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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Jun 22. 2023

치받이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을 걷는 일은 쓸쓸하다. 느릿한 고양이 몇 마리가 아는 체도 안 하는 길은 더 쓸쓸하다. 길옆에 쓰레기가 뒹구는 까마득한 치받이길을 아침 일찍 걷는 일은 더욱 쓸쓸하다.

 

 요즘 몸이 찌뿌둥하고 갈수록 엉덩이만 무거워지는 듯하여 며칠 전부터 산책을 한다. 십만 평이나 되는 재개발구역에 주민들은 대부분 이사를 한 터라 이 너른 땅이 다 나의 산책로인 것인데,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의 다리가 높은 산을 뛰놀던 방년의 그 다리가 아니고, 이 동네의 길들은 죄다 산을 오르는 것에 못지않다는 것이다.

 

 사람 없는 동네에 고양이들이 스무 마리가 산다. 고양이들의 수는 내 주장이 아니다. 고양이를 자주 보던 이들은 알 수도 있겠으나, 근래에 고양이를 길러 본 적 없는 내 눈에는 그 녀석이 그 녀석 같아서 그 마릿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고양이 서식처를 산 쪽으로 유도하고 있는 고양이 구조단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 녀석들은 제가 이 땅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산책길에서 마주쳐도 어디 도망가거나 하지 않고 그렇다고 정면으로 마주하지도 않은 채 엉덩이를 보이며 고개를 돌리고 나를 쳐다본다. 여긴 왜 왔냐?라는 눈빛으로.

 

 어릴 때 '나비'라는 고양이 한 마리를 길러본 적이 있었다. 그 녀석은 순전히 시골에서 쥐를 사냥할 목적으로 할머니께서 밖에서 키우던 고양이로 나는 애정을 들이지는 않았다. 대여섯 살 먹은 나보다 더 세월을 먹은 나비가 나의 형이나 되는 것처럼 거들먹거렸기 때문이다. 오라면 가고 가라면 오던 나비.

아랫집 할머니가 놓은 쥐약을 먹고 나비가 떠난 후로 고양이는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되었다고나 할까.

 

 같은 코스로 며칠 산책을 하다 보니 대면대면한 고양이 대신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잡동사니들이 눈에 들어온다. 큰 냉장고나 장롱 같은 것은 억지로 이해한다고 해도 참 오만가지 것들을 버려두었다.

 빗물이 가득한 물고기 없는 수족관, 아기천사가 그려진 작은 밥상, 어쩌면 책상, 다리가 부러진 의자, 꽤나 아랫집을 괴롭혔을 것 같은 손잡이가 휜 트램펄린, 액정이 깨진 노트북, 그리고 앨범 하나. 겉면부터 나이를 좀 먹었을 것 같은 녹록지 않은 앨범이다.

 

 제일 처음 속지에 결혼사진이 붙어있다. 칠팔십 년도쯤으로 가늠되는 세로줄이 있는 복고풍 양복을 차려입은, 당시에는 신식 패션이었을 바지끝단이 꽃봉오리처럼 너른 바지를 입은 신랑과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짙은 화장을 한 앳된 신부가 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몇 장을 더 넘기니 알콩달콩한 생활이 시작된다. 이제 신부는 용기를 내서 배시시 이를 보이는데, 남편은 아직도 굳어있다. 암만, 가장으로서 앞으로의 각오를 다진다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또 세월 몇 장을 지난다. 어이구! 코를 가까이 대면 젖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 아기가 태어났다. 늦었지만, 해피버쓰데이 투유.

 홀딱 벗은 백일사진이다. 누가 봐도 남자아이다. 예쁘게도 생겼다. 아이는 문실문실 자라더니 어느새 학사모를 쓰고 꽃처럼 웃고 있다.

 시간을 휙휙 넘겨본다. 첫 장보다 세련된 결혼사진이 있고 잘 차려입은  다른 아기의 백일, 돌 사진이 이어진다. 이 아기들도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새 중학생이 된다. 요즘 아이들은 꽤 성숙하니까 초등학생일 수도 있다.

 

 맨 첫 장 가운데를 장식했던 부부가 말미에는 희끗한 머리로 사진 양끝에 서있다. 이번엔 노부부가, 그들 사이에 있는 중년의 부부와, 그 부부 사이에 있는 제법 큰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아직 사진첩엔 속지가 몇 장 더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넘기지 않기로 한다. 아무리 버려진 물건이라고 해도 타인의 허락 없이 그의 시간을 엿본 건 실례되는 일인데, 누구도 피하지 못할, 기존의 등장인물이 사진에서 사라지고 마는 결말까지 보고 싶진 않아서다.

 

 한편으로는 사진으로만 접했던 노부부의 미소가 계속 생각났는데, 마치 그분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애정하는 마음이 생기고 감사하는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과와 감사의 의미로 쓰레기 더미 속에 있는 앨범을 옆에 버려진 장롱 안에 넣어둔다. 비는 피할 수 있을 테니까.


 

 한 부부의 일생이, 물론 심적인 일까지 포함할 수는 없겠으나, 마음으로는 영원할 것 같은 생이 실제로는 사진첩 하나로 요약될 수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그 옛날 어느 구도자의 말처럼 삶은 덧없고 덧없고 덧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었고 내가 죽은 후에도 또 태어나고 죽을 것이며, 내가 죽더라도 세상은 변함없이 제 길을 갈 것이 분명한데, 나는 내일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오늘도 별일 아닌 일에 성질을 부리고 내일에는 별사 없이도 주변을 괴롭힐 것이니, 이런 모자라도 한참 모지리인 내게 누군가 큰 가르침을 내리고자, 미리 사진첩 한 권을 쓰레기더미 속에 감추어두고 노부부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주선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고 또 남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삶의 면목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되는 것이다.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는 골목 뒤편에서 앙칼지게 울어댄다.  한 놈을 괴롭히는 건지, 패거리를 지어 맞붙은 건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싸움 중인 게다. 틀림없다. 마음속으로 절로 녀석들을 훈계하는 말이 떠오른다.

'사진첩 한 권으로 정리되는 사람보다도 짧게 살다 갈 녀석들아, 가지지도 못 할 땅 가지고 싸우지 마라! 부질없다.'


 멀리 트럭 한 대가 멈춰있다. 무언가를 버리고 있다. 아마도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듯싶다. 느려터진 발을 못 참고 털을 잔뜩 세운 고양이 소리가 먼저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오래된 사진첩 두어 권은 더 보아야 할 것 같다.

설마 열 권까지 필요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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