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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Oct 12. 2021

삼만리쯤 가면 거기 있을까

7. 삼만리쯤 가면 거기 있을까?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그가 앉아있었다. 광식 씨다. 체격은 보통 사람의 세 배쯤 될 것이다. 아래쪽 고무가 다 닳은 목발 한쪽을 길옆에 세워두고 두 다리를 쭉 편 채 상체를 뒤로 젖힌 모습 때문에 그의 불룩 솟은 배가 더 높아 보였다. 양말을 신지 않은 발등에는 보슬보슬 일어난 살결이 눈송이처럼 하얗게 뭉쳐있었다. 재빠른 사람들은 진작에 그늘에 자리를 잡았지만, 느릿한 광식 씨는 햇살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고 있었다.     

 

 그가 아는 체를 하며 몸을 둥글게 말아 비틀었다. 그가 내보인 팔 뒤쪽으로 찢어진 옷이 너덜거렸다. 그가 미처 말은 못 하고 숨만 몰아쉬었다. 뭔가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는 곧 숨이 넘어갈 참인데, 뒤에 선 한 할머니가 느긋하게 말했다. 

“저기, 천주교에 빵 얻으려고 갔다가 거기 줄 세우는 사람하고 싸웠다네. 한 한 시간이나 됐나.” 

그가 장마철 개여울의 흙탕물처럼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싸운 게 아니라 내가 두들겨 맞았다고요.”     

 

 끼니마다 빵이나 밥을 위해 몇백 명이 줄을 섰고 어딜 가나 새치기는 있었다. 얼마 전까지 노숙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관리자들은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금세 지쳐갔다. 급기야 고성이 나고 때론 듣기에 민망한 상스러운 욕도 들렸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라고 해서 평화와 자비와 사랑만 주는 것은 아니었다.     

 광식 씨는 쉽게 화를 삭이지 못했다. 곧 얼굴 전체가 붉어졌다. 이럴 때는 선수를 쳐야 한다. 그에게 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어떤 사람이 그랬습니까. 내가 혼내줄게요.” 

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6~7세 정도의 지능을 가진 광식 씨는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웠다. 음식 조절이 안 돼서 혈당 수치가 500mg/dL까지 치솟고 작은 일에도 흥분을 잘하는 성격 탓에 최고 혈압이 200mmHg을 넘는 일도 잦았다. 거기에 그는 뇌전증을 앓고 있었는데, 약을 자주 빼먹어서 가끔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발작 증상은 장소를 불문하고 일어났다. 

 한 번은 교회 예배당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이럴 때는 환자의 앞섬을 열고, 허리띠를 풀어주며, 주위에 부딪칠만한 물건을 치운 다음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침이 기도를 막지 않게 해주는 것이 주위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간혹 정신을 차리게 한다며 찬물을 먹이는데, 이는 질식과 흡인성 폐렴을 유발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그가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은 분명했다. 보통 목발을 위태하게 짚으며 절뚝거리고, 걸음도 아주 느린 그다. 이상한 건 광식 씨는 사람들이 있을 때 더 아프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차 안에서 길을 걷는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오른손에 잡은 목발을 뱃사공처럼 허공에 저어가며.

 

 그의 일과는 간단했다. 급식소 앞에 앉아있다가 점심과 저녁, 두 끼를 해결하고 작은 방에 가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다음 날 눈을 뜨면 이른 아침부터 점심 급식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도와줄 만한 사람이 보이면 몸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특히 목사님이나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더 아팠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가족관계 증명서>였다. -상세-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그가 내민 서류를 훑어보았다. 뭐가 좀 이상했다.

부(父)라는 글자 옆에는 사망을 알리는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모(母) 옆으로 네모 칸에는 이름 석 자만 적혀있었고 생년월일이나 주소 같은 내용이 일절 없었다.

그가 송아지처럼 눈을 끔벅거리며 말했다. 

“엄마를 찾아야 하는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남은 가족은 엄마뿐이라며 꼭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오른쪽이나 왼쪽의 찢어진 옷을 내보였다. 센터에 공용 옷방이 있었지만, 그의 덩치가 보통 큰 것이 아니어서 마땅한 옷이 없었다. 슬리퍼를 신은 그의 발이 보였다. 그는 늘 퉁퉁 부어있는 발 때문에 슬리퍼만 신고 다녔다. 찢어진 점퍼는 나중에 구해주더라도 때가 쌓이다 못해 하얗게 일어난 그의 발등을 보고 그를 목욕탕으로 데려갔다. 그가 사는 쪽방에서도 손발은 자주 씻을 수 있었지만, 주로 길바닥에 앉아서 지내는 그는 거의 씻지를 않은 것 같았다. 

 그의 널따란 등판을 보니 벌써 이마에 땀이 맺혔다. 발에 물이 닿자 저절로 때가 부풀어 올랐다. 북북, 손으로 한 번 밀 때마다 굵은 지우게 똥처럼 때가 돌돌 말려 나왔다. 그는 손이 발에 닿지 않아서 씻지를 못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침술 봉사자가 온 날이었다. 늘 아프다는 그를 데려와 침을 맞게 했다. 어김없이 그가 흰 서류를 내밀었다. 그가 침을 맞을 동안 서둘러 근처 주민센터를 찾았다. 미뤄왔던 그의 엄마를 찾기 위해서였다.               

 “2006년 1월 1일 이전에 돌아가신 분은 아무 내용도 없이 공란으로 나옵니다. 그때 전산 작업을 새로 싹 했거든요.” 

주민센터 직원은 덤덤하게 말했다.

 

 광식 씨는 40대 초반의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간질을 앓고 있고 당뇨병에다 혈압이 높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 엄마를 간절히 찾고 있다. 그에게 과연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머리에 대여섯 개의 은색 침과 손가락 사이마다 작고 얇은 침을 꽂은 그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음, 이게 말이지요.” 

그의 흰자위가 일렁거렸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서류로는 엄마가 어디 계신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네요. 일단 도와준다고 했으니 조금 기다려봐야겠습니다. 지금은 광식 씨 다리가 매우 아프니까 좀 나으면 같이 찾아봐요.”     

 그가 큰 머리를 세차게 끄덕였다. 동사무소에서 도와준다는 말에 신이 난 얼굴이다. 

“내일모레면 수급비가 나와요. 그때 제가 빵 사드릴게요.” 

빵을 무척 좋아하는 그가 빵을 사준다는 말은 최고의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다.

광식 씨는 혼자서는 돈을 찾을 수 없어서 농협 직원이 도와줘야 한다며 그에게도 빵을 사줄 거라고 했다. 그러고는 천장을 보며 손가락을 접었다. 그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고 계속 동그랗게 말았다. 금세 열 손가락 전부를 구부렸다.


 수급비가 나오면 그는 빵을 아주 많이 살 모양이다. 아마도 손가락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그 빵을 그에게 다시 돌려줄 것이고, 그러면 그날은 광식 씨가 제일 좋아하는 빵을 가장 많이 먹는 날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에게 서류의 실체를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는 눈을 치켜뜬 채, 배시시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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