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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Jan 09. 2019

시간을 내지 못하는 진짜 이유

나의 꿈에서 자꾸 도망치는 길로 시간을 쓰는데는 이유가 있다

나의 꿈은 작가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글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한 때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나를 뽐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글로 대박쳐서 돈 벌고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다. 


사실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오랫동안 생각했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도 나를 대우해 주지 않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없는 자리에서도, 돈도 없고 무명인 상태에서도 나는 쭉 글을 썼다.

사실 나는 일상 속에서 겪게 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재미지게 전달해 주는 데 큰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복잡하고 희미했던 생각의 뭉치를 틀로 ‘쫙’ 짜서 ‘착착’ 정리해 두는 것에는 희열을 느낀다. 마음이 착잡하고 생각이 복잡하면 나는 여지없이 글을 쓴다. 


그런데 지금 마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내 책을 하나도 내지 못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책을 하나 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아직까지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동안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석박사 졸업 논문 두 개, 소논문도 여러 편 쓰고, 번역서 하나랑 공저를 해서 교재도 하나 냈다. 그런 많은 작업을 하면서 정작 내 책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은 상황에 맞춘 것이다. 졸업을 위해서, 프로젝트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엮여 있기 때문에 마쳤던 것들이다. 다들 데드라인이라는 것이 걸려 있고, 댓가가 존재했다. 그래서 항상 내 책은 뒷전이 되었고, 다른 글작업이 우선시 되었다. 이런 글 작업보다 더 우선시 되었던 것은 시간 약속이 정해진 강의, 다른 사람이 시킨 일, 눈 앞에 닥친 일 등이었다. 하고 싶은 일은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해야 하는 일들 뒤로 숨어 버렸다. 


심지어는 그런 일이 딱히 주어지지 않은 때에도 나는 내 책을 진행하지 않았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언제나 바빴던 것은 아니었다. 방학 때라도 내 책을 써서 출판사에 끊임없이 투고를 했다면, 책 한 권은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못했다.  매일 매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입에 대면서 글을 쓸 시간을 전혀 내지 않았다. 


사실 지금은 시간이 더 없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아이들 쫓아 다니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하면 하루가 금새 가 버린다. 집안일은 꼭 빨래나 청소, 설거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잘한 행정일(?)이 은근 많다. 이런 것들이 다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겠다고 덤비고, 틈이 날 때마다 체력이 닿는 날마다 글을 써댄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젊은 날에 시간은 매일 흘러 다녔고, 심심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그저 눈 뜨고 보내버린 적이 많았다. 절대적인 시간이 모자라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을 감내하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곳에 시간을 쏟아 부은 것이다. 일종의 회피인 셈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책을 내는 데 모든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 작가가 되어하는 것은 맞나?’ 하는 의문도 가졌다. 그런데 많은 시간 글을 읽고 필사를 하고 틈틈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부지런히 했던 것을 보면, 글쓰는 일을 즐기는 것은 맞다. 그런데 책을 내는 것에 그렇게도 시간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그것은 아마도 나의 마음 속에 깊숙히 숨겨있는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때문인지 모른다. 내가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깊은 믿음이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상태로 책을 내놓는다면 불완전할 것이고 쓸모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지금으로는 부족해, 지금의 상태로는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책이라는 것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아주 깊은 철학을 담거나 고도로 세분된 고급 기술을 담은 책이 있다. 아주 기초적이고 편한 내용을 담은 입문서도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쓴 책도 있고, 논리가 선명한 책도 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이나 에세이도 있고, 로맨스나 추리 소설과 같은 장르 소설도, 공지영이나 한강이 쓰는 순수 문학 소설도 있다. 엄청난 스펙트럼을 속에서 책이 나온다. 


그런데 나는 그 스펙트럼 중에서도 최고가 아니면 책을 낼 수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말로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을 쓰면 된다고 내뱉지만, 실제 마음 속에는 최고의 책이 아니면, 깊은 철학을 담고 있지 않으면 책을 쓸 수 없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책은 너무나도 수준이 높은데,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부끄럽기도 했고. 


그러니 막상 내 생각을 그대로 적어내려 가는 작업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막말로 하면 ‘나 같은 것도 책을 낼 수 있나?’라는 의구심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니까 시간이 없다는 구실을, 다른 일이 더 중요하다는 핑계를 그럴싸하게 갖다 붙인 것이다. 


그때 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결정하고 그대로 준행해야 했다. 그것을 밀고나갈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나는 늘 바빴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 다른 것은 다 하면서 꼭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만 빠져 나갔다. 그러니 삶에서 앙꼬가 빠진 느낌에 마음이 헛돌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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