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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Mar 28. 2024

글의 무게

말문이 막히듯 글문이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은 수없이 머릿속을 배회했는데, 글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큰 마음을 먹어야 했다. 글을 쓰는 것은 벅찬 일이다. 글 쓰는 일이 언제부터 이렇게 힘겨워졌더라. 나는 글에 종속되어 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글에 쓸려간다. 욕심과 자부심과 자책과 열등감이 골고루 뒤섞인 마음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내게 글을 쓰는 일은 힘이 드는 일이었다. 내 등을 떠밀어주는 말은 많다. 최악의 결과물일지라도 흔쾌히 세상에 공개하라고, 글 하나하나의 훌륭함보다 이어가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 말을 체화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하루는 화가 났다. 뭐에 그렇게 화가 났더라. 내 글에 대한 아주 작은 피드백이었던 것 같은데, 아주 크고 휘몰아치는 감정에 풍덩 빠져버린 적이 있었다. 한참 지나고 뜽귱이 물었다.

”피드백일 뿐인데 왜 그렇게 화가 났어?”

“그러게.”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피드백은 피드백일 뿐이잖아.”

뜽귱이 말한 ‘일'이라는 개념이 생경했다. 일이라니? 그런데 가늠해볼수록 글은 내게 일이었다. 아직 글이 생계 유지의 수단은 아니지만, 내게 글은 취미라기엔 훨씬 크고 무겁다. 업에 가깝지. 이렇게 이성적인 사이라면 나는 왜 그렇게 글에 대한 평에 휘둘렸을까.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내 글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글에 대한 비판이 나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에 위협이 되었고 두려움이 되었다. 글이 곧 나이기 때문에, 글의 단점은 나의 단점이고 글의 한계는 나의 한계였다. 그래서 참 조심스럽게도 세상에 내놓았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을 끊임없이 따졌다. 문장이 너무 짧아서도 안 돼. 너무 상투적이어서도 안 돼. 너무 쉬워서도, 어려워서도 안 돼. 이 단어는 너무 흔하잖아. 특별한 문장을 만들어야지. 문단이 뚝뚝 끊기고 연결이 하나도 안 돼… 브런치의 글은 이백 개가 넘어가는데, 하나의 글을 내놓을 때마다 극심히 마음을 졸였다. 그러니 힘이 들지.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을 졸이고 힘겹게 가까스로 쓴 글일수록 효용을 기대했다. 이를테면 쉽게 사그라드는 글이 아닌, 다용도로 써먹을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랐다. 누군가의 시선을 끌어오거나, 누군가의 호평을 사거나, 또는 언젠가 활자로 찍어낼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거나... 나는 내 글을 아까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 글을 훌륭히 여겨서가 아니라, 글에 지나치게 많은 마음을 썼기 때문이었다. 힘겹게 내놓은 만큼 보상을 바라는 것이다. 쉽게 내놓아야 쉽게 묻혀도 아쉬울 것 없이 다음의 새로운 글을 쓸 텐데.


내가 극복해야 하는 건 글의 무게다. 글이 내게 더 이상 무거워서는 안 된다. 멀리 보면 평생 쓸 글, 노인이 되어서도 쓰기 위해 힘을 빼야 한다. 진심으로 부족하고 엉망인 글이어도 괜찮다. 어차피 10년 뒤엔 귀여워질 글이니, 지금의 서툶을 누리는 것이 현재를 만끽하는 방법일 테다.


피드백은 피드백일 뿐이라는 뜽귱에 말에 한동안 침묵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나 이제 알았어. 내가 너무 진심인가 봐.”

글을 열망하게 되자 글은 삶이 되었는데, 동시에 일이기도 하니 일과 삶이 중첩되어 그 경계를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워라밸을 챙길 때다. 나는 글과 나를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내 글을 사랑하되 아주 가볍게 여기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평습도 3주 간의 봄 방학을  다시, 아주 가볍게, 쓰기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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