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배꽃을 그리워하며
내가 처음 오산 갈곶성당에 갔을 때는 만삭의 몸이었다. 일흔 살의 나이에도 아파트 청소일 하던 어머니는 직장암 선고를 받고 집에 계셨다. 어느날 시댁에 갔을 때였다.
"어머니, 성당 한번 가보고 싶은데 갈까요?"
"그래? 니 시간 되나? 가자, 가자" 어머니는 예상대로 무척 좋아하셨다.
평소 어머니는 갈곶성당을 본인이 지었다고 자랑하곤 했다. 원래는 오산성당에 다녔는데 옛 화성경찰서를 중심으로 지역을 쪼개어 신자를 나누게 되면서 집에서 훨씬 가까운 갈곶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성당 건축기금을 모으기 위해 전 신자가 십시일반 건축헌금을 내는 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구역별로 신자들이 인부들의 밥을 직접 지었으며 혼배 성사(결혼식)가 있으면 국수와 뷔페 음식을 신자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차에 어머니가 타고 내비게이션을 켜자 그 짧은 거리를 무슨 기계로 가냐며 당신이 알려주는 대로 가라고 했다. 5분 정도 달렸을까. 어머니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요, 요기서 퍼뜩 좌회전해라!”
“여기서요? 아유, 좀 미리 말씀하시죠. 깜짝 놀랐잖아요”
“쯧쯧쯧. 와 이리 급하게 가노. 천천히 가라”
어머니의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아파트 숲 사이에 난 길을 달리다 급하게 좌회전을 했다.
“어머나!”
순간 눈 앞에 펼쳐진 풍경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그저 몇 미터 좌회전했을 뿐인데 조금 전 세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나지막한 언덕 전체에 키 작은 4월 순백의 배꽃이 만개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태양을 향해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천국’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위에 견고한 갈색 벽돌집, 갈곶성당이 있었다.
성당에 올라가니 오른쪽에 배밭을 두고 사제관, 성모상, 그리고 대성전이 연둣빛 반지르르한 잔디밭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성모상 앞에 가서 초를 켜고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이맘때 저녁 미사를 조는 둥 마는 둥 하고 내리오믄 달빛에 배꽃이 기가 맥히는기라. 천국이 따로 엄따”
배꽃을 보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낮 동안 고된 아파트 청소를 마치고 헬스장에 들렀다가 급하게 밥 한술 잡수고 저녁 미사에 와서 신부님 강론 말씀에는 졸다가 달빛 아래 배꽃에 정신을 빼앗겼을 어머니가 그려졌다. 2년 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내 삶에도 배꽃이 점점 스미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로부터 4년 후 싸라기눈 같은 배꽃을 찾아온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새 신자 교육을 받았고, 4월이면 성경 공부하러 사제관 1층에 있는 교리실로 갈 때 교우들과 배꽃 앞에서 사진을 찍었으며, 딸아이도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성당에 가서 배꽃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했다.
언제부터인가 배밭이 팔려서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배밭에 지분은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소문을 들은 지 며칠 후 성당에 가니 배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무참히 잘려나간 나뭇가지와 썩은 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에게 완벽한 4월을 선물해주던 배밭은 하루아침에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흉물스러운 황토밭으로 남은 배밭 옆에 신비감은 오간 데 없고 성당은 그저 평범한 건물로 보였다.
곧이어 진입로 입구에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가 배밭을 가로막으며 들어섰다. 대단지 아파트 입구에 좋은 위치를 귀신같이 찾아 스타벅스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 성당 주차장은 스타벅스 손님들의 주차장이 되었고 배밭엔 온갖 쓰레기가 뒹굴고 있었다.
작년에 성당에서 연보를 발행하면서 ‘추억의 성당 사진 공모전’을 진행했다. 최우수작에는 상장과 상품도 수여하고 연보 표지로 선정하기로 했다. 23년의 성당 역사의 사진이니만큼 기대가 컸다. 출품작 중에서 3개의 사진이 최종 후보로 좁혀졌다. 그중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은 바로 배꽃이 만발한 배밭 아래에서 찍은 성당 사진이었다. 성당 왼쪽에 해가 뜨면서 무지개 모양의 햇무리가 성당을 감싸고 있어 성스러움을 자아내는 작품이었다. 바로 그 사진이 최우수작품으로 뽑혔다. 성당 앞 교회 목사님이 찍은 것인데 그 사진으로 성당 옆 하얀 둥지 같던 배꽃을 추억할 수 있었고 종교 화합까지 해냈다.
작년 연말에 드디어 아파트 건설이 시작되었다. 유명 아파트 브랜드인 힐스테이트의 첫 글자 H를 새긴 거대한 플래카드가 열 동에 우아하게 펄럭이고 있다. 바벨탑 같은 아파트는 일주일에 한 칸씩 올라간다. 배꽃 덕분에 여느 성지 못지않은 경치를 자랑하던 성당의 풍경은 아파트가 준공되면 어떻게 변할까. 올해 4월은 그 자리에 소리 소문도 없이 홀로 피고 지던 배꽃이 더 그리울 것이다. 천국에서 어머니가 다정했던 배밭 대신 차가운 콘크리트 철창 같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성당을 보며 혀를 차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