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오리 Jul 15. 2024

문학과 함께하는, 격정적인 사랑의 찬가

<격정세계> 찬쉐 (은행나무, 2024)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어떤 이유로 사랑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는 자신의 인간성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찬쉐, 동아일보 인터뷰 2024.3.4.)


찬쉐(残雪,1953~ )는 ‘20세기 중엽 이래 가장 창조적인 중국작가’라는 평가를 들으며, 초현실적인 작품세계로 인해 ‘중국의 카프카’라고도 불리는 소설가다. 본명은 덩샤오화(邓小华)로, 지역신문사에서 근무하던 부모가 극우주의자로 몰려 노동교화소로 끌려가는 바람에 어린시절을 조모 밑에서 보냈다. 초등학교가 최종학력이지만 문학과 철학을 독학하며 서른살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황니가>, <마지막 연인>, <신세기 사랑 이야기>, <오향거리> 등의 소설을 발표하며 중국의 아방가르드, 선봉파 문학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있기도 한 그는 매해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격정세계(激情世界)>는 2022년 발표된 그의 최신작으로 ‘문학의 유토피아’를 표방한 장편소설이다. 


중국의 어느 도시 멍청(蒙城). 쇼핑몰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샤오쌍(小桑)’은 책을 사랑하는 30대 여성이다. 대학동기인 ‘헤이스(黑石)’를 우연히 만나 ‘비둘기 북클럽’에 초대받은 그녀는 책을 매개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난다. 젊고 활달한 ‘샤오마(小麻)‘, 소설쓰기에 열심인 ’한마(寒馬)‘, 한마를 사랑하는 평론가 ’페이(費)‘와 서점에서 일하는 ’샤오웨(曉越)‘, 샤오쌍의 정신적 지주인 ’이(儀) 아저씨‘, 앳된 아가씨 ’차오쯔(雀子)‘와 헤이스의 친구 ’리하이(李海)‘등 문학으로 엮인 인물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며 북클럽 모임을 통해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변화의 계기를 갖는다. 


“우린 전심으로 사랑에 휩쓸리고자 하지. 우리가 읽기와 쓰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사랑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읽기와 쓰기는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게 다른 점이지. 바로 이 때문에 인류는 문학을 발명했어.”(p.326) 샤오쌍을 통해 작가는 독자가 책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소통과 공감의 기쁨을 보여준다. ‘어둡고 불분명한 소설들의 경지‘(p.26)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그녀는 책에 대한 감상과 의견을 타인과 나누면서 희열을 느낀다. 샤오쌍을 필두로 책 속 등장인물들은 열심히 책을 읽으며 보다 높은 독서의 경지로 오르기 위해 자신을 연마한다. 불타는 향상심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젊은이들은 각자의 짝을 찾아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책읽기를 즐겨 하던 한마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페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소설쓰기에 돌입한다. 문학적 타성에 젖지 않은 그녀의 소설은 상대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문학의 최전선에서 기준을 세우고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해방해 문학의 새로운 계몽을 촉진하는 것”(p.518)을 목표로 한 비둘기 북클럽 동료들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글을 쓴다. “문학은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어서는 안되고 인간의 육체에 더욱 편향되어야 한다”(p.597)는 작중의 대사는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키워드다. 작가는 신체적 욕망의 충동이 문학에 대한 갈망을 채우고 이를 추동하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는 것을 한마를 통해 보여준다. 한마는 보다 더 직접적이고 긴밀한 소통을 추구하며, 페이와의 이별 이후 서점에서 일하는 샤오웨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되고 문학에 대한 열정 또한 깊어지게 된다. 


문학과 인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가득한 이 작품은 가벼운 연애소설로 보일수도 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각자의 파트너를 찾아 움직인다.  여기엔 시기와 질투고 없고, 먹고살기 위해 좋아하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할 일도 없다. (무엇보다 스마트 폰이 없다! 고향에 간 샤오쌍에게 헤이스는 문자나 메일이 아닌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70에 접어든 노장의 문학에 대한 격정적인 사랑은 팍팍한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잊었던 여러 가지 감각-향수라고도 말할 수 있는-을 불러일으킨다. 독자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게 될 이 감각은 이 책이 갖는 미덕의 일부다. 중국어(한자) 번역에서 오는 어색함과 사자성어의 사용 등에서 오는 고색창연(?)한 표현이 요즘 독자들의 흥미를 어느 정도 끌 수 있을지 미지수이긴 하지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가 포기의 개수를 더해가는 ‘N포세대’로 진화하고 있는 지금, 찬쉐의 <격정시대>는 우리에게 없어진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예술과 인간에 대한 격정적 사랑의 찬가를 듣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격변의 세월을 견뎌야 했던 작가의 흔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