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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ul 10. 2023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서평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 (2020년 기념판, 교양인)

사람마다 자신을 정의하는 언어가 있다. 직업에 의해, 가족 관계에 의해, 사회에서의 역할에 의해 구별지어지며 여러 개념으로 정의 된다. 선생님, 학생, 아버지, 어머니, 노인, 청년……. 그중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가장 우선적으로 나뉘게 되는 분별체계라고 할 수 있다. 생물학적인 차이에 의해 나뉘는 성별은 그러나 결코 유전적, 생리적인 층위로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1967~)은 그의 대표저서중 하나인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세계관으로서의 젠더를 분석하고 사회현상을 파악하는 주요한 장치로서의 페미니즘을 제안한다.


서강대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 여성학을 공부한 저자는 졸업 후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상근자로 일했고 대학과 시민단체에서 강의하며 <정희진처럼 읽기>, <아주 친밀한 폭력>,<혼자서 본 영화>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2005년 초판 발간 이후 2020년 15주년 기념판을 발매할 때까지 꾸준히 읽히며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일으켰다고 평가되며 2012년 출판인들이 직접 뽑은 ‘함께 읽고 싶은 100권의 책’, 2018년 한겨레 창간 30주년 특집 기획 ‘책으로 본 한국 사회 30년’에 선정되었다.


“페미니즘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는 것이다.”(p.90) 다른 목소리에 대한 귀 기울임을 강조하는 저자는 그로 인한 다양성과 창조성의 발현을 강조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양성평등’, ‘여성상위’등의 대립적인 구도로 번져가기 쉽지만, 저자는 여성과 장애인, 동성애자 등 억압받는 자들의 시선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지성’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있음을 역설한다. 갈등과 분열을 경험해야만이 주류의 언어인 남성의 규범을 벗고 자신의 언어로 사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저자의 현장경험이 녹아있는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노인, 성판매 여성, 군사주의 등 남성/주류로 대변되는 주체가 그렇지 않은 계층을 어떻게 해석하고 억압하는지 보여주고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구조적인 모순으로서의 작동 방식을 밝힌다. 그는 ‘묻지마 폭력’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남성들의 전쟁이라고 일갈한다. 폭력은 폭력일 뿐이며 그 어떤 이유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 폭력은 권력행동이며 그렇기 때문에 시비와 정의의 분석이 아닌, ‘폭력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고찰하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다양한 실례를 들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규범들이 사실은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해 준다.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p.32) 페미니즘에 대한 정희진의 글은 도전적으로 읽힐 수 있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갈등 없이 수용되는 남성 중심적 언어와 달리 기존의 세계와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는 여성주의는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여성혐오, 이대남, 꼴페미, 백래시 등의 언어에서 볼 수 있듯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은 젠더 갈등을 점점 심화시키고 있으며 22년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진보/보수 진영으로 극명하게 갈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또한 노령화 사회와 1인 가구 증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 등은 이제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예고한다. 지금까지의 언어로는 더 이상 당면한 문제를 해석할 수 없을지 모른다. 페미니즘과 여성주의는 앞으로 올 사회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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