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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Jan 26. 2024

시선

친구들과 밤새 놀았던 날, 거리가 가장 고요한 시간 새벽 세 시에 또예와 함께 나왔다. 웅크려 잠든 아이들과 몰래 배웅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고요가 불안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서로의 존재에 의지하며 예약한 택시를 기다렸다. 택시는 금방 왔다. 우린 바깥에서 오래 기다릴 만큼 일찍 나오지 않았다. 택시에서 기사와 무슨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우리 둘은 눈을 마주쳐가며 적당한 반응을 골랐다. 그 누구도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는 말들로. 우리의 눈짓은 신중했다.


또예가 먼저 내렸다. 나는 한참을 더 가야 했다. 또예는 도착하면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거듭 알겠다고 답하며 서로의 안심을 위한 약속을 했다. 또예는 건물 입구까지 걸어가는 내내 뒤돌아보며 눈을 맞췄다. 무사귀환을 바라는 그 시선이 뭉클했다. 헤어짐의 아쉬움도 담겼겠지만, 나에 대한 깊은 애정을 기반으로 한 보살핌의 시선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아마 또예는 택시 번호도 외워뒀을 것이다. 내가 늘 그렇듯.


몇 달 전에 읽은  책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에서 기억에 남는 단어가 있다. 샤를 보들레르가 정의한 ‘플라뇌르(Flâneur)'이라는 개념인데, 도시를 배회하는 행인을 가리킨다. 도시를 배회한다는 행위에는 많은 권력이 깃들어 있다. 눈에 띄지 않고 거리를 거닐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남성, 비장애인, 또는 인종이나 옷차림과 행동거지까지 보편의 기준, 또는 권력을 쥔 집단의 기준에 일치하는 사람만이 그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고 도시의 행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플라뇌르가 아니다. 특히 어두운 밤 골목길에서 나는 나를 툭 불거진 존재처럼 여긴다. 거리를 살피기 위해 눈동자를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어느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쓴다. 누군가에게 눈에 띌까 봐 조용히 그리고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그땐 이동이 아주 급박한 과제가 된다. 내가 플라뇌르라면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이렇게 애쓸 리가 없다. 깊은 밤 택시 안에서 친구와 눈짓을 주고 받으며 신경을 곤두세울 리가 없다.


내가 유독 겁이 많은 것일 수 있다. 내 여자친구들은 밤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닐기도 한다. 나는 가능하면 남성 애인을 불러내거나, 그도 아니라면 꼭 필요한 이동만 하고 산책은 시도하지 않는다. 친구와 함께일 경우, 종종 산책은 할 수 있으나 쉴새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혹시나 누군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까 봐, 우리의 존재가 이 어두운 거리에서 생뚱맞게 도드라질까 봐 염려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건 확률 게임이잖아. 아무도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므로, 내 걱정과 두려움은 필연적이다.


누군가는 잠시 휠체어를 타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체감했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지 않았더라면 스쳐지나갈 시선이 한동안 머물렀다. 시각적 차이는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가 되어야 하는가. 거리의 비둘기도 당연한 시대다. 비둘기도 플라뇌르가 되었는데, 어떤 인간이 플라뇌르가 되지 못하는가? 시선을 끌지 않고 거리를 거닐 수 있는 당연한 존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위여야 하는가. 시선에 닿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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