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지, 비도공지, 팬시지, 특수지
북디자인을 공부하며 얻게 된 지식을 정리한 글입니다.
"그것을 경험한 인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가능성에 이끌려 그 위에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백白>, 하라 켄야, 안그라픽스
하라 켄야는 <백>에서 새하얀 종이가 가지는 특별한 능력에 대해 얘기합니다. 바로 인간의 창조성이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충동을 자극하는 능력입니다.
텅 빈 종이의 존재가 글을 짓고 싶다는 본능을 일깨운다는 것이죠.
그림책 작가 이수지도 종이를 보면 그리고는 못배기는 즐거운 충동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종이가 가진 한계(경계)가 디지털과의 차이점이라며, "경계 없는 영토는 싫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종이 한 장이 가지는 제약 또한 창작의 욕구를 자극하는 종이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종이라는 매체는 창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요도 만큼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종류의 종이가 있습니다. 종이의 특성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나 분위기도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일반 독자들 가운데서도 종이의 두께, 무게, 질감 같은 것들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이의 물성이 실질적인 내용과 꼭 맞닿아 있다면 책은 더할나위 없는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종이의 선택이 북디자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셈이죠.
종이의 특성
책 제작에 있어 고려해야할 종이의 몇 가지 특성부터 간단히 얘기해 보겠습니다. 내 글을 인쇄하기 적절한 종이인지 확인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특성입니다. 이를 인쇄적성을 평가한다고 하죠. 고려할 점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잉크 흡수성
백색도: 종이의 흰 정도.
표면 강도
평활도: 종이 표면의 매끄러움 정도.
내접도: 耐折度(접히는 것을 견디는 정도). 종이의 빳빳함 정도.
선명도
불투명성
탄력성
두께 (1㎛=1/1000㎜)
평량: 종이의 가로 1m x 세로 1m의 무게.
친환경 인증
.......
"종이의 세계는 넓고 유별나다. 여러 종류의 종이마다 특성이 있는데, 이 특성이 책에 특색을 더해준다. 평량과 두께, 평활도, 백색도, 불투명도의 차이로 얼핏 동일해 보이는 흰색 종이도 무한대의 백색이 존재한다." <펼친 면의 대화>, 전가경, 아트북스
내지가 지나치게 투명하면 반대면 글씨가 비춰 보여 독서를 방해하기도 하고, 표지가 너무 잘 접히면 책이 금새 망가지겠죠. 무게와 투명도, 표면 강도와 탄력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책의 분위기에 맞게 백색도를 조절하거나 의도적으로 평활도를 낮춰 거칠거리는 질감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종이의 종류
인쇄용지는 먼저 크게 도공지와 비도공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공처리를 한 도공지 종류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도공은 단면 또는 양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트지
백상지(모조지)를 원지로 해 도공 처리하고 높은 광택을 입힌 종이입니다. 고급 단행본이나 미술서적 제작에 주로 사용됩니다.
스노우지
아트지보다 탄탄하고 뚜거운 종이입니다. 기본적으로 무광택이며, 은은한 광택이 특징입니다.
경면광택지(CCP)
백상지를 원지로 해 Cast Coater로 도공 처리한 종이입니다. 아트지보다 표면 광택이 높습니다.
경량코트지(LWC)
전면 컬러 인쇄가 많을 때 사용하기 적합한 종이입니다. 평량이 낮고 불투명도가 높습니다.
매트지
무광택으로 도공 처리한 종이입니다.
비도공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도공지는 소재의 질감을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고 공정이 간소합니다. 펄프의 구성 비율에 따라 상질지, 중질지, 하급지로 분류됩니다.
백상지
A4 용지보다 약간 두껍고 광택이 없는 종이입니다. 스노우지보다는 매끄럽습니다. 잉크가 잘 스며들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단행본 내지에 주로 사용됩니다.
도공지와 비도공지의 중간인 미도공지도 있습니다.
MFC지
백상지에서 인쇄 적성과 불투명도를 개선한 미량코트지입니다. 별도 설비 없이 공정 중에 종이 표면에 안료를 코팅합니다.
표지에는 무늬나 색상, 질감이 들어간 팬시지가 굉장히 많이 사용됩니다. 도공지의 한 종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엠보스지
아트지, 코트지 등에 각종 무늬를 넣은 종이입니다. 무늬지라고도 합니다.
러프그로스지
거칠고(rough) 광택을 띄는(gloss) 종이입니다. 반누보*의 대체지 개념으로 책 표지에 상당히 많이 사용됩니다. 대표적으로 랑데뷰와 몽블랑이 있습니다.
*반누보: 활엽수 펄프를 주로 쓰는 일반 인쇄용지와 달리 침엽수 펄프를 주원료로 사용해 탄력과 쿠션감이 뛰어난 수입지로, 러프그로스지의 대표격.
색지
색상이 있는 종이입니다. 책 내지가 시작되기 전 들어가는 면지에 주로 사용됩니다.
펄지
펄이 은은하게 깔린 종이입니다.
티끌지(혼모지)
불규칙한 패턴이 특징인 친환경 종이입니다.
서적지로는 종이의 종류를 이 정도로 단순화해도 되겠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특수지가 있습니다.
박엽 인쇄용지(인디아지)
주로 표백화학펄프로 제조되는 아주 얇고 불투명도가 높은 종이입니다. 사전이나 성경 등에 사용됩니다.
크라프트지
크라프트 펄프로 제조되는 종이입니다.
트레이싱지
반투명 종이입니다.
마분지
주로 짚을 원료로 만든 종이입니다. 누런 빛이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본문에 주로 쓰는 종이는 약 80g~120g 사이입니다. 사진집이나 띠지의 경우에는 100g~200g 사이의 종이를 사용하며 책 표지는 210g~250g의 종이를 사용합니다." <북 디자인 올인원>, 김동건
간단하게 '종이 투어'를 해봤습니다. 위에 나열한 종이 말고도 코튼이 함유된 판화지나 전통 한지, 패브릭 등 말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제지 업체 마다 분류 기준과 명칭이 달라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요. 온갓 프랑스어와 영어들이 난무해 숨이 턱 막힙니다.
그래서 더 쉽게 종이를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이것 저것 뒤져봤는데요.
종이 깊이 알기
저는 아직 (금전 이슈로) 구매하지는 못했지만, 디자인올인원의 <컬러&페이퍼 올인원>을 소장하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디자인 올인원 실무패키지를 구매해 사용해본 적이 있는데 기초적인 지식을 쌓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https://designallin.one/shop_view/?idx=18
또 디자인을 하시는 분이라면 삼화제지에서 샘플북을 신청해 착불 택배비만 내고 받아볼 수 있으니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디자인을 하지 않으시더라도 사업자 등록증이나 학생증이 있으면 신청이 가능합니다.
성원애드피아의 애드피아몰에서 샘플북을 주문할 수도 있습니다. 샘플북 금액은 2000~7000원 정도여서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이 외에 두성종이 서초 쇼룸 방문 신청을 통해 1시간 동안 직접 종이를 만져보며 차이를 익혀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다녀오기 전이라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네요.
다음 글에서는 타이포나 제본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일단 소설, 인문서, 자기계발서 등 각 카테고리 별로 표지에 가장 많이 쓰이는 서체가 무엇인지부터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