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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Jun 02. 2022

무심결에 든 쇠톱과 망치

 부쩍 자란 잎사귀들이 거슬린다. 지난겨울에 낮게 정리한 가지들이 제 주제를 모르고 위로 솟구치며 감시카메라 화면을 가린 것이다. 자동차 앞유리창에 달려들어 무심히 전사한 하루살이 사체처럼 잎이 모니터 화면을 가린다.

볼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서 녹슨 톱을 들었다. 그러고는 나무 밑동을 모조리 잘랐다. 며칠 지나면 풍성했던 잎들이 바짝 마를 테고 시야가 허허바다로 변한다면, 잘만하면 맨 끝 구석에 몸을 숨긴 길고양이도 보일 것이다.


 재개발 중인 동네는 이른 아침이라고 딱히 분주할 일이 없다. 가끔 등교하는 학생이나 회사원이 빙 둘러 갈 길을 질러가느라 마을을 관통하는 지름길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빈집들이 있는 마을 사잇길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도로변 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오전 8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인데도 햇살이 열일 중이다. 지난밤 내린 비에 젖은 시멘트 위로 햇볕이 습습한 눈길을 보내고 화답이라도 하듯이 시멘트 위로 젖지도 마르지도 못한 지난밤의 빗방울들이 어른어른 흔들린다. 아무래도 술을 줄여야 할까 보다.


 노란 바탕에 붉은색 글씨가 선명한 출입금지 경고 스티커가 비에 퉁퉁 불어 흰 배때기를 내보인 채 제 몸의 삼 분의 일만 벽에 붙이고는 떨어질 듯이 붙어있다.

 늘 보는 풍경이라서 무심코 지나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자주 접한 모양은 작은 변화라도 금방 느낄 수 있는 게 또 인간 아니던가. 쓱 지나쳤던 걸음을 몇 걸음 뒤로 물린다. 역시 허전하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집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철제 대문이 사라진 것이다. 이기지도 못하는 술 먹고 해롱거리다 어디선가 박치기한 뒤 새까맣게 모르고 잠을 잔 후 몽롱한 아침에 발견한 빠진 앞니처럼 뭔가 허한 대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드디어 지그재그로 예쁘게도 쌓아놓은 붉은 벽돌이 대치하고 있는 텅 빈 곳에서 시선이 멈춘다. 워낙 이것저것 고물로 가져간다지만 하다 하다 대문까지 떼어가서 팔아먹는단 말인가. 밤늦도록 마신 술이, 이미 다 말랐을 시간인데, 욱하고 넘어온다.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분실물은 보이지 않는다. 옆집, 앞집 대문은 멀쩡하다. 머리맡에는 구청에서 설치한 방범용 CCTV가 버젓이 큰 눈동자 하나를 희번덕거리고 있다. 신고하면 간단하다. 신고할까. 이내 생각을 바꾼다. 괜히 경찰이 개입하면 일이 커지고 귀찮은-오라 가라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좁은 골목 입구에 햇살이 비친다. 햇볕이 안쪽까지 스민 적은 없다. 괜히 실핏줄 같다고 표현을 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가 가득 담겼을 마대자루를 뒤척이자 엄지손가락만 한 검은 벌레들이 화악-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요즘 나의 세상은 스무 개의 화면으로 나뉘어 있다. 대여섯 개는 재개발구역을 감싼 도로 위주다. 이 화면으로 이름 모를 범죄 행위자의 외곽 도주 경로를 파악한다. 나머지는 마을 구석구석 내부 골목을 연결해서 보여준다. 누군가 어떤 불법행위를 했을 때 웬만하면 감시카메라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24시간 화면을 감시하는 경찰 관제 시스템에 비할 수는 없기에, 그냥 운 나쁘면 걸리는 거다. 제발 좀 걸리지 말기를, 늘 녹화 검색을 돌려보는 일은 내 적성이 아닌 것 같다.


 사라진 대문을 추적하는 일은 예상외로 쉽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곳을 비추는 카메라 밑에 옆구리에 뚜레쥬르 로그가 붙은 커도 많이 큰 탑차가 떡하니 주차한 거다. 화면 앞에서 위로 좌우로 아무리 고개를 빼보아도 골목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기린을 흉내 낸다고 보일 리도 없겠지만.

 의심병을 가지고 사람들을 보니 이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 지나가는 사람마다 다 수상해 보인다. 손수레를 끌고 가는 저 할아버지인가? 저 가방 멘 아저씨도 이상한데? 어어, 저 남자는 왜 골목으로 들어가지? 온종일 화면을 거꾸로 해놓고 뒤로 걷는 사람, 뒤로 달리는 자동차를 살피다가 목덜미가 뻣뻣해졌고 머리가 뜨끈뜨끈해졌으며 드디어 눈알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대문이 사라진 때를 언제라고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화면을 거꾸로 돌려보며 그것도 2배속, 4배속으로는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몰라서 검색 속도를 8배속으로 맞춘 뒤에 축지법으로 걷는 사람들을 살피는 일은 정말이지 숙취가 남은 아침 녘에 억지로 해장술을 마시는 일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길을 걷던 사람들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 의심받던 그때, 드디어 사건이 일어났다.     

