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엄마 혼자서 다 도맡을 필요는 없다
최근 내 생각을 크게 바꾸어 놓은 사건은 티모시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라는 책을 읽은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면서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부자가 되는 것에도 관심이 있지만, 극히 적은 시간 동안 일한다는 것에 크게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찾아보게 된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 나는 남편이 너무 좋아서 함께 있고 싶은데, 그는 주중에 새벽에 나가서 밤 중에 들어온다. 기술 개발과 경영 업무를 동시에 감당하는 데다, 중간관리자급이 되니까 일이 넘쳐 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 것만 잘 챙기지 못하는 성품이라 이러저러한 일에 다 걸쳐 있을 것이 뻔하다. 여유가 있을 때는 정시 퇴근을 하긴 하지만, 다들 그렇듯이 퇴근 후 운전해서 들어오면 늦은 저녁이다. 밥 차려먹고 몇 마디 하면 애들 재워야 하고 정신 없다. 그래서 주중에는 거의 대화를 하지 못한다. ‘꼭 이래야만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획기적인 제목을 보니 마음이 확 쏠렸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일을 최대한 삭제하고, 맡기고, 자동화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라서 깜짝 놀랬다. 일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고, 내가 다 하는 게 속이 편하고, 빨리 시작해서 손털어버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던 나로서는 뒷통수를 얻어 맞는 기분이었다. 밤을 새서 장시간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이런 사상(?)은 상당히 불온해 보였다. 물론 지금까지도 남편의 근무 시간을 어쩌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생각이 내 맘에 쏙 들어서 내 인생의 운영 방침으로 받아 들였다.
곧바로 나는 내가 하고 있던 많은 일을 외주로 돌렸다. 청소 도우미를 부르고, 반찬을 사 먹고, 모든 금융거래를 자동이체 걸어 놓았다. 메일과 SNS의 알람을 모두 끄고, 마음에 걸린 일은 정리를 했다. 그랬더니 숨통이 확 트였다. 독박 육아에 임신으로 몸은 극도로 피곤한데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상당히 화가 났었다. 딱히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모든 상황이 싫었다. 그래서 만만한 타겟인 남편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을 미워하려던 찰나, 비상구를 찾은 기분이었다.
왜 내가 모든 일을 다 쥐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해야 다 잘할 수 있다는 완벽주의(실제 완벽함과는 정말 동떨어진), 별다른 수가 없을 것이라는 자포자기, 책임을 다해야만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중압감 등 여러가지가 한데 얽혀서 나를 옥죄고 있었다.
무엇보다 바쁘지 않으면 나의 가치가 떨어져 보인다는 생각이 한 몫 했다. 바쁜 사람은 무언가 있어 보이고, 중요한 사람일 것 같고, 부지런해서 많은 것을 얻을 것 같아 보인다. 반면에 늘 놀고 있고 여유 부리는 나는 하는 일 없는 한량 같아 보인다. 그러한 나의 모습을 지워버리고 싶어서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바쁘게 만들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니까.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으니까.
‘나는 참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참으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한테 내보여야 한다는 것인지? 생각해 보니까 딱히 바쁜 모습을 통해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일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바빠서 내가 바쁜지 아닌지도 잘 모른다. 나 혼자 여유를 부리고 있다고 해서 크게 피해 입을 사람도 없고, 내가 바쁘게 움직여서 하루를 꽉 채워 버린다고 해서 크게 칭찬해 줄 사람도 없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바쁘려고 노력했던 것일까? 결국 나 자신의 기준, 나의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 정도는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는 관념. 그것에 맞추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고군분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