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들꽃으로 태어나면
봄과 여름의 중간쯤 쪽방촌 좁은 골목에 꽃이 피었다. 들장미다. 무리 지어 자란 들장미는 높은 철 울타리 안에서 자랐다. 공원인 것 같지만 출입할 수는 없다. 바라볼 수만 있었다.
들장미 무리는 좁고 긴 골목을 검붉은 색으로 가득 채웠다. 그러면 울타리의 격자무늬 틈새로 꽃송이가 머리를 내밀고 그 아래 그늘에는 서너 명의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오전 열 시쯤이었다. 그들 앞에는 소주병이 놓여 있었고 안주는 한 두 봉지의 과자거나 가끔 온몸이 비틀린 오징어였다. 취기가 오르면 사내들은 울타리 안쪽을 향해 서슴없이 바지 지퍼를 내렸다.
사람들을 막아주는 울타리 안에서 들장미는 나날이 붉어졌다.
"형제님들, 안녕하세요. 곧 예배 시간인데 그만 들 마시고 오세요. 식사도 하셔야 하잖아요."
"새로 온 전도사 양반인가? 예배는 해서 뭐하게? 거, 하나님 앞에서 술 냄새를 팍팍 풍길 수도 없고 말이야, 크크."
스포츠머리를 한 사내가 말했다. 그가 빈 종이컵을 들어 보였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전도사가 아니고 쉼터에서 지내고 있어요. 우리 교회는 술 냄새난다고 예배드리는 걸 막지 않아요. 그건 하나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아마도."
한쪽 눈 주위로 퍼런 멍이 든 작고 마른 남자가 끼어들었다.
"에이 무슨. 저번에 보니까 예배 인도도 하고 대표 기도하는 걸 봤는데 아무리 우리를 예배에 데려가고 싶어도 전도사가 거짓말을 하면 쓰나. 큭큭!"
나는 몇 번 더 내 신분을 이실직고했는데 그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쪽방촌이 시작되는 입구에 역전 파출소가 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 말은 거리의 사람들이 타인에게 많은 범죄를 일삼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은 노숙인이 무슨 피해라도 입힐 것이라고 걱정하는데, 노숙인 대다수는 자신에게 상처를 내는 사람들이다. 일반인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은 거의 없다.
파출소 앞에는 사각형 알림판이 있었다. 지명수배자 전단이 붙은 여느 파출소와는 다르게 이곳에는 사람을 찾는 내용이 많았다. 나는 자주 그 앞을 서성거렸다. 무료 배식을 하며 그들 중의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는데 실제로 가출 청소년 한 명을 보호자에게 돌려보낸 일도 있었다.
파출소에서 교회까지 칠팔십 미터 거리의 골목 한쪽으로 들장미 무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 들장미 중에 유독 힘없어 보이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가지 끝에 매달린 장미는 여느 꽃송이보다 색깔이 연하고 꽃잎은 엉성해서 작은 흔들림에도 부서질 것 같았다.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늘어진 가지를 추켜올려서 들장미 무리 속에 넣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가지는 매번 툭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고 맥없는 가지를 계속 들어 올리고 있었다.
무료급식소에서 하루 세끼 배식을 하다 보면 매일 오는 노숙인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내의 얼굴은 낯설었다. 따듯한 날씨에도 두툼한 외투를 입은 채 신발은 공사 현장에서 신는 앞이 뭉툭한 갈색 안전화였다. 얼굴을 챙이 긴 모자로 거의 가렸는데도 희끗희끗한 턱수염이 아래로 한 뼘쯤 내려와 있었다. 나이는 오십 대나 육십 대 초반 같았다. 마른 체구였지만, 다부져 보였다. 일명 공사판 근육이다. 이런 생각은 믿을 만하다. 한때 나는 건축 기사였다.
그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웬만한 분들은 다 아는데 형제님은 여기 처음이신 듯한데요. 저기 보이는 교회 건물 1층 하고 저쪽에 큰 천막 보이죠? 저기에서 밥을 드리니까 식사하러 오세요. 예배에 나오시면 더 좋고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무져 보이는 몸과 달리 눈빛은 흐릿했다.
"저기, 형제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자주 뵐 것 같아서요."
축 늘어진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난…… 나는 이름이 없어."
