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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재 Aug 11. 2021

모로코3일: 사진은 노, 키스는 오케이

아실라의 봄

나지 않는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이제 기억나는 것들만 적어 옮기려고 한다. 3년 전 백수 시절의 여행이다.




탕헤르와 작별 인사를 하고 아실라로 발걸음을 옮겼다.(사실은 갔다가 돌아오는 루트) 가는 길은 택시, 버스  가지였는데 우리는 그랑(grand)택시 이용했다. 다른 관광객과 나눠 타면 저렴하긴 하지만 그래도 택시가 버스보다 2배는 비쌌던  하다. 많이 지쳐 있었겠지.


택시는 50~60대 정도 돼 보이는 커플과 동승했다. 둘다 키가 180은 돼보였고 머리칼은 금발에 피부색은 특유의 빨간빛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여자는 레게머리를 붙여 올려 묶었고 남자는 멋진 곱슬머리를 목까지 길렀다는 것. 그 멋에 압도당해 말은 한마디도 걸어보지 못했다. 눈웃음 정도 주고받았나.


벽화마을이라지만 바다가 더 이쁜 아실라

날씨는 구리지만 내가 본 아실라의 모습

아실라는 벽화마을로 불린다는데 정작 기억나는 벽화는 없다. 그저 성벽이 아주 멋들어지게 펼쳐진 항구 도시 정도로 기억된다. 작은 마을이어서 관광객이 지나치게 많지도 않았다. 관광지스럽긴 또 무척이나 관광지스럽다. 도착한 직후에는 역시 테라스가 있는 식당에 앉아 오렌지 주스부터 주문해 목을 축였다.


든든하게 오렌지향을 채우고 곧장 바닷가로 향했다. 사람들이 가는 방향이  관광지라는 생각으로  준비 없이 걷기 시작했다.   위에서 조개와 실로 짜낸 팔찌도 하나 장만했다. 팔찌 상인이 들려주는 음악에 취해 한참을 듣다가 홀린  돈을 지불하고 말았. 그때는 오버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가방도 샀어야 했어.

이 음악가가 손에 찬 팔찌가 내가 산 팔찌다

길에서 사랑스러운 모로코 여자 아이를 만나기도 했다. 3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아빠의 팔뚝에 편안하게 앉아 관광지를 누볐다. 너무 이쁜 모습에 ‘아이의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 아빠에게 물었다. 역시 ‘’, 대신 ‘키스는 해도 된다 한다. 갑작스럽게 아이의 뽀뽀를 받게 됐다. 모로코 사람들  일부는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미신을 믿고 있다고 들었다. 불쾌한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아 카메라를 자주 들지 않았고, 휴대폰엔 고양이 사진만 가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풍경이라도  많이 찍어둘걸 하는 생각이 든다.


라마단 기간의 맥주


공교롭게도 라마단 기간에 모로코를 방문했다. 그렇다 보니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기는 힘들었다. 대신 ‘비어’라고 소곤대면 레스토랑의 안쪽 자리로 안내해준다. 아실라의 식당에서는 가지요리가 일종의 밑반찬으로 나왔다. 차갑다 만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이맛도 저맛도 아닌 가지요리를 맛봤다. 그리고 주문한 조개 구이와 소고기찜, 역시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었다. 모로코 음식은 항상 상상 그 이하의 맛을 보여줬다. 정말 뜬금없고 어색해서 리액션이 고장 나는 그런 맛. 왜 찜에는 항상 콩줄기를 넣어야 하는 걸까.

모로코 요리는 정말 모르겠다. 올리브와 가지찜


그래도 아실라에서는 잊을 수 없는 노을을 봤다. 강릉 어딘가에서 본듯한 방파제 위에 앉아 오랫동안 노을을 바라봤다. 무질서하게 떠있는 고기잡이 배들이 가로등 빛 아래서 동화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노란색 가로등, 그리고 파티를 즐기러 가는 듯한 10대 소년소녀들이 어우러졌다. 그런 풍경에선 빼놓을 수 없는 게 웃통을 벗은 아이들과 함께 뛰노는 강아지들이다.


아실라도 역시 인종차별은 있었다. 3~4명의 남자가 ‘차이나’를 외치고 자꾸만 쫓아오는데 그렇게 사람들로 둘러싸여보긴 처음이었다. 몇분이나 졸졸 따라다니며 비아냥댔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비하하는 발언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랍인도 동양인을 차별하냐고?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다.

가로등 불빛이 모든 순간을 로맨틱하게 만들었다

소중한 맛집


꼭 공유하고 싶은 맛집이 있다. 탕헤르를 떠나며 왠지 모르게 다신 맛보기 힘들 것 같아 찍어 두었던 장소다. 낡은 노포인데 ‘양고기 바게트 버거’를 판다. 물론 이건 내가 붙인 이름이다. 양을 꼬치채 구워서 반쯤 썬 바게트 속에 폭 집어넣은 뒤 막대기만 쏙 뺀다. 양배추를 푸짐하게 올리고 각종 소스를 뿌린다. (솔직히 지금은 안에 무슨 채소가 들어갔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모로코의 바게트야 말할 것도 없이 겉바속촉. 내가 기억하는 모로코 최고의 음식이다.

탕헤르 양고기 바게트 버거 맛집


아쉽게도 음식 사진을 찍어두지는 않았는데 흔하디 흔한 컨테이너 외관 사진과 탕헤르 해변가라는 것밖에 정보가 없다. 해변가라고 하면 또 어마어마하게 넓으니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 찾게 된다면 꼭 후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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