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구역에서 일하다 보니 이사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짐이라는 것이 눈으로는 얼마 되어 보이지 않아도 막상 손을 대 정리를 하다 보면 짐칸을 초과하는 게 보통이다. 대개는 그렇다. 아마 그럴걸…….
60대는 훌쩍 넘었을 반백의 운전사가 그만큼이나 색 바랜 파란색 트럭 옆구리에 서서 검정 고무 바를 트럭 건너편으로 던졌다. 반쪽 통 장롱 머리 위로 넘어간 고무 바를 고리에 묶고 다시 건너편으로 던지기를 몇 번 하던 운전사가 팽팽하게 당긴 고무 바를 퉁 튕기더니 두 손바닥을 툭툭 털어낸다.
마지막 남은 세입자가 이사했다. 큰 공장 하나와 부지 넓은 택시회사, 두 곳을 제외하고 재개발구역 내에 칠백여 가구 중 남은 마지막 세대다. 연립주택 반지하에서 네 식구가 십 년쯤 살았다는데, 짐은 파란색 1톤 트럭으로도 충분했다.
떠나는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을 원망한다.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삶의 터전을 뺏겼다는 것이고, 가진 자들의 논리에 없는 자들이 손해를 보았다는 것인데, 이주가 늦어지며 몇 년씩이나 은행이자를 부담하고 있는 남은 사람들, 즉 조합원들은 이자 때문에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전에 망하게 생겼다며 뒤늦게 떠나는 사람들을 원망한다. 서로에게 억울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늘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잘해도 본전이고 여차하면 그 원성이 엉뚱한 데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인데, 어쨌거나 이사하는 꼬맹이 하고는 안면도 있고 해서 잘 가시라고 아이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 주위로 노란 은행잎이 후두두 떨어진다.
인도에 노란 잎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노랗게 부풀어 오른 인도 사이로 어린이 보호구역 빨간 도로가 선명하다. 짐칸 앞쪽만 불쑥 솟은 파란 트럭이 느릿느릿 비상등을 깜빡이며 노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노랗게 변한 대로변 인도를 지나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질퍽한 흙길에서 마른땅만 골라 발을 내딛는 것처럼 뒤꿈치를 들고 걸었는데, 은행을 밟아서 그 냄새를 묻히기 싫어서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어느새 은행 열매 몇 개 이상은 으깬 모양이다. 구린 아주 역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은행 열매와는 비교도 못 할 역한 냄새가 확 풍겨온 것이다. 은행이야 직접 밟은 잘못이 있으니 억울할 것도 없는데, 이 냄새는 누군가 몰래 버리고 간 쓰레기 때문에 나는 악취라서 인상을 구기는 건 물론 화까지 나는 것이다.
이 지역을 모르는 누가 보면 영원부터 쓰레기 산이 있었다고 느낄 정도다.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사하며 버리고 간 건 아니다. 대부분은 재개발구역에서 사람들이 떠나간다는 걸 알고 외부인이 일부러 찾아와서, 한때는 요긴하게 썼을 이제는 낡고 못 쓰게 된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것이다.
승용차나 트럭에 싣고 온 냉장고, 장롱, 침대 같은 대형 폐기물부터 부부싸움이라도 한 듯한 움푹 파인 목재 문이나 화장실 변기, 각종 공사현장에서 나왔을 법한 깨진 타일, 녹슨 창틀과 썩은 고구마를 담은 종이상자까지 온갖 쓰레기가 다 있다. 이상한 건 골목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니고 몇 군데 쓰레기가 쌓이는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재개발구역 전체 지역은 감시카메라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어서 어떻게 쓰레기가 쌓였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녹화 재생 버튼 하나면 충분하다.
그 이유는 펭귄 때문이었다. 퍼스트 펭귄. 선한 일에 앞장서는 한 펭귄이 망설이는 모두를 이끌듯이 그 반대쪽 일에도 퍼스트 펭귄의 힘은 대단했다.
처음엔 작은 비닐봉지 하나였지만, 쓰레기 양이 점점 많아지고 더더 커지더니 급기야 1군 발암물질인 폐석면으로 의심되는 폐기물까지 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는 석면안전관리법과 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최고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과할 수 있는 범죄행위입니다.
무시무시한 석면은 아니더라도 생활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물게 되는데, 50만 원에서 100만 원이니 쓰레기 투기는 인제 그만.
아직 코로나 시국으로 다들 어렵다는 걸 알기에 웬만하면 신고를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감시카메라에 차량 번호가 정확하게 보이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근 1년 동안 500만 원 정도 금융 치료를 한 듯싶다. 하지만 더 빠르게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는 걸 보면 치료가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면을 빌어 펭귄들에게 고합니다. 나쁜 일에는 앞장서지 말기를, 선한 일에 두 팔 걷어붙이시기를…….
쓰레기 사이로 누런 물이 흐른다. 악취다. 지독한 냄새에 문득 몇 년 전 요양원에서 어르신을 돌보던 일이 떠올랐다. 등에 생긴 욕창으로 고생하던 분이 계셨다. 약한 피부가 계속 눌려서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피부 괴사가 생긴 것인데, 푹 파인 살 안쪽에서 계속 누런 고름이 나왔다. 간호팀장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소독된 거즈로 누런 고름을 쓱쓱 닦아냈는데, 한동안 어르신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르신은 간호팀장의 냉혹한 손길에 쌍욕을 섞어가며 비난했었다. 천만다행으로 시간이 지난 후 고름이 흐르던 휑한 피부에 하얀 새살이 돋았고, 어르신은 애지중지하시던, 따님이 사다 준 귤 다섯 개와 양갱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었다. 고름을 걷어내야 새살이 돋는 법이다.
도로 위로 바람이 분다. 노란 은행잎이 계속 떨어지는데, 어쩐 일이지 은행나무는 아직도 노란 잎이 무성하다. 환경미화원이 연신 빗자루를 움직이지만 역부족이다. 노란 잎을 가득 담은 파란색 비닐 자루가 늘어간다.
"이렇게 바람이 불어서 계속 떨어지는데, 비질은 뭐 하려고 하세요?"
30대쯤으로 보이는 환경미화원 청년이 활짝 웃는다.
"그래도 조금씩 쓸어놔야 나중에 덜 힘들어요."
이 청년이 현자로구나!
하늘에서는 온통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고 걸을 때마다 푹푹 누런 고름이 배어나는 듯한데, 아마도 새하얀 새살이라고 돋지 않겠는가.
몇 년 뒤 이곳에 높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내어준 사람들에게 전하는 기념비 하나 정도 공원 한편에 만들어 두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