"네? 이름이 없다니요?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 같은 게 있을 거잖아요?"
그가 대답했다.
"그냥 야! 인마! 어이! 거기! 이렇게들 불렀어. 간혹 어떤 사람은 김 씨라고 부르기도 했어. 김 씨가 흔하다면서."
나는 태초에 아담이 처음 한 일이 떠올랐다. 그건 수많은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흔한 꿀벌만 해도 큰, 작은, 양봉 꿀벌로 나누고 심지어 왕바다리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쌍살벌도 있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장미까지도 콕 집어서 들 씨를 붙여주면서, 그를 두고 흔하니까 김 씨라고 불렀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작은 들꽃이었다면 그는 이미 사랑스러운 이름을 가졌을 것이었다. 시인만이 그를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이잖니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는 인간들이
울며불며 갖는 고민스러운 소유를 갖지 말아라
번민스러운 애착을 갖지 말아라
고통스러운 고민을 갖지 말아라
- 작은 들꽃 中, 조병화
그가 말했다.
"난 괜찮아. 어릴 때부터 다들 그렇게 불렀는데 뭐."
그가 오히려 위로의 말을 전했을 때, 나는 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별생각 없이 그에게 예배에 참석하라고 했다. 그가 말했다.
"난 말이야. 하나님도 믿고, 부처님도 믿고, 마리아 님도 다 믿어."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말했다.
"그 세 분 중의 누구라도 날 좀 빨리 데려갔으면 좋겠거든. 그래서 난 다 믿어."
그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큰 공사 현장에는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신고가 필요 없는 작은 현장에서만 일할 수 있었는데, 그런 일은 꾸준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센터에 그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의 이름을 짓고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가끔 하루 이틀씩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꾸준히 급식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만에 나타날 때는 일을 다녀왔다며 막대 아이스크림을 건네기도 했다.
2007년까지 그처럼 가족관계 등록이 없는 사람을 무호적자라고 불렀다. 2008년부터는 가족관계 미등록자라고 한다. 한 시민 단체는 가족관계 미등록자가 3만여 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아주 기본적인 국민의 권리도 누리지 못한다. 의료보험이나 무상교육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서류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가족관계 등록 창설이 시급했는데, 이게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대략 10가지 서류가 필요했다. 그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첫 번째 서류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성장환경 진술서에 출생지와 성장한 지역을 적어야 하는데,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그의 말이 도통 일관성이 없었다. 다른 서류 작성도 어려운 문제였다. 부존재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부존재 증명 신청서부터 작성해야 했다. 경찰서에 그의 부모의 성명, 국적, 생존 여부를 묻고 지문조회도 했다. 일이 진행될수록 해결은커녕 직면하는 문제가 많아졌다. 그가 잠시 머물렀던 보육원에서 입소 경력을 받아야 했지만, 보육원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그는 자꾸 머리를 긁적였고 갈수록 말이 줄어들었다.
그가 쉼터에 입소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는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유령처럼 떠돌며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그의 환경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정 안되면 사회복지 전산 관리번호를 부여해서 기초생활 보장이라도 받게 해주고 싶었다.
가정법원과 지방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에게 서류 접수를 마치면 법원 허가가 나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말없이 책상 위의 서류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중에 그가 말없이 사라져 버렸다.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나도 그는 무료급식소나 거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미완성 서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는데, 몇 달 후에 서류는 누런 봉투에 담겨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다.
짐작 가는 이유가 있지만, 그의 사정을 다 알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가 먼 시골 현장이나 서울역 근처로 옮겼을 거로 생각하면서 별일 없기만 바랐다.
그가 사라지면서 서류 작업은 중도에 멈췄다. 하지만 그의 이름 짓는 일은 포기할 수 없었다. 혼자서라도 그의 이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고심 끝에 하무명, 하 씨 성에 이름이 없으니 무명이라 지었다.
사실 작명 실력에 자신은 없지만, 그를 이름 없는 사람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그를 만나게 되면 크고 분명하게 그의 이름을 꼭 한번 불러줄 것이다.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서쪽 하늘 끝에, 희끗희끗한 턱수염을 기른 것 같은 구름이 어디 가지도 않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 제 이름이라도 불러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바람이 부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아직 모를 뿐,
이름 없는 꽃은 없다,
이름 없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