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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Mar 09. 2023

글이 부르는 소리

 3년 전 책을 냈을 때, 뭔가 대단한 일이 이루어질 거란 생각이었다. 출간 덕분에 KBS아침마당에 출연했을 때, 더더 뭔가 멋진 일이 생길 거란 기대에 부풀었다. 여러 지면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고 몇 군데 도서관 강연도 하며 특히 대형 보험회사에서 보험설계사 대상으로 전국 지점의 강연을 부탁했을 때는, 드디어 내 인생 만개하는구나! 미소를 짓기도 했지.


보험회사 강연 준비가 한창일 무렵에 코로나19로 강연은 고사하고 친구들 여럿이 모이기도 힘들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 글로 먹고살아보겠다고 호기롭게 다니던 요양원을 퇴사하며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채 밤을 지새우며 짓던 글들이여. 하지만 그리 쉽게 뭔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글! 나는 네게 너무 쉽게 등 돌렸구나. 정작 멍석이 깔리니 글만 쓰겠다던 작심은 삼 개월을 못 버티고 눈앞에 현실들이 마구잡이로 밀려오더니, 먼바다만 바라보다 갯바위에 고립된 낚시꾼이 그랬던 것처럼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고 긴급구조를 요청했던 것이다.


그래서 학(學), 지(地), 인(人) 맥을 모조리 동원하였던 바, 지금의 철거회사에 입사한 것인데, 글이고 뭐고 일단 먹고살자 싶어 브런치 알람도 꺼둔 채 두문불출하였다. 자격증이라야 십 수년을 묵혀두었던 터였고 철거 현장이라면 뉴스에서나 보았든지 싶은데, 사람 사는 일이 또 어떻게든 걷다 보면 나아가는 법. 이곳에서 제법 일 좀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안정되어 가고 있는 이때, 또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이놈의 관찰병은 없어지지도 않는지 재개발철거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의 사연이 들리고, 철거를 당하는 쪽이나 하는 쪽의 힘겨움이 고스란히 눈에 보이니, 한동안 눈길도 주지 않던 글이란 이 녀석이 떠오르더라. 더 큰 문제는 이 글이란 놈이 유혹의 최고수란 것인데,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에스엔에스의 독자리뷰며 함께 글공부하던 벗들의 출간 소식이며 혹은 청탁이란 걸 불쑥 던지며 손짓하는 식이지. 참으로 징글징글한 녀석이 아닐까 싶은데, 나란 놈도 만만치 않은 것이 그 유혹 한 번에 홀라당 넘어가 버린다는 것. 이리 귀가 얇아서 어찌할꼬.


얼마 전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좋은 생각이란 월간지에서 원고 청탁을 하고 싶어 한다나. 아니 책 나온 지 3년이나 지났고, 책 내용처럼 요양보호사가 아닌 철거회사에 다니는 사람에게 웬 청탁이냐고 반문을 했다. 그런데 청탁한 분 성함을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더라. 당시 인터뷰어였던 기자가 편집장이 되고 나서 나를 잊지 않고 글을 청한 것인데, 통화를 마치고 나서도 한참 먹먹했다. 단 한 번의 인터뷰, 그 기억을 3년이나 가지고 있었다니. 글 주제는 자유고 따듯한 글을 써달라고 한다. 글을 따뜻하게 쓰는 작가로 기억하고 있다고.


며칠 전 근 30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정말 친하게 지냈던 녀석들. 어떤 독자는 기억할 것인데, 브런치 어느 글에서 소개했던 J와 또 한 친구. 정배와 상돈이를 만났다. 정배는 매년 네이버에 내 이름을 입력해 봤다지. 혹시 작가로 등단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아닌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 고3시절, 내게 처음으로 글쓰기를 가르쳐준 친구들이다.  녀석들과 만나자 그 옛날 기억들이 마구 떠오르는 게 신기했다. 우리셋 모임을 만들고 이름도 지었단다. 똥강아지 셋이 모여서 글을 짓는다고 개짖음이라나.

정배는 공무원, 상돈이는 사람인이라는 회사에서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야! 내 친구들 다 성공했네~라며 정말 기뻐해주었다. 녀석들도 글 쓰는 작가 친구가 생겼다며 좋아했는데, 나는 아직 갈길이 멀다 싶다.     


밤새 고민을 했다. 글이란 녀석을 모른 척한 시간이 꽤 긴데, 과연 녀석이 내 손짓에 다시 돌아와 줄까. 지맘대로 왔다가 지맘대로 떠나고~~ 애타게 부른다고 와줄 놈은 아니고 조용히 기다려야겠지. 내 친구 정배, 상돈이가 30년 동안 매년 네이버에 내 이름을 입력하며 날 찾은 것처럼 나 역시 녀석을 기다려야겠다. 글 너 이놈! 설마 30년이나 지나서 오진 않겠지. 대신 꿈벅거리는 커서와 오랜 눈싸움을 하긴 해야 할 것 같다.

글이 부르는 소리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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