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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Mar 27. 2023

선생님의 눈물

"책이 읽고 싶어"

할머니는 평소 조용하고 움직임이 거의 없으셨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하지는 않았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할 때는 요양보호사를 부르지 않고 혼자 타려다가 바닥에 주저앉을 때가 많았고, 뭐든 스스로 하시기 위해 손이 닿는 곳에 협탁을 놓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다른 어르신들은 야간에 화장실을 이용할 때 보통 벨을 눌러 보호사를 부르는데, 할머니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을 가시려는 통에 야간근무자가 cctv를 보고 달려가야 하는 일도 빈번했다.

어르신들과 대화도 없으시고, 침대에서 멍하니 창밖만 보던 할머니의 모습에 걱정이 많았는데, 책을 읽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책을 읽으려면 집에서 안경을 가져와야 하는데......"

"아! 아드님께 전화드릴게요. 아드님이 선생님이시라고 했죠?"

"응, 남편은 교장이었고 아들은 선생이고..... 나도 선생이었는데, 그럼 뭐 하나. 이제는 남의 신세나 지고 있으니..."

"........."


할머니께서는 중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셨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을 지낸 남편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요양원으로 모셔서 함께 지내시는 게 좋지 않겠냐는 질문에 질색팔색, 손사래를 치시는 할머니다. 남편들은 건강할 때 아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가져다 드릴 책을 고민하다가 이해인 수녀님의 에세이 몇 권을 골랐다.

아드님이 급히 가져온 안경을 코에 걸치고 책을 보신다. 침대 난간을 세우고 난간대 사이로 두 다리를 내리고 침대 난간을 독서대로 이용하신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책 읽기에 푹 빠지셨다.

"재미있으세요?"

"응!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했거든. 재미는 있는데, 에고 이제는 눈이 침침해서 글씨가 잘 안 보이네."

하루종일 책을 보시더니 책 몇 권을 며칠 만에 다 읽으셨다.

책을 더 가져다 드리고 싶지만, 작은 글씨에 눈이 아프다고 하셔서 그만두었다. 생각 끝에 '좋은 생각' 큰 글씨판을 한 권 사드렸다. 글씨가 커서 눈이 편하시다고 하신다.


책을 읽으시던 할머니께서 고개를 갸웃거리신다.

"보호사님 이름이 고재욱이 아닌가? 여기도 고재욱이 나오네."

좋은 생각에 실린 책 광고를 보신 거다.

"네. 맞아요. 그 고재욱이 이 고재욱이예요."

"오! 작가님이셨구먼. 당신이꽃같이돌아오면좋겠다. 제목도 예쁘네."

"내가 몸이 성해야 서점에라도 가서 책을 사볼 텐데......"

"책이 좀 두꺼운데 읽어보시겠어요?"


표지 다음장에 사인을 한 다음 할머니께 책을 한 권 드렸다. 할머니께서는 읽으시면서 눈이 아픈지 안경을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시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퇴근하기 위해 유니폼을 벗을 때였다. 의례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웬 지폐 한 장이 손에 잡혔다. 만 원이었다. '어, 넣어두고 잊어버린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돈을 넣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할머니가 떠올랐다. 침대에 누워계실 때 빛보다 빠른 속도로 주머니에 찔러 두신 것 같았다.

"할머니께서 이 돈 주셨어요? 아니 언제 넣으셨데요?"

"어찌 작가가 사인까지 해서 준 책을 공짜로 받을 수가 있나? 내가 은행에 갈 수 있다면 더 주고 싶은데, 그것밖에 없네. 이거라도 받게."

돈을 돌려드리자 언성을 높이시는 할머니다.

"왜? 치매 걸린 할머니가 주는 돈이라서 그러나?"

"아니요. 그게 아니라......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곧 스승의 날이다. 그때 꽃을 달아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꽃 한 송이를 가슴에 달고 꽃처럼 웃으신다. 사회복지사가 어르신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어르신들의 환한 표정에 덩달아 기분이 좋다. 앞으로 닥칠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할머니께서 단식을 선언하셨다. 이유를 여쭤봐도 아무런 말씀이 없다고 앞선 근무자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급하게 할머니 병실로 향했다. 나를 본 할머니께서 왈칵 눈물을 흘리신다. 베개 위에 깔아 둔 수건을 들고 엉엉 소리까지 내신다.


요양원 단톡방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문제였다. 보호자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이다. 며칠 전에 일을 시작한 사회복지사가 스승의 날을 맞아 가슴에 꽃을 단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호자들에게 공개했는데, 요양원에서 지내는 한 어르신의 자녀가 할머니를 알아봤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중학교 제자였다. 금세 할머니의 다른 제자들이 소식을 들었고, 갑자기 할머니와 연락이 끊겨서 걱정하던 한 제자에게 연락이 닿았으며, 그 제자가 수소문 끝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선생이란 자가 이 모양이 되어서 다른 사람 힘으로 살고 있으니 창피해서 이제 아이들 얼굴을 어떻게 보나."

"어서 그 사진을 안 보이게 감춰주게. 응. 제발 부탁이야."

"할머니, 벌써 그 사진은 내렸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요양원 프로그램 사진이나 어르신들 모습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어르신들께서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모습은 보호자에게만 전달한다.


열정 가득한 신입 사회복지사가 할머니 앞에 섰다.

"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너무 짧았어요. 어르신들 웃으시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서 그랬어요. 정말 잘못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실눈을 뜨고 곁눈질을 하신다.

"사진을 올리면 올린다고 말이나 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날은 머리도 못 감고 새벽에 잠을 설쳐서는 얼굴도 푸석푸석했는데 그런 얼굴을 만천하에 공개하면 어떡해. 제자가 전화해서는 우리 선생님이 치매 걸렸다고 얼마나 울던지 그 생각만 하면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죄송합니다. 할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사회복지사다.

한마디 거들었다.

"할머니, 저도 잘못했어요. 좀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정말 너무 큰 잘못을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곁에 선 얼굴들을 이리저리 둘러보신다. 그리고는 짧은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들 사과를 하는데, 내가 뭐 힘이 있나. 알았으니까 다들 할 일 해요.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이 있을 거 같으면 미리 말을 해달라고. 눈썹이라도 그려놔야 할 테니까."

다행히 할머니께서 뒤늦은 식사를 요청하신다. 하지만 아직 화가 다 풀리신 것 같지는 않다.


할머니께서 주신 만 원을 책갈피에 넣었다. 아마 이 돈은 평생 간직할 듯싶다.

내일은 올리브영에 들러서 눈썹연필을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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