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장 난 시간
벌집이라 불리는 쪽방촌에는 아직도 공동화장실과 공용 수도가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한다지만, 창문 없는 2평 남짓한 방에서는 여름이라고 나을 것도 없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씨에 모습을 감춘 말매미가 한층 목소리를 높여 울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골목 안쪽의 한 초록색 대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구급요원 몇 명이 서둘러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에 들것을 든 구급대원 둘이 밖으로 나왔다. 들것 위를 하얀 천으로 덮었는데, 그 모양새가 사람이다. 누군가 죽은 모양이었다.
대문 앞에서 한 여자가 주저앉아 슬리퍼 한 짝을 손에 쥐고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람들 앞쪽으로 머리카락 끝부분만 검은 뒤통수가 보였다. 멀리서 보면 흰색 안전모를 쓴 것 같았다. 김 집사였다.
"무슨 일이에요?"
한 집 건너 알코올 중독과 당뇨, 혈압을 앓고 있는 동네에서 보통은 누군가 죽었다고 해서 이리 사람이 모이지는 않았다.
김 집사가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거, 집주인인데 밀린 방값을 못 받게 생겼다고 저러네. 원 참, 사람이 죽었다는데……."
"이 집은 형식 씨네 아니에요? 그럼 형식 삼촌이?"
형식 씨는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건강한 사람이었다. 가끔 급식소에 나타날 때면, 보통사람의 두 배쯤 되는 밥을 먹곤 했다. 말을 조금 더듬고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지만,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를 삼촌이라 불렀다. 딱히 이유가 없는 호칭이었다.
김 집사가 말했다.
"아니여. 그 사람 마누라, 그리 불러도 되겠지. 얼마간 같이 산 건 맞으니까. 그 여편네가 죽었어. 당뇨가 심했다는데, 요 며칠 술을 주야장천 마셨다더군. 수급비가 원수지. 몇 푼 돈이 나오니까 그 돈으로 술판을 벌였다는 거야. 차라리 돈 한 푼 없었다면 공짜 밥으로 연명이라도 했을 거 아니야. 저런 사람들에게는 그깟 돈, 없는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네. 그려, 차라리 없어야 해."
그의 말이 귓전에서 맴돌았다.
‘무료급식이 없었다면 그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쌀을 샀을 거 아닌가? 돈 없어도 밥 먹을 곳이 있느니 밥 먹을 돈으로 술을 산 게 아닌가?'
김 집사가 다시 말했다.
"거, 일주일을 있었다네. 일주일을."
"일주일이라니요?"
김 집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죽은 지 이미 일주일이 지났다는 거야. 형식이 저 사람이 그 시신과 칠일 밤낮을 함께 보냈다는 거지. 거기에 아내가 일어나지 않자 어디 아픈 줄 알고 이불을 몇 개나 덮어두었다는 거야. 이 더위에 그 두툼한 이불속의 시신이 온전히 견뎌냈겠는가. 다 녹아내렸겠지. 아무리 모질라도, 쯧쯧."
한 구급대원이 마스크를 벗으며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긴 한숨을 쉬었다. 마치 휘파람을 부는 입술 모양에 우리는 그 숨의 끝을 기다렸는데, 끝까지 빈 바람뿐이었다.
그가 말했다.
"혹시 저 안에 남자분과 친분이 있는 분 안 계시나요? 남편분이 이불을 끌어안고 도통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어요. 평소 안면이 있는 분이 설득해서 밖으로 모시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며 두리번거렸다. 그때 구급대원이 내게 손짓을 했다. 내 손이 나도 모르게 올라가 있었다.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진 초록 대문을 넘어서자 지상과 지하를 나누는 갈림길이 나왔다. 대여섯 개의 계단을 내려가자 금세 허리춤 아래로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어두침침한 긴 복도 왼쪽으로 방문들이 촘촘히 이어져 있었다. 방문 맞은편 시멘트 벽에는 한눈에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우산이 세워져 있었는데, 쓱 살펴도 온전한 것이 안 보였다. 문 두 개를 지나고 세 번째 문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나는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방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문 하나를 두고 그는 방 안에서, 우리는 방 밖에서 몇 마디를 나누었다. 그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가끔 무료 급식소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마저도 많지는 않았다.
