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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Jan 09. 2019

마음이 흩어지면, 돈 삽질이 시작된다

늘 돈이 없었다. 늘 돈은 있었다

결혼을 할 때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많이 하고 있었다. 지방에 한 번 내려가면, 그곳 교수님들이 미안해서 두 강의씩 묶어 주었다. 서울의 모교에도 똑같은 강의를 두 세걔를 묶어서 하고 있었다. 연구보고서 쓰는 일도 계속 해서, 그걸로 결혼식 할 때 보탰다. 이후 남편이 졸업하기 전까지 생활비로 쓸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돈 쓸 데가 없어서 이걸로 주말에 치맥 사먹고, 사고 싶은 책 사보고, 생활비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남편이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 왔다. 하지만 내가 임신과 육아로 일을 못하게 되어서 수입이 줄고, 지출할 곳이 늘어 났다. 아이 때문에 따뜻한 집 찾아서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도 박사 논문 써서 졸업을 해야 했다. 하여 전세금 대출 이자 내고 육아 도우미까지 고용했다. 신기하게도 지금 남편 연봉의 절반을 벌었었는데, 용케도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때 교회에 십일조도 내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참으로 여유가 있었다. 


지금은 처음 결혼했을 때에 비하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아이 둘 키우고, 월세나 카드값 걱정하지 않고, 다달이 저축도 한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그동안 참으로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면 내 삶에서 돈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돈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돈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으면서,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며 나를 위해서는 돈을 많이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다른 곳에는 돈을 막 쓰고 다닌다. 참으로 엉뚱하다. 


이렇게 보니, 돈이 없어서 유학을 못갔다고 했는데, 사실 1년 동안 영어 공부에 전념 했었다. 강의 한 두개 뛰면서 월세 벌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영어 학원 다니는 데 보냈었다. 처음에 나는 애먼 영어 욕심에 진짜 실력을 키우겠다며 통번역 어학원에 다녔었다. 그러니 시험 점수가 안 올랐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토플 학원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하니까, 무분별하게 처음부터 중급 종합반을 끊고, 인터넷 강의도 한꺼번에 끊었다. 아직도 다 듣지 못한 인강이 남아 있다. 돈을 엉뚱한 데 막 쓰고 다녔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말이다.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적절한 전략을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삽질’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토플 학원이 아니라 통번역 학원에 주구장창 다니면서, 선생님과 굉장히 친해졌다.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 때 당시 그 선생님이 대형 브랜드 학원에서 독립해서 개인 학원을 차리고, 그것이 잘 안 되서 동업을 하는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유명 학원에서는 나름 날리는 선생님이고 자존심 세워가며 강의할 수 있었는데, 혼자 떨어져 창업하니 학생 모집이 쉽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땅을 팔아야 하는데 팔리지 않는다는 고민도 들었다. 어떤 날은 나 혼자 개인 교습처럼 수업 받은 적도 있었다. 그 힘든 시기에 나는 그 선생님을 지탱해 드리는 프로참석러였다. 나도 힘든 시기였지만, 그 선생님도 참으로 파란만장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분 한테는 힘든 과정이지만, 나에게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학원 강사가 독립을 하고, 창업을 하는 과정을 보고 들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때 만났던 스터디원들이 기억에 참 많이 남는다. 한 분은 스님이셨고, 한 분은 고등학생. 나보다 다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어서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었었는데, 인생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어 학원 다니는 해외 유학파 젊은 스님, 학교 그만두고 검정고시와 특례로 대학 가려고 하는 고딩. 이런 조합을 어디가서 만나 볼 수 있을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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