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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재 Aug 09. 2021

모로코2일: 맨발 주의, 침 뱉는 상인 주의

3년 전의 모로코


일에 지쳐있다 문뜩 작가서랍을 열어 봤다. 모로코 여행기를 쓴다더니 하루 쓰고 말아 버렸더라. 글을 읽으니 그때가 떠올랐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21일 여행기를 완성해보고 싶다. 3년 전 일을 떠올려 쓰다 보니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기억 조작이 많다.




탕헤르 이튿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구 밀도로 잠을 해결하고 비몽사몽 한 채 아침식사 테이블에 앉았다. 단 소스(꿀로 추정)와 버터, 올리브 무침, 대추 절임, 구멍이 숭숭 뚫린 바그리르(빵의 한 종류), 난, 살구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익숙한 듯 나이프와 손을 휘저어가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 눈치를 봐가며 천천히 수저를 들었다. 걸쭉한 질감에 진한 색깔로 약간의 찻잎 향이 나는 소스를 빵에 발라 먹으면 맛이 그만이었다. 차게 식은 빵을 보완해주는 맛. 여기에 올리브까지 곁들인다. ‘모로코1일’에서도 말했지만 이곳에서는 올리브만큼은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바그리르와 살구


식사를 하고 나서는 테라스에 들렀다. 모로코 하면 옥상 아니겠는가. 대나무로 엮어 두른 옥상에서 보는 탕헤르를 놓칠 수 없지. 음미의 순간은 아주 짧았다. 서양인들이 우글우글한 곳에서는 10분 이상 버티기 힘들다. 파란색과 주황색, 초록색을 입힌 유리창을 뒤로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여기까지는 더할 나위 없는 모로코 여행이었다.


해변가 맨발주의


숙소를 나서자마자 목이 타기 시작했다. 얼음물 하나 없는,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 속에 오렌지 주스만 한 게 없었다. 생 오렌지를 슥슥 갈아냈을 뿐인데 어떻게 그런 맛이. 미지근한 것 빼곤 완벽한 맛이다. 목을 축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혀에 남은 오렌지맛을 다시며 탕헤르 해변에 다다랐다.


바닷가 모래 속에는 아주 검고 작은 공이 굴러 다녔다. 공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더위에 축 처진 낙타가 보인다. 신중히 걸어도 낙타 똥이 밟히는 건 어쩔 수 없다. 낙타가 해변가에 주저앉은 이국적인 풍경을 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트랩이다.

힘 없이 늘어진 낙타


‘낙타 주인’이 누가 봐도 관광객인 우리를 보고 손짓했지만 낙타를 타지는 않았다. 낙타가 너무 지쳐 보였던 것도 있지만 값이 비쌌다. ‘이곳 사람들은 참 돈도 쉽게 번다. 일은 낙타가 하는데 돈은 자기네들이 버네’라고 되뇌었다. 맨발로 모래알을 느끼려면 낙타가 있는 곳을 피해 다녀야 했다.


해변가 상인주의


어떤 관광지를 가도 똑같겠지만 탕헤르 해변도 상인들이 곳곳에서 길을 가로막는다. 좁은 골목길에는 모로코 전통 의상인 질레바를 팔거나 자개로 만든 귀걸이를 파는 사람들이 많다. (귀걸이는 하나 구매했었는데 금세 녹슬어버렸다. 사실 이미 녹슬어 가고 있었고) 각종 거울이나 술잔 등 장식품들도 파는데 대체 그걸 누가 사가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만난 상인은 탁 트인 해변가에서 카펫을 파는 상인이었다.

수산시장의 모습

상점 바로 앞의 돌바닥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상인이 다가오더니 형형색색의 카펫을 흔들어 대며 호객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를 외치며 시선을 바다로 돌렸지만 자꾸만 호객하는 소리가 들려와 거슬렸다. 손사래를 치며 다시 한번 ‘노’를 외칠 때쯤이었다. 상인이 동행자를 향해 침을 뱉는 게 아니겠는가. 생각지도 못한 봉변이었다. 너무 놀라고 기분도 나빠 벌떡 일어서서 욕을 하려 했더니 상인은 이미 본인의 점포로 돌아가고 있었다.


푸른 바다를 만끽하는 순간 기습을 당한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굳이 그를 쫓아가 더 기분 나쁜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10초 정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주 별일이 다 있네.




남은 이야기

올리브와 올리브유 겟

이날 다시 한번 시장을 들렀다. 전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올리브유와 올리브부터 손에 넣었다. (올리브유와 올리브는 아실라로 이동할 때 숙소에 두고 갔다. 아까워라.) 작은 새우와 말린 고추, 저렴한 닭고기를 사서 새우가지볶음, 오븐치킨구이를 해 먹었다. 치킨을 한입 베어 물자 핏물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똥맛 가지파스타보다는 먹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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