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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Jul 11. 2023

이승에서의 마지막 노래, 연도

  4년 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성당 자매가 세상을 떠났다. 나와 동갑이었지만 인사만 하는 사이였던 그 자매는 10년 넘게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했다. 구역장은 그녀를 위해 신부님을 자매의 집으로 모시고 와 기도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따로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등 특별히 살폈다. 그날도 구역장과 반장들은 그녀와 함께 밤늦게까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헤어졌는데 집으로 돌아가 새벽에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장례는 집 근처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성당을 다니며 처음 가본 가톨릭 장례였다. 그녀의 남편은 조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2, 중3 형제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때 장례식장 한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염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타령하는 것 같기도 한 노랫소리는 분향실에 앉은 성당 자매들의 기도였다. 나도 엉거주춤 그 기도에 동참했다. 


  그 특이한 기도 소리의 정체는 ‘연도(또는 위령 기도)’였다. 한국의 천주교 장례 문화는 ‘연도의 문화’라고 말한다. 초상이 나면 “연도 났다”라고 하고 문상 때나 기일 혹은 명절에 이 기도를 바친다. 이 용어는 18세기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적으로 연도란 ‘연옥도문’의 준말로 ‘연옥 영혼을 돕는 기도문’이라는 뜻이다. (연옥은 죽은 이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거치는 정화의 단계를 일컫는 말로 가톨릭 교리다) 연도는 염습과 입관, 출관, 운구와 하관, 화장, 삼우에 하며 특히, 문상하러 갔을 때 빈소에서 하는 기도다.     

  연도는 서양음악이 들어오기 전인 천주교 박해시대였던 19세기에 토착화되면서 전통 민요 가락과 만났다. 형식은 무리를 둘로 나누어 한쪽이 부르고 나머지는 망자의 이름을 넣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교환 창’ 또는 ‘선후 창’의 형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선후 창은 상엿소리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형식으로 연도가 민속적 전통 위에 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연도 기도문 「천주성교예규」는 중국의 「성교예규」를 1859년 다블뤼 주교(프랑스, Marie Nicolas Antoine Daveluy)가 남녀노소가 다 읽을 수 있도록 우리말로 번역했다. 박해시대라는 긴급함 아래 사제 없이 신자들만으로도 예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한글을 사용하였고 로마 장례 예식보다 간소화된 것이 특징이다. 한글을 모르던 대다수의 초기 신자들은 책 없이 노래로 외워서 기도를 드렸지만, 1992년 「가톨릭 연도」에 전승된 가락이 악보화 되어 공식적으로 수록되었다. 2003년 출간된 「상장예식」에는 연도 악보의 수정과 보완의 작업을 통해 현재 장례식장에 비치되어 있다.

  같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에서도 「성교예규」라는 예식서가 있다. 이는 적어도 청나라 도광제 임기인 1850년 이전에 쓰여 「천주성교예규」 보다 앞선 것이다. 간행자는 모예 신부(프랑스, Joannes Martinus Moye) 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교회에서 「성교예규」의 활용 정도는 매우 미약했다. 우리나라 「천주성교예규」는 「상장예식」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되고 현대화됐지만, 중국의 「성교예규」는 대중화되지 못했다. 이유는 높은 한자 문맹률과 현지 신자들의 생활에 맞지 않는 복잡한 로마 장례 예식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톨릭 장례 역사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령 기도가 박해시대인 기리시탄 시대 (일본 에도시대의 크리스천, 즉 기독교 신자를 가리키는 말로, 크리스탕(포르투갈어: Cistão)에서 유래했다)에는 존재했다. 예수의 성상까지 불교식으로 바꾸는 등 숨어서 이중기도, 즉 외부에서는 불교식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와서는 다시 그리스도교식으로 하는 방식을 유지해 오다가 점차 사라지고, 현재는 사제의 기도에 따라 ‘아멘’이나 침묵으로 고인을 추모한다. 


  며칠 전에는 같은 봉사 단체 자매의 시어머니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 어른은 임종하는 사람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단체인 ‘연령회’에서 활동했다. 이 봉사 단체는 주로 중년, 노년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상의 시작과 입관, 발인에 함께 하며 기도한다. 

  그날 연령회에서는 낮에 다녀갔고, 구역별로는 신자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에 기도 시간이 배정되었다. 우리 구역이 연도 할 차례가 되어 분향실로 들어갔다. 연도를 하면서 영정 사진을 봤다. 생전에 알지 못하는 분이었지만, 어린 시절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떠했으며, 처녀 시절은 얼마나 빛이 났을지, 첫 아이를 낳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했다. 이제는 연도 가락에 맞춰 천국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시라고 빌었다.      

  가톨릭에서는 선종 善終이라는 말을 쓴다. 이는 임종 때에 병자성사(사제가 위급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 회개를 통해 건강의 회복을 기원하는 것)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착하게 살고 복되게 생을 마친다.'라는 뜻을 가진 선생복종 善生福終에서 유래하였다. 선종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는 예도 있는데, 바로 자살했을 경우다. 신의 영역인 인간의 생사를 인간이 내팽개쳐 버린 것은 우주와 신의 질서에 반하는 죄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도는 자살한 이에게도, 천수를 누린 이에게도 평등하다. 연도를 바치는 이의 마음은 세상을 떠난 영혼이 신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바라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연도 갈 때마다 1층 안내판에 언젠가 쓰일 내 이름과 영정 사진을 떠올려 보면 고통 속에서 생을 마치진 않을까 두렵다. 동시에 이 순간의 삶이 소중해지고 방금까지 갖고 있던 타인을 향한 미움이나 걱정거리가 하찮아진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이웃이 세상을 떠나면 하루에 몇 번이고 민요 가락으로 구성지게 기도해 주던 조상의 정신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처음 연도 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내 마음 깊이 자리 잡았고, 그것은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보다 지금을 잘 살게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1월 17일, 허윤석 신부님의 글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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