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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sumer Dec 10. 2022

 쓸모가 다한 사이

세월이 가면 당연한 일인가?

 

쓸모가 다한 물건은 많다. 아들이 잠깐 걸을 수가 없는 동안 대여해서 탔던 휠체어. 아들이 걷게 되고 바로 반납했다.


 중고등학교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두 명을 얼마 전에 만났다. 한 명은 미국에 대기업 주재원으로 몇 년 나가 있다가 한국으로 들어왔다. 사실은 페이스북으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반가워서 한 번 보자고 했는데, 그때는 이삿짐 등등으로 바쁘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미국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에 가끔씩 들어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한국에 돌아와서 어머님 댁에 있었다고 했다. 사진작가를 하는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대기업 주재원인 친구의 걱정도 연세가 드신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40대 남자 세 명의 공통분모는 딱 여기까지였다. 사진작가인 친구는 교재를 하는 사람은 있으나, 딱히 결혼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대기업 주재원인 친구는 새해가 되면 다시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수가 있는데,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부모님 걱정을 빼면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을 할만한 것이 없었다. 예전 초등학교 동창을 대형 법무법인과 회의하는 자리에서 만났다는 이야기, 초중고 동창이 하는 의류사업이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등 별로 알맹이는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니 뭔가 더 어색해졌다.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성향이 확실히 달랐다. 예전에 세명이 늘 주한미군을 위한 채널인 AFKN로 NBA 경기를 봤다. 그리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을 응원하는 만장일치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명은 20년간 다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하철로 치면 각자 다른 호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호선별로 환승역이 별로 없는 지하철이 적당할 것이다. 나는 캐캐 묵은 2호선 정도이고 나머지 두 친구는 공항철도나 9호선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어색한 분위기는 오래가지도 않았다. 나는 귀가해서 아들을 씻겨야 하기 때문에 8시 반 정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서 아들을 씻기고 밤 11시 정도에 친구 두 명 중 한 명에게 카톡으로 저녁 비용 N분의 일 금액을 확인하고 보냈다. 예전에는 많이 친했던 것 같은데, 만나서 집에 먼저 들어와도 누구도 아쉽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에 예전 다녔던 회사 선후배와 술자리가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내 회사생활 이야기를 했다. '마케팅' 관련 업무를 꽤 오래 했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는 온라인 마케팅을 중심으로 하는 퍼포먼스 마케터를 필요로 한다. 나는 퍼포먼스 마케터가 아니라서 좀 힘이 든다. 요약하면 이 정도 이야기였는데, 이야기를 들은 선배가 회사와 직원은 서로의 필요에 따른 계약관계라는 말을 했다. 회사에서 직원을 해고하던 직원이 회사를 떠나던 같다. 선배는 '쓸모가 다한 사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았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그다음 날에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할 때도 이 '쓸모가 다한 사이'라는 표현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우리 세 사람은 예전에는 서로 어떤 쓸모가 있어서 친하게 지냈던 것일까? 이리저리 생각을 해봐도 이제 40대 남자 세 명의 공통은 중년의 나이밖에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회사와 직원처럼 어떤 계약을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인간관계에서도 '쓸모가 다한 사이'라는 것은 존재하겠지만, 예전 친구 사이가 '쓸모가 다한 사이'가 된 것은 아쉬웠다. 차가운 초겨울 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퇴근길, 사무실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이 낙엽들이 발이 채일 때마다 '쓸모가 다한 사이'라는 표현이 계속 생각났다. 이제 나에게는 이 '쓸모가 다한 사이'가 점점 늘어나는 것일까? 적어도 다섯 살인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쓸모를 다한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될 텐데... 여러 가지 무거운 생각들이 발걸음을 힘들게 하는 퇴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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