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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Oct 12. 2021

실패가 아니라고요

9. 실패가 아니라고요


          

 가끔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삶을 보낸 이들과 맞닥뜨린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고 또 위로받기도 한다. 많은 사연과 만나며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는데, 무척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말 못 할 아픔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아무리 불행해 보여도 한 조각 희망은 늘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끝까지 걸어볼 일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부닥쳐있든지 간에, 삶에서 조연은 없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다. 적어도 각자의 삶 안에서는.            

 

 

 열린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바람에 눈을 뜬 아이는, 평소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고는 한쪽 귀를 쫑긋 세웠다. 이때쯤 주방에서 엄마의 재촉하는 소리가 봄바람처럼 귓전을 간지럽혔을 것이다. 그런데 목소리는커녕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정적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엄마가 사라졌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돈 벌러 갔다.” 

아빠는 덤덤하게 말했다. 사내가 엄마에 관해 설명한 전부였다. 얼마 후 아빠는 한 여자를 집에 데리고 왔고 아이는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할머니는 말없이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이는 많은 돈을 벌어서 돌아올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감췄다.          

 

 소년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입학식 날에 참석한 학부모들 사이에서 할머니 모습을 목격한 몇몇 아이들의 눈빛이 섬뜩하게 변한 날이었다. 소년은 아직도 그들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야, 남아라!” 

또래보다 훨씬 몸집이 작았던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다른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2층 건물 출입구로 향했다. 그곳에 네 명의 아이들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녀석이 혀를 동그랗게 말아 침을 멀리 뱉었고 다른 녀석은 한쪽 다리를 삐딱하게 한 채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따라와!” 

그중에 키가 제일 큰 녀석이 소년의 코앞에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소년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은 학교 뒤편 창고로 소년을 끌고 갔다.

“돈 있냐?” 

“없는데…….” 

소년이 들릴 듯 말 듯 대답한다. 

“아까 너희 엄마, 아니 할머니냐? 킥킥. 시발 할머니든 엄마든 용돈 주는 거 봤는데?” 

한 녀석이 소년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소년은 아무 저항도 못 하고 고개만 더 숙였다. 돈을 손에 든 녀석이 주위 아이들에게 보란 듯이 지폐 몇 장을 흔들어 보였다. 한 아이는 주먹을 머리 위로 올려 뱅글뱅글 돌렸다. 

“너 돈 없다고 뻥 쳤지? 좀 맞자!” 

대장이 말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소년을 둘러싼 후 바닥에 넘어뜨렸다. 소년이 바닥에 쓰러졌을 때, 창고 지붕 아래 귀퉁이에서 감시카메라가 반짝였다. 순간 손을 흔들고 싶었지만, 쏟아지는 발길질에 손을 들기는커녕 얼굴을 감싸고 웅크리고만 있었다.          

 

 “샌드백!” 소년의 별명이었다. 몇몇은 ‘돈 있냐’와 ‘가방 들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년에겐 한 명의 친구도 없었고, 반 아이들은 소년의 눈물을 하나같이 못 본 척했다. 괜히 나섰다가는 자신이 소년의 입장이 되고 말 테니까.

 손자의 눈 주위에 퍼런 멍이 끊이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할머니가 학교에 찾아왔을 때였다. 그날도 소년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당장 용의자들을 교무실로 불러 모았다. 녀석들은 그런 일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결같이 범죄자들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지. 결정적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다행히 소년이 자주 끌려갔던 창고 뒤에 감시카메라가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었다. 소년은 더는 돈을 뺏기거나 두들겨 맞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친구가 없었고 교실에서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엄마한테 가자.” 

어느 날 아빠가 말했다. 명절에야 얼굴을 내미는 그였다. 소년의 가슴이 요동쳤다. 

“엄마요?” 

소년이 재차 물었지만, 그는 더는 말이 없었다.

자동차가 <천안 시립 봉안당> 간판을 지나쳤다. 

“엄마가……. 왜……. 여기 있는데?” 

아버지는 말없이 소년의 어깨를 감쌌다. 소년이 소리쳤다. 

“엄마 돈 벌어 온다며? 엄마가 죽었어? 왜 말 안 했어?”     

