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기농 쌈채소 하우스에서 쌈채소를 뜯는 일을 했다. 쌈채소 4kg 한 상자에 단가 14000원. 주말도 없이 일하는 이 곳의 평균 월급은 15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나는 돈도 받지 않고 일했다. 그런데도 나는 가장 빠르게 쌈을 뜯어 한 상자라도 더 보태고 싶었다. 도시에서 편하게만 살았던 내가 미안해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적상추, 케일, 적겨자, 트레비소, 청상추, 로메인상추, 케일과 같은 쌈채소들을 따다보니 내 발가락이 부어있었다. 무릎이 상하는 게 두려워서 였을까? 혹은 더 빨리 옆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관성이었을까. 내 발가락은 늘 추켜세워져 있는 채로 무릎이 받을 하중을 배분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무릎을 꿇으면 당연히 발가락은 발가락 지문이 땅에 닿고 발 가락 마디는 굽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차라리 쭈구려 앉거나 받침의자를 착용하고 골반에 하중을 실는 것보단 나아 하고 이 어쩔 수 없음을 그냥 받아들이려 할 때, 그 전 2주간은 눈치채지 못한 사실을 깨닫았다. 발가락 지문이 땅에 닿지않고 하우스 천장을 향해도, 발가락 마디가 모두 펴져 발등부터 발가락 끝까지 모두 땅에 닿아도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엉덩이를 발 뒷꿈치에 살포시 붙여 발등 전체에 그동안 발가락 마디마디가 견딘 하중을 견딜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의 발가락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무릎을 염려했을 것이다. 아니 혹은 무릎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무릎이 “야 나 지금 존나 힘들어 너 지금 가만히 있으면 뒈진다” 소리치는 통에 발가락은 그게 마치 실은 자기 일이 아닌데 자기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믿었을거다. 아마 그게 가장 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주 짧은 마디만 좀 움직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 맨날 일을 하고 있는 무릎이 견디는 책임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 자기가 견디기엔 역부족인 하중을 하루 견디고, 또 하루 견디면서 자기의 몸집이 평소보다 1.5배 정도 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날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다시 똑같은 일을 2주 동안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화석이 된 듯, 고치가 된 듯 내가 무릎을 꿇기만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잔뜩 긴장하여 “이렇게 계속 있어도 괜찮아 하나도 안아파” 라고 말하며 언제나 일을 하고 있었다.
발가락은 자신이 너무 편하게 사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허리와 골반 무릎, 발목이 커다란 세상을 언제나 든든하게 지탱할 때, 발가락은 편안한 신발 안에서 가만히 숨만 쉬면 됐었다. 자기가 조금만 일을 하려고 하면 “야 넌 필요 없어” 하고 거뜬히 몸을 더 빠르게 걷고 달리게 해주는 다른 부위들에게 기가 죽었다. 그래서 발가락은 숨죽인 채 잔뜩 힘을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발가락은 자신이 너무 이끌려다니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모두가 땅에 붙어 누워있을 때 발가락은 공중에 똑바로 서있어야만 했다. 무릎이 움직이고 발이 땅에 닿으면 잠깐 바닥에 닿을 뿐, 한 번도 자신이 바닥에 닿고자 할 때 바닥에 착 하고 힘주어 달라붙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발가락은 온 몸의 무게를 자신에게 실어서라도 이번 기회 만큼은 내가 잔뜩 힘을 주어 땅 방향으로 자신을 밀어냈다.
발가락은 언젠가 자신이 머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믿었다. 가장 위에 난 것이 머리라면, 가장 아래 난 것은 나야. 난 하찮고 그동안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아 쓸모도 없는 존재지만, 가끔은 나의 작은 마디 하나만으로도 이 몸뚱아리를 모두 좌지우지할 수 있을만큼 난 중요한 존재야. 이 멍청한 것들이 내가 실은 모든 걸 다 뒤집어 버릴 수 있다는 건 아주 모르고 있고만. 그래서 발가락은 퉁퉁 부어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발가락은 너무 미안했다. 공중에 붕 떠있는 순간 힘 없이 몸의 움직임에 따라 흘렁흘렁 거리는 자기자신에 비하면, 다른 모든 동료들은 필요할 때마다 힘을 주어 일을 하고 있었다. 몸의 가장 맨 앞에 서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움직이기만 하는 자기 자신을 심하게 자책했다. 그래서 발가락은 온 몸에 잔뜩 힘을 주어 한 시도 쉬지 않고 자기의 열 배보다 넘는 하중을 견뎌도 그것이 차라리 쉬웠다.
발가락은 언제나 일을 하고 있었다. 발가락은 계속 일을 할 것이다. 발가락아 펴. 하면 필 것이고. 발가락아 힘줘. 하면 힘을 줄 것이다. 어찌보면 앞으로 이 발가락에게 자유자재로 말을 걸어 발가락이 보다 자유롭게 자기 일을 하게 하는게 이 전체 몸의 자유의 증진에 가장 중요한 과제일 수도 있다. 언젠가 발가락은 다른 친구들의 고맙다는 말도 들으면서, 떠밀리지만 않고 앞장 서 캐리하면서 진정한 운전석의 기관수가 될 것이다.