 

 두 청년이다. 하나는 쇠톱을 들고 또 하나는 망치를 손에 들었다. 흰 용달차에서 내린 그들은 자연스럽게 골목 안으로 향한다. 용달차 번호는 땡땡 땡땡이고, 물건을 내릴 때 젖혀지는 뒤쪽 쇠판에는 초보운전이라는 종이가 붙어있다. 안 그래도 수상한 마음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데, 저 둘의 모습이야말로 수상하지 않으면 오히려 수상할 지경이다.

 고맙게도 두 청년은 감시카메라가 제일 잘 보이는 집 앞에 서서 계단에 설치한 난간 아래쪽 쇠막대를 자르기 시작한다. 흥부가 박을 켜듯 쓱싹쓱싹 몇 번 추임새를 맞추기도 전에 은색 스테인리스 쇠막대 하나가 잘린다. 다른 청년이 잘린 쇠를 받아 들고 끝에 쪽의 날카롭게 잘린 부분에 망치를 내리친다. 매끄럽게 할 모양이다.

 

 화면을 확대하니 짐칸 옆에 떡하니 회사 전화번호가 있다. “저거 그냥 경찰에 신고해야죠. 톱이니 망치니 저런 거 들면 그냥 특수절도잖아요.”하고 한 직원이 목소리를 높인다. “안 그래도 요즘 대문을 뜯어가질 않나, 방범창도 수시로 없어지고 이참에 본때를 보여주자고요.”하고는 전화기를 집어 든다.

 특수절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중범죄다. 흉기를 휴대하고 2명 이상이 합동하여…….


 아침부터 눈이 빠질 듯 몇 시간이나 모니터를 노려보며 멀쩡한 대문을 뜯어간 범인을 찾아 헤맨 걸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신고하고 싶다. “그래도 회사 전화번호도 있고 하니까 저기로 전화해보자.”     

 차량번호를 불러주고 담당 기사와 통화하기까지 삼십여 분이 걸린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당장 신고하자는 파와 아직 새파란 애들 같은데 한번 기회를 주자는 쪽이 경합을 벌인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은하철도 999~~, 전화벨이 울린다.

 쇠톱을 들고 쇠를 잘라간 범인이다. 그에게 너의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으며 범죄현장이 고스란히 저장되었고 장비를 들고 2인 이상이 저지른 범행이라 특수절도에 해당한다고 알린다. “아니, 아니에요. 저기……. 저 그게 아니라요…….” 청년이 갑자기 염소로 변신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다 버려진 줄 알고 쇠막대기 하나만 잘랐다고 한다. 그런 일이 엄연한 불법이라고 차근히 설명해주려고 하는데, 옆에서 듣던 직원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니 재개발현장에서 가스계량기 떼어가는 일을 하면서 몰랐다는 게 말이나 돼? 너희들 특수절도로 다 신고할 거다.”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청년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건너오기 전부터 흐느낀다.


 재개발구역은 여러 이익집단이 모이는 곳이다. 먼저는 개발 주체인 조합이 있고, 공사를 맡아야 할 시공사가 있는데, 여기서 모든 단계를 다 말할 수는 없어서 간단히 말하자면, 그 중간에 시공사가 공사할 수 있도록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는 업체가 있고, 그전에 구역 내에서 나올 고철 양을 예상해서 조합에 일정 금액을 약정하고 계약한 고철업체가 있다. 그러니까 재개발구역 안에서 나오는 쇠붙이들은 이미 임자가 있다는 말이다.

 

 분명한 범죄행위니까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다짐을 받고 청년과 전화를 끊는다. 깊이 생각하지 않은 행동의 결과에 두 청년은 많이 놀란 눈치다. 최소한 앞으로 똑같은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화면에 두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자세하게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무언가 풀이 죽은 모습이다.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 정도일 것 같은데, 오후 여섯 시가 다 돼서도 그들은 분주하기만 하다. ‘그냥 모른 척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든다. 그까짓 쇠막대기 하나가 무어라고. 그러다가 문득 ‘나라고 무심결에 든 쇠톱과 망치가 없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감시카메라를 너무 오랫동안 본 것 같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려는데, 한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한 남자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방충망 두 개를 뜯어서 어깨에 짊어지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길을 건너더니 유유히 사라진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가린 은행나무 잎이 CCTV 코앞에서 보란 듯이 진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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