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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Oct 12. 2021

영혼이 맑다니?

4. 영혼이 맑다니?


          

 검붉은 들장미 한 송이를 따로 떼어보면 꽃잎이 엉성하고 색도 제대로 붉은 것이 아니라서 누구에게 선물할 용도는 아닌 듯싶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면 들장미 무리는 그 어떤 꽃보다 존재감을 드러낸다. 선물하고 싶지만, 뿌리째 가져갈 수 없으니 이 아름다움을 보고자 한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그와 마주쳤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했고 그는 빤히 쳐다봤다. 그가 말했다.

"자네는 영혼이 참 맑네."

‘이건 뭔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홈리스 센터의 수장인 교회 목사님이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두 번째 만남은 교회 예배당이었다. 평일 낮에 딱히 할 일도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싫어서 예배당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가 내게 알은체를 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는 중이었다. 그가 말했다.

"형제는 영혼이 참 맑아."

 목사님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직업적인 말 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로 같은 얘기를 듣는 순간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영성이 발달해서 사람을 꿰뚫어 본다는데 혹시 이분도? 정말 나의 영혼이?' 잠시 이런 생각을 했지만 역시 입에 발린 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부모에게는 불효자고, 자식에게는 무책임했으며, 자신을 스스로 죽이려는 살인자에 불과했으니까.     

 

 나는 자주 성경을 읽었고 밤마다 예배당에 내려갔다. 그저 시간을 때울 마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열심히 성경 공부하고 기도하는 거로 보였나 보다. 자연스럽게 목사님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느 날 늦은 밤에 목사님께서 나를 호출했다. 그는 내 과거를 자세히 물었고 나는 대강 둘러서 대답했다. 그때 그가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영혼이 참 맑아 보이네."

나는 화난 사람처럼 급하게 되물었다.

"목사님, 그 얘기……. 아무한테나 막 던지시는 거죠? 벌써 저한테 세 번째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요."

"그랬나? 아무에게는 아니겠지.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으니까 그랬을 테지. 허허."

역시 그는 내게 그런 말을 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럼 그렇지. 무슨 나 같은 놈의 영혼이 맑을 리가.     

 

 영혼은 맑지 못해도 그즈음부터 이상하게 성경 읽는 일이 편해졌다. 성경 모임을 주도하던 전도사가 내 질문에 당황하는 일이 늘어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늦은 밤에는 아무도 없는 예배당 맨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도 했다. 더는 추락할 곳 없는 삶의 밑바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는지도 몰랐다. 성경을 읽고, 기도라도 할 때는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기도도 자꾸 하다 보니 시간이 늘어갔다. 처음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을 때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리가 저렸는데 몇 달 계속하자 두어 시간 무릎을 꿇어도 끄떡없게 되었다. 그날도 밤 열두 시가 다 되도록 기도 중이었다.

 갑자기 속에서 울음이 밀려 나왔다. 마음으로는 이 눈물이 자기 연민 쪽에 가깝다는 걸 느꼈지만 몸이 멈추지 않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예배당 입구 문은 단단히 닫아두었다. 나는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주여! 주여!     

 

 그때였다. 바로 앞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설의 고향에서나 들어봤던 여자의 웃음소리 같았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소리를 멈추자 이상한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두려움은 눈꺼풀을 무겁게만 했다. 나는 다시 큰 소리로 주여!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이상한 비웃음이, 소름 끼치는 소리가 또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깊은 기도를 하다 보면 언젠가 사탄이 시험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 내게도 사탄의 도전이 시작된 것인가. 나는 눈을 감고 더 큰 소리로 주님을 불렀고 그때마다 요사한 소리도 계속됐다. 눈을 감히 뜨지도 못한 채 이십여 분이 지나갔다. 다행인 것은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소리에 두려움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었다. 더는 이상한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자 사탄은 더 큰 시험을 던졌다. 바로 뱀, 정확하게는 뱀 소리였다. 등 뒤로 쉭쉭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마리로 느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러 마리의 뱀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아! 크게 될 사람에게는 어려운 시험을 준다고 했는데 나는 겨우 노숙자일 뿐이라고 주님께 항변의 기도를 했다. 하지만, 뱀은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나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공포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기를 각오한 몸.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벽에 걸린 십자가 뒤쪽의 은은한 조명이 주위를 아슴푸레 밝히고 있었다. 눈을 뜨자 소리도 일제히 사라졌다.

 나는 눈을 뜨고 큰 소리로 주여! 하고 외쳐봤다. 그러자 그 이상한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이잉~ 히잉~.  

금세 소리의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앞쪽 단상 위에 있던 드럼용 커다란 북이 공명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때, 뒤에서 쉭쉭 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몸을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살폈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벽 여기저기에 설치한 분사형 방향제가 시간이 되어 향수를 뿌리는 소리였다. 아!!!

 방향제는 혀를 날름거리듯이 어둠 속에서 흰 액체를 뿌리고 있었다.

 그 밤의 두려움은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었다. 나는 실재하지도 않는 공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까.     

 

 주일날이었다. 처음 보는 목사님이 단상에 섰다. 전날 새벽까지 성경책을 읽느라 눈꺼풀이 무거웠다. 앞쪽 정중앙에 앉은 탓에 두 눈을 부릅뜨고 버텼지만 금세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머리를 아래로 떨어뜨렸다가 제풀에 깜짝 놀라 고개 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또 한 번 머리를 떨구었고 그 바람에 놀라서 눈을 번쩍 뜰 때였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가 했던 설교의 전후 사정은 전혀 모르겠다. 아마 그는 평소대로 성경 한 구절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만 천둥처럼 들렸다. 아주 짧은 말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문장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양옆으로 빼곡히 앉은 사람들 때문에 그것도 어려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설교 시간 내내 대성통곡을 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담임 목사님이 말했다.

"오늘 예배에 형제가 큰 은혜를 받았구나. 자네는 역시 영혼이 맑아."

그가 정말 그럴듯하게 말했고 나는 그만 흔들리고 말았다. 어쩌면 진짜 내 영혼이 맑은 게 아닐까 하고.     

 

 예배 시간에 대성통곡을 한 일이 교회에서 말하는 은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노숙인이 된 처지에, 감정이 복받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마음이 평안해지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희망을 품게 된 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내 어딘가에 진짜로 한 조각의 맑은 영혼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 달 뒤에 목사님은 나를 천막 식당의 예배 인도자로 임명했다.

급식소 앞에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었고, 한쪽으로 은색 식판이 쌓여있었으며, 동그란 밥통에서는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멀찍이 들장미 무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붉디붉은 꽃잎을 사람들 사이로 흩뿌렸다.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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