 기후난민은 살 곳을 잃고, 동물들은 죽고 있잖아요.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키워드에 모든 게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요. 비건을 하는 게 모든 사회 가치들과 연결되어 있어요. 보통 지속가능성이라고하면 환경을 생각하시는데, 지구라는 생태계 안에 있는 인간과 동물, 강과 바다, 공기까지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다는 바다인채로, 강은 강인채로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거요. 인간도 행복하고 동물도 행복할 수 있는 환경으로요.
단순히 비건으로 사는 것뿐 아니라 비건 음식을 파는 사람으로서 캘리는 또 다른 차원의 고민도 하고 있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일회용품 소비가 늘어나는 요즘엔 그런 고민이 깊어진다. 음식을 일회용 용기에 담아 팔면 결국 쓰레기가 늘어나고, 그런 행동이 비건의 가치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Q. 코로나 때문에 쓰레기가 더 많아지고 있는데 달냥은 어떻게 대처하고 계세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쓰레기를 어쩔 수 없이 많이 만들고 있잖아요. 저도 코로나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천 마스크를 썼는데 손님들에게 안정감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고민이 돼요. 마스크도 그런데 일회용품은 더 하죠. 저희 카페도 그런 고민이 있어요. 물론 플라스틱 용기는 안 쓰지만 그럼 종이 쓰레기는 또 괜찮나 고민이 많죠. 곧 답을 찾게 되겠지만요.
인터뷰를 마치며 캘리가 꿈꾸는 비건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모든 사람이 비건이 되는 세상을 꿈꿀 줄 알았는데 의외로 캘리가 바라는 그림은 ‘비건인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였다. 비건 이슈를 삶 전체로 끌어안고 살면서도, 비건이 아닌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달냥은 단순한 비건 음식점이 아니다. 비건들을 위한 커뮤니티이자 해마다 열리는 비건페스티벌의 중심이고, 사회적경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쉼터다. 채식을 시작해보려는 10대나 20대 청년들이 부모님과 함께 이곳을 찾기도 하고, 비건들이 모여 채식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서울혁신파크에서 하는 다양한 행사에서도 달냥의 채식 케이터링을 만날 수 있다. 전환기지의 파크에서 지내다 보면 비건으로서의 삶이 조금씩 물든다. 자연스럽게 채식을 시도해보게 된다. 파크에 있는 사람들처럼 당신도 채식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꼭 모든 끼니에 채식을 하지 않아도 괜찮고, 동물성 성분이 들어갔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캘리의 말대로 조금씩 그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의미가 있으니까. 비건, 해볼까?
인터뷰 ㅣ박초롱 (딴짓매거진 편집장)
영상 촬영 편집 ㅣ요지경필름
사진 ㅣ서울혁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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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한 다양한 혁신그룹과 함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종용 토크쇼 [해볼까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해볼까 시리즈]의 주인공은 상상청 1층 비건카페 달냥의 캘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