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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Aug 29. 2023

처음으로 10km 달리기 완주

혼자는 할 수 없어 같이 뛴다


아산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 10km에 출전한다. 평소에 달리기를 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뛰어야 하는 마라톤은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런데 왜 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가. 대회를 핑계로 달리기를 좀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마라톤 대회를 접수하고 50여 일이 남았다. 매일 뛸 자신까진 없지만, 아주 천천히 걷는 것과 맘먹는 속도로 뛴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늘 긍정적인 마인드가 말썽이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은 여전하다. 50일 중에 몸 컨디션이 가벼워서 날아갈 듯 한 날, 적당한 바람과 시원한 날씨로 달리기 좋은 날, 심정으로 마라톤 대회가 부담되는 날, 그렇게 달리는 날의 횟수를 세어보니 열 번도 채 안 된다.


어쩌지. 그냥 참여하지 말까. 마라톤 대회 참여하지 않는다고 혼나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유아적인 태도의 마음소리가 들리던 순간,  '그래도 접수했으니 무조건 간다'라며 나름 어른인 척하는 비장함이 결국 마라톤 대회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마라톤 대회 날, 쌀쌀한 바람이 세찼다.  마치 초겨울의 시퍼런 공기가 살을 에는 것 같다. 열띤 마음이어도 날씨 탓에 얼얼해질 정도다. 대회 장소에 도착하자 저마다 몸을 푸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많은 인파에 휩싸여 나도 '마라토너'가 되겠구나, 생각하니 잠시 설레었다. 몸의 외형만 봐도 얼마나 잘 뛸지, 예상이 됐다. 우선 종아리 생김새가 다르다. 굴곡이 선명하다. 얼핏 봐도 체지방은 키우지 않는 몸이다. 그만큼 달렸다는 거다. 


추운 날씨여도 사람의 열띤 기운 탓인지, 금세 따스해진다. 사람의 열기라는 게 얼마나 뜨거운지 덩달아 몸이 들썩거린다.  출발 소리와 함께 달리는 폼을 잡는다. 갑자기 출발하는 사람들한테 치여 달리는 스텝이 엉긴다. 달리기 리듬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앞사람 뒤꽁무니를 쫓는다. 얼마쯤 뛰었을까. 5분도 채 안 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사람들은 벌써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나도 덩달아 달린다. 숨이 조금 차오르지만 뛰다 보니, 참을만하다. 그래, 딱 이 정도 속도로 달리자.


참을만한 호흡. 헉헉대지 않는 숨소리. 그게 딱 나의 속도이다. 뛰는 건지, 종종걸음을 걷는 건지 헷갈리지만 나름대로 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나를 앞질렀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앞지를 땐 그럭저럭 넘기건만, 나보다 나이 든 여자가 나를 앞지를 때면 내 안의 잠자고 있던 승부욕이 발동한다. '저 사람을 앞질러야겠다.' 앞사람의 뒤꽁무니 가까이 붙으면서 뛴다. 거리로 별 차이 없다. 조금만 더 달리면 추월할지도 모른다.  뒤에서 바라본 그녀의 몸도 나처럼 마라톤 경력이 오래되지 않은 사람이다.


아직 숨은 참을만한데, 벌써 5km 반환점이다. 이 정도면 성공이다. 난생처음 5km를 쉼 없이 뛰었으니,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죽을 것처럼 숨이 차지 않으니, 더 뛸 수밖에 없다. 내 앞으로, 옆으로, 뒤로 사람들이 뛴다. 그 속에서 나도 뛴다. 나의 의지로 뛰는 것이 아니다. 뛰는 분위기에 휩싸여 뛰어진다. 그들의 에너지에 기대어 없던 힘도 내고, 포기보다 뛰어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조금만, 조금만이 벌써 7km이다. 이만하면 충분히 잘했다고 힘들면 쉬어가라고 마음의 소리가 속삭이지만, 아직은 아니다. 

'홍시, 힘내.'

'홍시, 더 할 수 있어.'

'홍시, 아자!'

내가 나에게 응원을 건넨다. 호흡은 비교적 괜찮은데, 안 쓰던 근육을 쓰는 탓인지 다리 곳곳에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엉덩이 부근의 관절이 뻐근하게 저리다. 통증이 세기가 커지자 두려움이 엄습한다. 더 아프기 전에, 생존본능이 '멈춤'을 택했다. 잠시 걷는다. 얼굴은 이미 토마토처럼 벌게졌고, 달리기의 리듬이 남아서인지, 걸으면서도 뛰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맘은 뛰고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엉거주춤한 동작이다.


걷다 보니, 통증의 세기가 잠잠해진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달리니, 나도 달린다. 통증이 있지만 참을만하다. 달리는 동작을 미세하게 조정하니 통증도 줄어든다. 하지만 이제는 다리가 돌덩어리 추가 달린 것처럼 무거워졌다. 멈춘다. 그리고 걷는다. 하지만 다행이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뛰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이 있다. 나만 걷는 게 아니다. 대회장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뛰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달리기 의지에 힘입어 나도 덩달아 의지가 생겨났다. 


'당신들 덕분에 난생처음 10km를 완주했어요!'


한 번도 뛰어보지 못했던 거리를 뛰게 되었다. 혼자 뛰었지만, 혼자의 힘으로 완주한 것이 아님을 안다. 혼자라면 절대 뛰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뛰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참여한 마라톤이었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말동무 한 명 없었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완주 결승선을 통과할 때 덤덤했다.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는 결승선은 초라했다. 하지만 마음은 초라하지 않았다. 마라톤대회에 출전했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뿐이었다. 대회를 통과한 나는 어제와는 분명 다른 내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그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얼굴은 상기되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니 잊고 있던 허기가 아우성을 친다. 뭐든 뱃속에 채워 넣고 싶다. 아침 식사로 바나나 하나 먹은 게 전부이다. 대회장에서 준비한 잔치국수를 내어주는 줄에 얼른 섰다. 뜨거운 국수 국물을 한입 가득 들이켜니 가슴이 충만해져 온다. 아~ 이 국수를 먹으려고 그렇게 뛰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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