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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Feb 04. 2019

정신과 의사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나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의사도 감기에 걸리느냐는 질문은 우스울 수도 있습니다. 의사도 사람인데, 감기에 걸리지 않을 리가요.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은 좀 묘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의사가 감기에 걸렸냐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말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약간의 의아함을 안고, 임세원 선생님이 쓰신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읽었습니다.     



임세원 선생님은 대학병원의 교수로 재직하던 실력 있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100여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는가 하면, 사회 참여에도 앞장서서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프로그램인 ‘보고듣고말하기’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우울증을 앓으셨다니, 정말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정말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분도 그 질병을 앓는다면, 과연 누가 피해 갈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렇기에 이 책은 더 값집니다. 우울증에 관해 학술적인 지식을 두루 갖춘 정신과 의사가, 본인의 우울증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증 가이드북을 낸 셈이니까요.     




책은 그의 인생 정점에서 시작됩니다. 임세원 교수는 전문의 취득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서울 시내의 대학병원 교수로 임용이 됩니다. 특수한 분야라 잘 감이 안 오시겠지만, 소설가로 따지면 등단작이 베스트셀러로 진입한 수준의 일을 이뤄낸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즈음, 그에게 불행이 닥쳐옵니다. 극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허리디스크가 발병해, 그의 일상을 좀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통으로 인해 누워서 안정을 취하면 고통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지는 악몽 같은 나날들이 이어지며, 그는 우울증을 얻습니다.     


출처 : NGO Pulse

 

물론 그는 정신과 의사여서, 누구보다 그 질병을 잘 알고 있습니다. 새벽 4시에 잠에서 깨는 ‘우울증 전조증상’을 보며 우울증임을 직감하고,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자살생각-자살계획-자살시도’로 이어진다는 것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환자의 입장이 되어서야, 그것이 진정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됐다는 후회를 토로합니다. 그 스스로가 사고사로 위장해서 자살을 하려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까지 세운 후에 말이죠. 앎과 스스로의 행동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 것입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그는 우울증 환자로서, 그리고 또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우울증 환자들에게 손을 건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습니다.      



불행에는 이유가 없다. 세상 모든 일은 그 원인을 찾아야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불행일 것이다. 아프지만,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그가 우울증을 앓으면서, 또 우울증 치료에 대한 전문가로서 그는 다양한 조언들을 해줍니다. 예컨대 그는 본인의 경험을 빌려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막연하게 낙관을 갖고 있다간 낙담의 폭이 커서 결국 버티지 못하게 되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현실주의적인 판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다만 조금씩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상을 꾸준히 유지하다 보면,  겨우내 쌓여있던 눈이 언젠가는 녹듯 우울증도 나아질 수 있다는 따뜻하고 현실적인 위로도 잊지 않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이자, 같은 질병을 앓는 동지기에 할 수 있는 말들입니다.     




그런 그는 안타깝게도 얼마 전에 타의에 의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담당했던 환자 중 하나가 망상을 갖고 그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이를 피해 대피하던 중 계속 뒤를 돌아보며 다른 병원 직원들에게 ‘도망가라’는 말을 반복하다 정작 그는 명을 달리하고 말았으니까요. 저는 그 사건을 통해 故 임세원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책을 남겼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됐죠.      



망자에 대한 추모의 방식은 모두 다르겠지만, 저는 그가 남기고 따뜻한 조언들이 계속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그의 뜻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던 이가 허망하게 세상을 떴습니다. 유족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고인의 유지라며 조의금을 고인이 몸 담았던 학회에 기부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아 달라’는 읍소를 했습니다. 그런 그가 남긴 책이고, 읽어보시면 주변의 누군가가 혹은 본인이 우울증을 겪게 될 때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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