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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Oct 20. 2023

혼자 하지만, 함께 하는 운동

작고 오래된 헬스장의 매력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는 최신식의 빛이 나는 운동 기구는 없다. 오래되어 닳고 닳은 연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람으로 치자면 ‘노년’으로 접어든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는 운동 기구들. 운동 기구 앞에 쓰인 ‘고장’을 볼 때면 불만보다는 측은함이 먼저다. 언제 고쳐주나, 한참 기다리다 체념이 들어설 때면 딱 맞춰 ‘고장’이 사라진다. 수리된 운동 기구는 이전보단 못하지만 아직은 쓸 만하다는 안도감.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지역의 소도시에 위치한 1층 목욕탕, 2층 수영장과 함께 운영된다. 목욕탕이 메인이고, 수영장은 주력이며 헬스장은 가까스로 끼어맞춘 것 같은, 크게 신경쓰지 않은 티가 여실히 드러난다. 


헬스장으로 들어서면 보고 싶지 않아도 인기척이 느껴진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하는 ‘적정한 거리’를 강조한다면 썩 유쾌한 운동 장소는 아닐 수 있다. 운동 전 워밍업으로 입을 푸는 사람들의 사적인 대화를 아무런 필터 없이 그대로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음으로 치면 '솔' 정도.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애석하게도 이어폰을 두고 왔다. 무방비로 송출되는 대화를 엿들을 수밖에 없다. "거기 재가요양센터 사장이 어제 죽었대." "주공 아파트 앞에서 송편 샀는데, 다들 맛있다고 그러네." 짜증으로 듣던 나의 귀가 솔깃하다. 맛난 송편을 나도 구입하고 싶었다. 그녀들의 수다에서 지역의 정보를 재빠르게 얻을 기회를 얻었다. 지역은 ‘말’이 곧 정보이고, 정보는 생생히 살아있어 전파력이 빠르다. 한 사람이 알고 있다면, 한 동네가 알고 있는 것이고, 한 동네가 알고 있다면 그 지역이 알고 있다. 나는 개인의 사적 영역을 침해당하지 않는 적정한 거리, 같은 건 통용되지 않는 공간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아니, 이 작은 공간 덕분에 운동할 맛이 났다. 


신도시의 쾌적한 헬스장을 가 본 적 있다.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한 눈에 모든 공간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넓었다. 스트레칭 영역, 프리웨이트 영역, 러닝머신 영역 등 다양하게 구분되어 사람들은 점점이 흩어진 것처럼 보였다. 운동을 해도 옆 사람이 잘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적정한 거리'를 잘 유지하는 헬스장이었다. 그럴듯한 헬스장에 비해 운동하는 사람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드문 드문, 사람의 흔적만 느껴질뿐, 어떤 운동을 하는 지 일부러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었다. 


최신식의 기구도 많았다. 계단을 오르게 만드는 일명 '천국의 계단'이나 다리를 벌려 엉덩이에 자극을 주게 하는 운동 기구들. 그 외에도 한번 쯤은 꼭 사용하고픈 운동 기구들이었다. 설레였고, 흥분이 되었다. 막상 낯선 운동 기구 앞에 서니, 움츠러 들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멈칫하다,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러닝으로 열을 좀 내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간단한 스트레칭도 했다. 


내가 하던 습관대로 워밍업을 했지만 좀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무겁고 뻣뻣했다. 긴장했나. 운동 기구를 사용하면서도 그 무게를 얹어 더 무거워졌다. 몸은 부자연스러웠다. 이런 몸으로 운동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더 열심히, 더 효율적으로 운동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몸의 관절은 윤활유 없이 뻑뻑하게 움직여 강제로 밀어붙이면 몸이 불협화음을 내며 다칠 수 있었다. 한 숨을 쉰 채 러닝머신에서 시간을 좀 때우다 나왔다. 아마도 다시는 최신식이 구비된 헬스장을 기웃거리지는 않을 것이란 확실한 예감.


돌아온 헬스장은 고향에 돌아온 듯, 포근하고 정겨웠다. 그제야 보였다. 당신들 덕분이라는 것을. 내가 힘든 고통을 무릅쓰고, 으쌰 으쌰 힘을 내며 운동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만이 아니었음을. 최신식 운동 기구만으로 운동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했다. 헬스장은 함께 호흡을 맞춰 운동할 영역이 없다. 고독하고 외롭게 무게를 얹어 묵묵히 자기 몸을 단련시킨다. ‘자기와의 싸움’으로 근육에 상처를 내고 회복하는 과정이다.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운동을 하고 있다는 착각. 나의 강력한 의지를 칭찬하며 빼꼼히 들어선 자만심까지. 과연 내가 헬스장이 아닌 공간에서도 이렇게 운동할 수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잠시 헬스장과 이별을 고할 때가 있었다. 일주일 가량 집에서 운동을 하겠다고 야심 차게 5kg 덤벨과 운동용 밴드를 구입했다. 그 정도로도 충분히 운동은 가능했다. 가능함과 실행력과는 별개라는 듯, 일주일간 덤벨과 밴드는 조용히 서랍장에 모셔졌다.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이라고, 꼭 헬스장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맨몸 운동만으로도 일상에서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근력을 키우는 것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집에서 혼자 해도 가능하다. 하지만 집에서는 운동이 안 된다. 해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에구구구~ 힘들어, 집어치워' 힘든 노력을 한다는 게 당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몸은 반항한다. 집에서는 가장 편안하게, 가장 나태하게, 아무것도 안 할 테야. ‘운동’이라니 가당치도 않아.


똑같은 몸이지만, 헬스장과 집에서의 몸에 대한 마음가짐에 큰 차이가 있었다. 운동을 목표로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으쌰으쌰’ 소리 내지 않아도 나를 응원하고, 너를 응원한다. 어제 10개의 스쿼트를 했다면, 오늘은 15개의 스쿼트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소리 없는 응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샘솟고, 운동할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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