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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Jan 09. 2019

돈은 꿈을 따라간다

노동의 시간만큼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노동을 해야지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말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당연한 것 아닌가? 열심히 일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부모님은 노동자였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늘 일을 해야 했다.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죄다 그런 사람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해 상상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말은 반 정도 맞는 말이다. 돈을 만들기 위해서 꼭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노동을 하지 않고도 돈을 꽤 받이 벌었다. 앞에서도 나의 돈 스토리를 썼었지만, 대학원 시절 국가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인건비로 대학원에 다녔다. 지식노동도 노동이기 때문에, 연구실에 발생한 여러 일을 한 댓가로 인건비를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노동의 댓가로 그 연구비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주제로 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걸 공부하면서 돈까지 받은 환상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교수님이 하라는 주제로 억지로 자료조사를 하고 논문을 썼다면 나는 꽤나 고달픈 노동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교수나 선배들이나에게 논문 주제를 제시해 주지 않았다. 아마 줬는데 내가 듣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내 생각에 빠져서, 온 종일 내 논문 주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받은 인건비를 연구 진행비로까지 쓰면서 자료수집도 했고, 꽤 많은 시간을 들여서 논문을 써냈다. 이러한 행동은 남을 위해서 쓰는 논문을 진행하면서 나올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다보니 나에게 주어진 기대치보다 더 많이 논문을 썼고, 거의가 1저자였다. 주어진 실적을 채우는데 이 논문들이 일조를 했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노동의 댓가가 아니었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게다가 연구실에서 시킨 일은 거의 피해 다니면서 잘 하지 않았기도 했다. 그저 그것은 장학금이었고, 나의 학술적 재능에 대한 사회의 투자금이었다. 


연구는 사실 당장 먹을거리가 생기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인문사회 쪽 연구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 지원이 굉장히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로 국가적으로 학자들을 양성하는데 많은 돈을 투입한다. 단지 사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는 데도 돈을 준다. 


예술가들이 돈을 버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그림이나 조각이, 시나 음악이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진 않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돈을 지불한다. 심지어는 꽤나 많은 돈을 예술가들이 가져가기도 한다. 이들이 돈을 버는 것은 예술 작품을 만들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재능에 대해 지불하는 호의의 징표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돈은 꼭 노동을 해야만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치가 있는 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이 굴러 들어 온다. 


그런데도 계속 돈은 노동의 댓가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내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무언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노동을 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내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닐까, 빈털털이가 되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생활을 영위할 자격이 있을까 끊임없이 위축되고 고민한다. 그래서 또 노동할 현장을 찾아서 헤맨다. 


다행히도 아이를 낳고 노동을 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해지면서 이 답답한 생각의 연결고리를 조금은 끊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가사노동으로 돌아와, 집안일을 열심히 해야 내가 먹고 살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누가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데 나 스스로 집안 일을 잘 못하면, 나 자신에게 낮은 평가 점수를 주고 질책을 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왜 그렇게 노동을 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것일까. 실제로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도, 왜 그런 고정관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일까? 


그러던 중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획기적인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남편은 회사에서 늘 늦게 들어왔고, 부른 배를 부여 잡고 첫째 아이와 시아버님 챙기는 건 내 몫으로 남겨졌을 때 엄청난 짜증과 분노가 일어났다.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남편을 탓한다고 뭐가 달라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남편과 같이 살아도 생이별을 하는 듯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는 것이 참으로 싫었다. 


그러던 중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한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만 우선순위를 정해서 처리하고, 나머지는 위임하거나 자동화시키라고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사업을 하는 사람의 생각과 항상 돈과 노동 시간을 바꾸었던 사람의 마인드가 이렇게 달랐다. 


어떤 것이 더 윤리적으로 옳으냐를 따지긴 그렇다. 나는 아직까지 마음 속에 노동은 신성하고,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머리 속에서 하나만 탑재되었던 고정관념이 깨지고, 또 하나의 운영체제가 깔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혼자 다 할 수도 없으면서, 내가 모든 것을 부여잡고 다 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나를 몰아붙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내가 다 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그 뒤로 집에 도우미를 부르기 시작했다. 반찬은 사먹고, 내가 하기 힘든 일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도 하고, 이사를 하고 난 뒤에는 거액을 주고 정리수납을 위탁했다. 그러고 나니 숨통이 틔였다. 남편을 닥달하지도 않게 되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도 많이 가라앉았다. 특히 나에대해 조금 더 관대해 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면 비용이 들어 간다. 한정된 월급에서 마냥 돈을 쓰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아마도 계속 소비만 하며 시간만 보낸다면, 나는 점차 불안함이 가득 차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위임을 하고 나서 확보하는 시간에는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한다. 


이런 기업가정신에 대한 책에서는 단순 소비의 관점에서 벗어나 생산자의 관점을 가지라고 이야기 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돈을 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어떻게 하면 돈을 절약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돈을 안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사실은 돈을 쓰는 입장에서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도 ‘어딘가에 가서 일해서 돈을 벌어야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취직을 못하니까 돈을 벌 수 없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돈은 꼭 노동만을 통해서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참으로 다양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더 돈을 많이 벌기도 한다. 나도 취직을 하지 않고 시간당 노동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우선 이것만 알고 있어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 구상을 짜낼 수 있다. 결국 돈은 생각의 방식이 좌우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다른 사람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한 일을 하기 보다는, 많은 시간을 나 자신의 가치를 위해서 집중해야 한다. 예술가가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려 작품의 질을 높이듯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여 나의 실력과 가치를 높이면, 돈은 굴러서 들어 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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