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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Jan 09. 2019

돈, 참으로 편한 이유

돈이 없어서 꿈을 이루지 못한 줄 알았다.

사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박사를 받고 지방대라도 가서 자리를 잡고 싶었다. 000 대학교 남궁은정 교수. 이렇게 명함에 찍힌다면 얼마나 짜릿하고 뿌듯할까. 주변에 막 자랑하고 다닐 지도 모른다. 체면이 있으니, 대놓고는 못하겠지. 하지만 속으로 엄청 우쭐대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교수가 되지 못했다. 앞으로도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을까. 우선 교수가 되려면 원서를 써야 하는데, 나는 그 조차도 쓰고 있지 않다.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대학에서 신방과 교수 자리는 없고, 있더라도 미국 유학파 출신의 자리이다. 교수자리가 열려도 내정자가 있어서, 나같은 연줄 없는, 여자, 국내 박사는 교수로 뽑지 않는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교수가 되려면 미국 유학을 다녀왔어야 했다. 하지만 유학에 다녀오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학비는 장학금을 떼운다고 해도 생활비는 어쩔 것인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사실 영어 시험 점수를 받는 과정에서도 나는 재정난에 시달렸다. 유학 준비한다고 일을 다 그만두었고, 학원비와 시험 응시비, 자취하면서 발생하는 생활비를 모두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영어 공부를 못했고, 그래서 입학 원서도 써보지 못했다. 결국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정말일까?’ 궁금해 진다. 반박할 수 있는 여러 대답이 있다. 토플은 문제집과 인터넷 정보로도 충분히 점수를 낼 수 있다. GRE같은 경우도 끈기있게 단어를 외우면 돌파할 수 있다. 유학준비한다고 모든 일을 다 그만둘 필요도 없었다. 한정된 시간을 열심히 집중하면서 점수를 올려갈 수 있었다. 침착하게 준비하면 원서도 준비할 수 있고, 합격이 되면 다시 강의해서 목돈을 모아 코스웍을 밟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또 다른 펀딩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 내 마음 속에 스며들었던 말은 ‘해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연구하려고 유학을 가는 건데, 여기에서 논문 쓰면 되는 거 아니야?’ ‘미국에 가도 넌 돈이 없을 거야.’, ‘세상엔 너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야’, ‘미국에 가서 빈털털이가 되면 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지도 몰라’. 

이런 말에 압도된 나머지, 나는 공부해야 할 시간에 스트레스를 풀러 다녔다. 따뜻한 코코아를 사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것 때문에 돈을 더 썼다. 결국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불안을 다스리지 못했던 것이 큰 실패의 요인이었다. 돈을 쏟아 부어야 영어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고정관념과 입학 이후에도 아무도 나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이 한 데 엮여 나는 마쳐야 할 길을 마치지 못했다. 


대신 이 때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에 남편을 만났다. 결혼했고, 지금 여기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날 돈 때문에 유학을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여기에 에피소드로 써먹고 있다. 지금와서 유학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너무나 아쉬운 것은 깔끔한 실패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끝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돈 때문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던 것이 후회된다. 돈이 없다면,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한없이 무기력했고, 다른 방법은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끝까지 다 가보고 나서 가지 못했더라면, 아직도 뒤돌아 보면서 이렇게 서성대진 않을 것이다. 


그 레파토리는 지금도 반복이다. 


내가 사업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야.
내가 연구를 할 수 없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야.
내가 애만 보고 있는 것은 돈이 없어서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돈이 없어서야.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크게 부인하지 않으며, 돈이 없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지금 이 상태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특권을 챙기고 있다. 그런데 정말 돈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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