작은 방 가운데 덩그러니 앉은 그가 보였다. 들어가기 전에 숨을 들이켰다. 최대한 냄새를 맡지 않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발 하나를 방에 들여놓기가 무섭게 코를 찌르는 냄새가 훅하고 밀려왔다. 나는 이런 냄새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시체가 방치되어 살과 뼈가 녹아내릴 때 나는 냄새는 몇 달 씻지 않은 노숙인의 그것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죽은 자의 향은 그녀 대신 남길 말이라도 있다는 듯이 날카로운 비명처럼 생생하게 방안을 떠돌고 있었다.
형식 삼촌은 누렇게 얼룩진 이불로 다리를 가린 채 이불보다 더 노랗게 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슴까지 늘어진 러닝셔츠에는 작은 구멍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숭숭 뚫려있어서, 그가 조금씩 움찔거릴 때마다 그의 가슴팍에 거미줄이 걸려있는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은 한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멍하니 허공 한 곳만을 노려보는 모습은 딱히 무얼 바라보지 않는 듯도 했다.
한 구급대원이 뭐라 말을 건네며 그의 팔을 잡았다. 그가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뿌리쳤다. 한발 물러선 구급 대원이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멍해진 머리와 달리 발이 그에게로 향했다.
나는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방문이 있는 쪽을 제외하고 삼 면의 벽에 붙어있는 여러 개의 시계가 눈에 띄었다. 벽 한 면마다 대략 여섯, 일곱 개의 시계가 삐뚤빼뚤 매달려있었다. 모양도 시간도 다 제각각이었다. 시계는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그중 한 시계에서 초침이 움찔거렸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덤덤하게 그를 불렀다.
"삼촌."
그가 무덤덤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의 동공 안에서 아득한 바다가 느껴졌다. 그의 흰 눈자위가 파도처럼 끊임없이 흔들렸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삼촌,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워요."
그러고는 그의 팔을 슬며시 잡고 일으켰다. 그 순간에, 나는 그가 발작을 일으키며 내게 주먹을 날릴 것 같아 어금니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순순히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당황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땅바닥에 앉아 있던 여자가 그를 보자 삿대질부터 했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교회 옆 골목까지 간 다음에야 그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담배를 건넸다. 그는 말없이 담배를 피웠고, 한 개 더 피웠고, 다시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가 내뱉는 담배 연기에서 누렇게 얼룩진 이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진작에 교회에서 소개를 해줬으니 그 책임도 져야지. 안 그래, 응?"
여태 슬리퍼 한쪽을 손에 든 집주인이 고함을 지르며 교회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고개만 앞뒤로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만 째깍대는 고장 난 시계 같았다.
나는 88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었다. 입에서 덜 마른 우산 냄새가 났다.
그는 며칠 후 충청도에 있는 한 시설로 보내졌다. 그가 살던 방에는 며칠 지나지 않아 새로운 입주자가 나타났다. 창문이 없는 방의 한 달 임대료는 20만 원이었고, 목돈이 없는 이들은 하루 만 원을 내면 밤이슬을 피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만 원이 생기는 날은 쪽방 주민이었다가 돈이 떨어지면 노숙인이 되었다.
기초수급비가 지급되는 날이면 여기저기 술판이 벌어졌고, 다음 날 무료 급식소에는 평소보다 긴 줄이 생겼다. 노숙인의 수는 자꾸만 늘었다. 이상한 건 노숙인을 돕겠다고 봉사를 오는 사람도 늘어갔다.
그가 떠난 이후에 그와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웠던 골목을 찾았다. 그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와 그의 아내가 남긴 냄새를 느껴야 했다. 비릿한, 그들의 영혼 한 조각이 골목길 어디에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아직 젖살이 통통한 대학생들이 청소 봉사를 왔다. 스무 명이 넘는 청년들이 연신 쓰레기를 치우고 땀을 흘리며 좁은 방을 닦았다. 청년들이 바닥에 깔린 이불을 제치면 검은 바퀴벌레 떼가 화들짝 놀라 썰물처럼 T.V 받침대 아래로 사라졌다. 그러면 청년들도 놀라서 뒤로 넘어지곤 했는데, 마음을 다잡은 학생들은 몇 개 안 되는 가구를 전부 들어내고 벌레 떼를 박멸하고는, 후련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은 늦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청년들이 돌아간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와 그의 아내가 남긴 냄새가 골목에서 홀연히 사라진 것이었다.
며칠 후 초등학생 자녀 둘을 데리고 한 부부가 배식 봉사를 왔다. 작은 아이들은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날에 급브레이크 소리를 내던 말매미가 어쩐 일인지 감미로운 톱 연주를 해주었다.
늘, 죽음의 향은 삶의 향기로만 덮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