소년은 안치함 앞에 붙은 사진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기다려온 엄마의 얼굴이 가물가물했다.

“간암이었다. 진단받고 두 달 만에 떠났는데, 차마 어린 네게 그대로 말할 수가 없었구나. 이제 엄마 그만 보내주자!” 

사내가 소년의 등을 쓸어내렸다. 소년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왜 보내, 누구 마음대로 보내, 보내지 마.”          


 대인기피증, 불면증,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이 청년이 가진 병의 이름이다. 할머니의 도움으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그의 사회적응은 어려웠다. 사회생활이라고는 첫 직장에서 6개월을 보낸 것이 다인데, 그마저도 3개월은 해고하려는 회사와 나가지 않겠다고 버틴 청년의 갈등의 시간이었다고 하니 제대로 회사에 다녔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할머니께서 허리를 다쳐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가 의지할 마지막 언덕이 사라진 것이다. 얼마 뒤 할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았고, 친척 몇이 나타나 할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살던 집을 정리해버렸다. 

 

 고시원에서 한 달 두 달 버티던 청년은 방세를 낼 수 없게 되자 무작정 길거리로 나왔다. 할머니에게 손을 벌릴 수 없었던 그다.           

 부평 지하상가, 청년이 3년 동안 노숙자로 지낸 곳이라고 한다. 그는 종이상자를 바닥에 깔고 잠을 청했다. 바닥에서 올라온 한기가 몸속에 쌓였고 한번 들어온 한기는 나갈 줄을 몰랐다. 그의 몸은 점점 나빠졌다.

 나이 든 노숙인은 동정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젊은 노숙인은 다르다. 청년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사지 멀쩡한 놈이 노숙자라니, 원.” 사람들은 혀를 차며 지나갈 뿐이었다.     

 청년이 아주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끔 노동일을 했는데, 일당을 손에 쥔 날은 선배 노숙인 일당에 둘러싸였다. 중학교 때처럼 거부할 용기가 없었다. 돈을 벌 때마다 뺏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급기야 청년은 일하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거리를 떠날 수도 없었다. 갈 곳이 없었다고 했다. 멍하니, 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청년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더는 떨어질 곳도 없었다.               


 노숙인들의 하루는 밥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도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역 근처에 급식소가 있다.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 수원역 등이 잘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노숙인들은 선조들이 강가에 모이듯이 밥을 먹기 위해 역 근처로 모인다. 청년이 영등포 홈리스 센터에 나타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십 대의 나이에 작고 여린 청년은 금세 눈에 띄었다. 그는 홈리스 센터에 입소했다. 어떤 이들은 혼자서도 척척 역경을 이겨낸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홀로 설 수 없는 이들도 분명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바꿀 능력이 없었다. 몇 명의 사람들이 청년의 사연을 듣고 그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감이라고는 없던 청년의 얼굴이 점점 환해지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먼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청년은 쪽방촌 봉사를 자청하고 한파주의보가 내리면 거리의 노숙인을 살폈다. 몇 달 전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요즘은 간호조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노숙인을 위한 요양원에 취업할 계획이다.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더 심해져서 청년을 알아보지 못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엄마와 할머니를 방문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봉안당과 요양병원이 문을 걸어 잠갔다고 아쉬워한다.               

 

 그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었다.

“꿈이요? 아, 예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부모 없는 애들을 돕고 싶어요.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는 아이들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실패한 인생은 없다고요. 그저 실수한 거라고요. 그 애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저처럼 쓰러져도 다 포기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요. 실수는 늘 돌이킬 수 있는 거잖아요.”     

 청년의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다. 그는 넘어지고 쓰러져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의 인생을 실수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사막을 건너면 오아시스가 기다릴까, 사실 우리 인생은 사막 하나를 건너면 또 다른 사막이 기다리고 있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다시 건너는 사막은 분명 처음보다 수월할 것이니까. 어쩌면 첫 사막에서 발견하지 못한 환상적인 오아시스는 두 번째, 세 번째 사막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별은 가장 짙은 어둠 속에서 가장 영롱하게 빛나는 거니까.                                             



*그가 하루빨리 대인기피와 불면증을 이겨내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은총이 그에게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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