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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Oct 18. 2023

남미의 열혈남아

서평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마르케스 자서전 (민음사, 2007)

지구 중심을 통해 반대편으로 나오는 지구표면의 지점을 대척점(antipode)라고 한다. 우리의 대척점인 라틴 아메리카는 한국에서 가장 멀리에 위치한 지역으로, 정서적으로도 가깝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문학만큼은 잘 알려진 작가들이 많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 콜롬비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1936~ ,페루), 파블로 네루다(1904~1973,칠레) 등은 모두 중남미 문학의 주요 작가들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이기도 하다. 이중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마르케스는 자신의 자서전인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를 통해 청년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개인사와 콜롬비아의 시대상을 펼쳐낸다.


콜롬비아 카리브 해 연안의 시골마을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난 마르케스는 퇴역군인인 외조부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보고타의 국립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마르케스는 1948년 보고타의 폭력사태로 까르따헤나 대학으로 옮기며 일간지 <엘 우니베르살>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결국 대학을 그만둔 마르케스는 신문에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바랑끼야의 지역 신문사인 <엘 에랄도>의 칼럼에 글을 쓰게 된다. 이후 진보적인 신문사 <엘 에스뻭따도르>의 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콜롬비아 사회의 여러 사건 사고를 취재하며 언론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이야기는 외조부의 집을 팔기위해 어머니와 함께 아라까따까로 가게 되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단 이틀 동안의 단출한 여행이 내게 결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나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평생 내가 내렸던 모든 결정들 가운데 어머니를 따라 나서기로 한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p.12) 마르케스는 이 여행을 통해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 수많은 친척들의 기억을 되새기며 훗날 『집』을 거쳐 『백년의 고독』으로 성취되는 문학의 근원을 찾게 된다. 수많은 여인들과의 정열적인 연애사 또한 적나라하게 풀어내는데 성적 욕구에 충실한 남미 열혈남아들의 모험담은 보수적 연애관을 가진 독자에겐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미국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와 콜롬비아 정부의 유착으로 발생한 ‘바나나 학살’, 자유당의 급진파 지도자 호르헤 가이딴의 암살 사건과 보고타 시내의 폭력사태 등 콜롬비아 현대사의 격랑을 맨 몸으로 통과해야 했던 기자생활의 묘사는 마르케스 문학의 또 하나의 한 축을 보여준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잘 알려진 그의 문학적 특성 중 가족의 서사에서 ‘마술’적인 면을 발견 할 수 있다면,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그의 시간들은 ‘리얼리즘’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해군 군축함 침몰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벨라스꼬’와의 인터뷰는 이후 책으로도 엮일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침몰의 원인을 폭풍으로 몰고 가려던 정부의 의도에 반해 불법적인 개인 화물의 과도한 적재라는 기사내용은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불렀다. 그밖에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마르케스의 펜은 결국 공권력의 폭력을 피해 해외로 도피해야하는 상황에 그를 이르게 한다.


1950년 마르케스가 대학 공부를 중단하고 바랑끼야로 이사한 후의 시점에서부터 1955년 스위스 제네바로 떠날 때까지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자서전 3부작 중 1부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르케스 사후 더 이상의 자서전이 출판되지는 못했다. 콜롬비아의 가난한 소년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며 글쓰기를 위한 여정에 몸을 던지고, 펜 하나로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가는 이 책의 내용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시간 순이 아닌, 작가의 연상에 따른 사건의 나열은 독자의 혼동을 야기할수도 있겠지만 작가 특유의 입담과 생기 넘치는 묘사는 읽는 맛을 준다. 남미의 열혈남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문학적 원천이 궁금한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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