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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Nov 04. 2018

맞춤형 검색이 꼭 나쁠까?

<생각 조종자들> 비판적 읽기

참 읽기가 망설여지는 책이었다.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고 산 책 이기는 한데, 표지를 보면 아시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상한 음모론 도서와 같은 느낌이 풀풀 풍기잖은가. 당신의 의사결정을 설계하는 위험한 집단이라는 부제목에서는 책을 잘못 산 것 아닌가란 의심이 마구마구 피어올랐다. 그런데 막상 읽고 보니, 출판사에서 번역서를 내며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던 모양이다. <생각 조종자들>은 번역판 제목보단 원제인 ‘Filter bubble’에 더 어울리는 책이다.



책이 다루는 주제는 꽤나 명확하다. 개인화된 맞춤형 결과 제시가 지속되면 우리는 훨씬 더 고독하고 분절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란 것. 인터넷 초창기에 기대되던 기술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 실현이라던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거대한 공론장은 환상일 뿐 우리는 각자의 개별화된 필터 속에서만 살아가는 암울한 미래가 올 수 있다는 얘기가 300페이지 정도의 책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칭찬이 아니라 추가적인 정보량은 별로 없으면서 지나치게 길다는 얘기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리 어색한 개념이 아니다. 예컨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떠올려보자. 우리가 A라는 사람에게 반응을 보이면 A의 게시물이 더 자주 나타나게 되고, B라는 문구가 포함된 게시물을 작성하면 B라는 문구와 관련 있는 광고들이 더 자주 올라오게 된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현상이지만, 이런 개별화 기술의 초창기에는 무척이나 혁신적인 시도로 인식이 됐었단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기업이 의도하는 대로 내가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들만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투명한 막(이를 필터 버블이라고 한다)에서만 살아가게 된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것이 바로 <생각 조종자들>이라는 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러한가?




저자는 책 내내 이런 부분을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분명 다르다고,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이런 현상을 더 강화시키는 필터 버블이 문제적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이런 식의 주장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됐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분명 큰 문제이고, 우리가 거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좋은 것은 맞다. 그렇지만 시리아 내전에 대한 정보가 내일부터 딱 하루 동안 신혼부부에게 기저귀 30%를 할인한다는 정보보다 중요하다고 과연 누가 단정 지을 수 있느냔 말이다. 누차 본인이 진보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저자의 말에 기초하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을 남들도 모두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 같은데 이것이 과연 이용자들이 스스로 정한 ‘관심 가는 것들’보다 우선순위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뭔지 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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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상한 전제조건에도 불구하고, 일부 귀담아들을 부분도 있긴 하다. 필터 버블이 형성됨으로 인해 다양한 관점을 취하는 뉴스에 대한 접근성 자체가 낮아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저자인 엘리 프레이저는 스스로 진보성이 강하다고 고백하며, 그래서인지 보수적이거나 우파인 사람들이 주로 접하는 뉴스가 자신에게 잘 도달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반대로 사회적인 문제보단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의 실물경제에 주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엘리 프레이저 같은 사람이 주로 접하는 환경, 노동, 젠더 이슈를 다루는 뉴스를 접할 기회가 무척 낮아지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판단으론 그런 뉴스들이 전달된다고 한들, 그네들이 실제로 그 뉴스들을 읽을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전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다양한 부분에 관심을 넓히려는 노력을 하라고 조언하는데,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개별화 필터라는 것이 개발되지도 않았을 거다. 그래서 나는 그것보다 더 좋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랜덤화’의 도입이다.




기업 입장에서 개인별로 맞춤화된 정보와 필터는 엄청난 자산이다. 저자는 이를 어떻게 취득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필터 버블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그런 시장 역행적 정책이 지속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은 규제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정보를 끌어 모으는 기업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냐가 기업 경쟁력의 척도가 될 텐데 그걸 틀어막을 수는 없잖은가. 개인화된 데이터의 축적을 막을 수 없다면, 약간이나마 그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은 필터링 알고리즘에 의무적으로 일정 수준의 랜덤화를 도입하는 것뿐이라 생각한다. 


다음 중 강아지가 포함된 사진을 모두 고르시오 (...)


예컨대 앞서의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떠올려보자. 필터 버블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그의 뉴스피드에 나타나는 게시물의 대부분은 주식과 부동산 투자 관련 글들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일정 비율(가령 10%) 정도로 랜덤화 된 정보를 노출시키도록 강제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4건의 주식시장 동향 정보와 5건의 부동산 가격 동향 정보 사이에 1건 정도의 이질적 정보가 섞여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1건이 암호 화폐 투자 관련 기사가 될 수도 있고, 필리핀의 코피노 문제가 심각하다는 기사가 될 수도 있고, 브라질 정부가 삼림 개발을 진행해서 환경단체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기사가 될 수도 있지만 그가 평소에 접하지 않던 다른 정보가 눈에 뜨이게 된다는 점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필터 버블’의 많은 문제점이 상쇄되게 된다. ‘더 중요한 정보’라는 자의적이고 오만한 선택 기준 없이도 나름의 문제점을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읽기에는 약간의 out-dated 된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긴 하지만 개별화 필터에 대한 진보 진영의 개괄적 문제의식을 가볍게 알고자 하신다면 충분히 읽어볼 법한 책이긴 하다. 개인적인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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