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굴레에서
목요일 저녁이었다. 갑자기 성당 구역 단톡방에 알림이 떠서 보니 장례 미사 안내였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가신 분은 우리 아파트에 사는 56세밖에 안 된 형제였다. 배우자 이름이 익숙했지만, 얼굴이 단번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톨릭에서는 신자가 세상을 떠나면 전 구역이 정해진 시간에 장례식장에 가서 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다. 그것을 ‘연도(연옥 煉獄에 있는 이를 위한 기도)’라고 하며 장례식장에 가는 것을 ‘연도 간다’라고 말한다. 나는 일정이 있어서 이틀간 이어진 연도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토요일 오전 10시에 마련된 장례미사에 참석했다.
미사가 시작됐다. 연령회(초상이 나면 입관, 출관, 장례미사, 장지에 이어 삼우 미사까지 이끌어가며 고인과 유족을 위로하는 봉사 단체) 봉사자가 십자가를 높이 들고 입장하자 사제, 고인의 영정사진을 든 아들, 고인 그리고 나머지 유가족들이 뒤따라 입당했다.
통곡하는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많은 마리아였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성당과 구역 모임에서 자주 만나던 자매였는데 코로나가 잠잠해진 뒤에는 한참 동안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영정사진을 안고 들어오는 그녀의 아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성당 잔디밭에서 축구를 열심히 하던 초등학생이었는데 지금은 키만 삐죽 커서 상복이 어색한 고등학생이 되어있었다. 그 모자 母子 뒤로 회사 마크가 박힌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왔다.
세례만 받고 성당에 다니지 않았던 세상을 떠난 형제의 사인은 6호선 삼각지역 인근 환기구 내부 전기 작업으로 인한 감전사였다. 소방대원에 의해 심정지 상태로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회사 동료였다.
영정사진 속 형제는 장난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연령회 회원들과 제법 많은 신자가 검은 옷을 입고 장례미사에 참석했다. 그들은 고인과 남겨진 마리아 자매, 아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함께 울었다. 그를 위한 기도가 이어졌다.
뒤쪽 자리에 앉아 맨 앞에 있는 마리아를 지켜봤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슬픔을 억누르며 기도를 이어가고 성가도 불렀다. 마지막 ‘고별식’에서 그녀를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 고별식은 가족들이 고인의 관 양쪽에 초를 들고 서서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의식이다. 사제가 성수를 뿌리고 향을 쳤다. 가족들이 국화와 초로 고인의 길을 밝히자, 마리아의 우묵 패인 무표정한 볼에 눈물이 흘렀다.
마침 성가로 '천년도 당신 눈에는'을 불렀다. 그 곡에는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마치 한 토막 밤과도 비슷하나이다.'라는 가사가 있었다. 천년도 그러할진대 56년이라는 너무도 짧은 생을 살다 간 형제가 무거운 짐 내려놓고 그곳에서 외롭지 않기를 기도했다. 출근하며 "갔다 올게"하고 돌아서던 남편을 배웅하지 못한 후회가 마리아를 집어삼키지 않기를, 50대의 아빠를 영원히 기억할 아들의 행복을 위해 빌었다. 고인을 덮은 검은 벨벳 천에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의 라틴어 Hodie mihi Cras tibi(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가 쓰여 있었다.
이제 그의 이름 앞에 ‘고故’ 자가 붙었다. 남은 사람들은 주어진 오늘을 살기 위해 성당 문을 열고 나섰다. 성당 마당에 설치된 무지갯빛 대형 슬라이드와 풀장이 보였다. 오늘부터 시작된 초등학교 여름 신앙 학교로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 중이었다.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