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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규 Aug 29. 2023

읽기와 쓰기


저는 교회에서 열 살 아이들의 담임으로서 공과 공부를 맡아 하고 있습니다.

저 말고도 교사로 헌신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요,  2주 전 예배가 시작되기 직전에 한 선생님께서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사실 누가 툭 치는 것 같길래 아이가 지나가다가 실수로 부딪친 줄로 알았는데 선생님 한 분이 제 옆에 서 계시더라고요. 늘 서로 인사만 드리던 분이었는데 순간 무슨 일 있으신가 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말씀하시더라고요.

"카톡 프로필의 시 잘 봤습니다. 정말 본인이 쓰신 거예요?"

제가 올여름 해외 단기선교를 다녀와 느낀 바가 있어 '그들'이라는 짧은 글을 써 브런치에 올리고 제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화면으로도 지정해뒀었는데요, 사실 선교사셨던 그 선생님께서 글을 읽으신 것입니다.


놀랍기도 놀라웠지만 정말 뿌듯하고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친한 분에게 제 글을 읽는 사람은 없다고 반쯤 자조 섞인 말을 내뱉은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아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몸소 겪으니, 정작 그간 다른 사람이 읽을 만한 글을 쓰기는 하였는가 스스로 부끄러운 순간이기도 했지만요.


저도 좋아서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결국 읽히지 않으면 허사라는 것도 알기에 글을 쓸 때마다 맞닥뜨리게 되는 마음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고 싶었고, 또 칭찬을 듣고 싶었어요. 그 욕심에 한두 번인가 몇 명의 친한 사람들에게 제가 쓴 글을 보여줘 본 적도 있는데 세 번은 못할 낯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하하. 돌이켜보건대 낯부끄러울 뿐 아니라 결례였을 것입니다. 직접 쓴 글을 권하는 것은 직접 구운 쿠키를 맛보라고 선물하는 것과 같지 않을 테니까요. 상대가 친한 사람일수록 더 부담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조심스레 오늘 이곳에 죄송하다는 말을 남깁니다.

낯부끄러웠다고 하면서도 자기 글을 프로필 배경으로 삼은 걸 보면 '저 글 써요!'하는 마음까지는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저를 잘 아는 사람, 친한 사람, 제게 관심 있는 사람이나 잠시 보고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지 제가 잘 모르고 또 저를 잘 모르시는 분이 들르시고 글을 보실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제게는 글을 잘 보셨다는 선생님의 그 말씀이 오히려 진정성있게 느껴지고 감사했습니다. 비로소 제 글이 '읽혔다'는 생각이 든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한 가지만 더 쓰고 싶은데요, 이전에 '별'이라는 글을 쓰고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발표하고 제 자리에 돌아왔을 때 앞에 앉아 계시던 분이 제게 "진짜 본인이 쓰신 거예요?"라고 물어보셨었거든요. 그때는 살짝 기분이 나쁠 뻔했습니다. 제가 시간을 들이고 공들여 쓴 글이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선교사 선생님께서 아주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걸 듣고 나니, 기분 나쁠 일이 아니라 도리어 깊이 감사할 일이었음을, 어쩌면 지금의 제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역시 글은 읽기와 쓰기인 것 같습니다. 아니, 쓰기와 읽기인 것 같습니다.

쓰는 사람이 쓸 때가 아니라 읽는 사람이 읽을 때 진정 가치가 있으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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